1. 들어가는 말
중국과 러시아는 8월 18일부터 사상 최초의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부 해안 지방(산동반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행해지는 이 훈련에는 양국의 해군 함정, 폭격기, 전투기 와 10,000명의 병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군 기관지인 해방군보(解放軍報)는 8월 17자 보도에서 “이번 훈련은 잠재적 적을 위협하고, 견제하기 위한 성격을 띤다.”고 보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중국과 러시아는 이 훈련은 테러리즘을 억제하고, 양국 간 국경지대에서 분리주의자 들의 폭동을 제어하기위한 연습이며 주변국 어떤 나라를 위협하기 위한 훈련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훈련이 시작된 2일째인 8월 19일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 역시 이 훈련이 어떠한 특정 국가를 향하는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합동 군사 훈련 목적이 진정으로 분리주의자 및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한 것 이라면 이 훈련은, 뉴욕 타임스지도 지적 했듯이, 표적 지역 (중앙아시아) 에서부터 무려 3000마일(4,800Km) 이나 떨어져 있는 지역(태평양 연안)에서 행하는 훈련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양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분리주의 세력(러시아의 경우 체첸, 중국의 경우 신지앙성 新疆省 등)의 도전에 직면해 해 왔고, 이들 소수민족 분리주의 세력들은 이미 수 십 년 이상 러시아, 중국에 대항하여 끊임없는 테러 전쟁을 전개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중앙아시아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세력인데 이들에 대처하기 위해 군함이 동원된 상륙 작전 훈련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명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군사훈련, 특히 두 나라 이상이 공동으로 전개하는 군사훈련에는 전술적, 전략적 차원의 목적이 없을 수 없다. 훈련 중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전쟁에서 피 한 방울을 덜 흘리게 하는 요소이며 오늘날 군사훈련은 가능한 한 실전 상황 및 현장과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서 진행 하는 것이 상례다. 더구나 두 나라가 함께하는 훈련이라면 그것은 전략(Strategic) 적 차원의 훈련이며, 분리주의자들과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목표를 가지는 훈련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중ㆍ러 합동 훈련의 구체적 대상은 무엇이며, 이 훈련이 미치는 전략적 함의는 무엇일까? 이 훈련은 차후 동북아시아 군사 질서 및 한반도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 중ㆍ러 합동 군사훈련의 내용
중국과 러시아는 8월 18일 새벽, 함대와 병력을 산동성(山東省) 칭다오(靑島)의 자오둥(膠東) 반도로 집결 시켜 8일 간의 훈련을 시작 했다. 양광례(梁光烈) 중국군 총참모장과 유리 발루예프스키 러시아군 총 참모장은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화의 사명 2005, Peace Mission 2005" 훈련 개시를 공식 선언 했다. 18-19양일 동안 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대 기동훈련이 실시되었으며, 20-22일 양일 동안은 산동 반도와 서해 (중국명 황해)에서의 상륙작전 훈련, 그리고 23-25일 까지 마지막 3단계에서는 산동에서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을 것으로 관측 된다.
러시아는 약 1,800명 정도의 병력이 참여하고 있고 중국 측은 동원되는 무기와 병력 상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서방측 언론들은 약 8,000명 정도 중국 측 병력이 동원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군사훈련의 경우 참여하는 병력과 장비가 낱낱이 공개 되지는 않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번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훈련은 특히 베일에 싸인 훈련이다. 한국 언론은 한국, 미국, 일본의 옵서버는 참관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중국은 서방측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합동 훈련 중인 러시아의 특파원들에게 중국군을 취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합동 훈련을 실시함으로서 양국이 보유한 무기체계의 운용, 군사력의 동원 및 작전 수행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미국 측의 정찰 위성 앞에 낱낱이 공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신문들은 이 훈련이 대규모의 훈련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양국 군함이 140척이 참여 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이번 실시되는 중ㆍ러 합동 군사훈련은 그동안 서태평양 지역에서 늘 상 행해졌던 미국 단독 혹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 이 벌이던 훈련에 비하면 그다지 놀랄 일이 없는 평범한 규모의 훈련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별로 관심 있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2004년 여름 서태평양 및 한반도 부근에서는 항공모함 7척이 동원되는 어마 어마한 훈련도 있었고(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동원한 항모는 3-4척 정도 였다. 훈련명은 Summer Pulse 2004), 작년 10월 하순에는 일본이 주도하는 PSI 훈련이 일본, 미국, 호주, 프랑스 군함 이 직접 참여한 외에 독일, 러시아. 영국, 스페인 등 도합 22개국의 해군 함정과 참관단이 동해 바다에서 훈련을 실시했다.(훈련명 : 팀 사무라이 Team Samurai) 이번 중ㆍ러 군사훈련이 시작되기 바로 10일전인 8월 7일부터 8월 13일 까지 1주일간 서태평양 지역에서 진행 되었던 미국의 JASEX (Joint Air and Sea Exercise, 미국 해 공군 합동 훈련) 역시 현재 진행 중인 중ㆍ러 훈련 보다 그 규모와 작전 반경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본토 아이다호주의 공군기지에서도 출격한 미국 공군 폭격기와 7함대 소속 해군 전투, 폭격기 등 100여대 이상의 전투기가 동원된 훈련이었다.
3. 훈련의 목적: 전술적 차원
작금 진행되는 중ㆍ러 훈련은 그 비밀스런 속성 때문에 해석도 다양하다.
영국 런던 소재 국제문제 연구기관인 채텀 하우스(Chatam House)의 중ㆍ러 관계 전문가 보보 로(Bobo Lo) 씨는 '이 훈련은 테러리즘과는 전혀 무관한 훈련이며 이 훈련의 목적은 군사적인 것도, 안보에 관한 것도 아니며 다만 두 나라의 전반적인 관계가 양호 하다는 사실을 과시 하기 위한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군사동맹을 맺는 수준으로 향할 것이라는 과대한 해석을 하기도 하고 인도가 이 훈련에 참관국으로 초대 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러시아-중국-인도가 동맹을 맺는 것이 아니냐는 황당한 예측을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훈련의 전술적 목적은 한반도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훈련장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산동 반도가 한반도를 설정한 훈련임을 명확히 해주고 있으며 동원된 병력의 종류(공정부대, 상륙부대)와 무기체계 역시 유사시 중-러 군이 한반도, 특히 북한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번 중ㆍ러 합동 훈련은, 만약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개입되는 경우, 북한에 개입 될 군사력은 미국 군사력 하나 뿐 (혹은 한미 양국 군사력) 이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전략적 함의를 가진다. 현재 휴회 중인 6자 회담이 북한 문제에 대한 5개 관련국의 '평화로운 개입’을 의미한다면 이번 중ㆍ러 군사 훈련은 북한 문제 해결에 군사적인 대안이 고려 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도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할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중국과 러시아군이 북한에 주둔할지도 모르는 미군을 쫓아내기 위해, 미군에 대항하는 전투를 벌이겠다는 의도로 이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미국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일 능력은 물론 의도도 없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도 미군과 함께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훈련을 통해 주장하는 것 이다.
4. 훈련의 목적: 전략적 차원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훈련을 벌인다는 사실 그 자체가 대단한 국제 문제 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동맹 운운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되지 못한다. 중국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훈련 한다는 것은 중국이 140여 년 전 러시아에게 빼앗긴 자신의 영토를 다시 밟은 것을 의미한다. 청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연해주 700리를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후, 동방의 정복자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개설, 꿈에도 그리던 태평양의 통로를 확보했다. 중국이 나진 선봉 특구에 그다지도 관심을 보였던 전략적 이유는 바로 이지역이 러시아에 의해 차단되어버린 연해주를 대체하여 북태평양으로 직접 연결 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영토적인 구원(舊怨) 관계가 있는 두 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이 - 두 나라 모두가 동시에 미국에 의해 노골적인 국가 안보 위기에 당면하지 않는 한 - 전략적 동맹을 맺을 가능성은 없다. 미국이 바보가 아닌 한 러시아 중국 두 나라의 국가 안보를 동시에 위협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현재 점증하는 위협인 중국을 인도와 러시아를 통해 봉쇄 및 제압하려 할 것이다. 중국이 인도, 러시아를 향해 사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는 미국이 인도, 러시아를 동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와 비교가 되지 못한다.
점증하는 중국의 국력 앞에 영토적인 불안을 느끼는 러시아(러시아는 텅 빈 시베리아를 중국의 밀집된 세력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낼 수 있을지 번민하고 있을 것이다)가 미국과 전략적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영토를 맞대고 있는 이웃 강대국들이 멀리 떨어있는 강대국의 위협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는 경우도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이번 합동 훈련을 대만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이 러시아의 힘을 빌리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 목적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과 미국이 싸울 경우 러시아가 중국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러시아는 오히려 중국이 미국과 싸우다 파괴되어 약화 되는 것이 러시아를 위해 더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무리 힘을 합쳐도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약 러시아와 중국이 힘을 합쳐 미국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미국을 꺾은, 그 막강해진 중국을 러시아는 도대체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군사전문기자 다나 프리스트(Dana Priest)는 2002년 현재 미국의 군사력은 미국 다음으로 강한 나라보다 10배 이상 강한 상태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군사력으로 세계 2위와 3위라 할 경우 이 두 나라 군사력의 합은 최대로 잡아도 미국의 1/5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히 현대식 과학 군사력의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 선진국들과도 한 세대 이상의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다. 게다가 영국, 일본은 미국 편이다.
이상 여러 가지 요인들을 종합 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훈련은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관계에 있음을 상징한다는 전략적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이를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 형성의 전조처럼 보는 것은 무리다. 이 세상 대부분의 국가들은 위협이 나타났을 때 힘을 합쳐 보다 강한 적에 대드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오히려 강한 나라에게 달라붙음(band wagoning)으로서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는 편을 선호했다. 균형자가 되기보다는 강대국에 매달림으로서 무임승차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 이었기 때문이다.
5. 한국에 대한 의미
냉전 종식 이후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한반도 주변에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 공산주의가 붕괴함으로서 끝난 것이 냉전인데, 한반도 주변에서만은 공산주의가 붕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9.11 이후 새로 시작된 반테러 전쟁 시대에 들어와 북한 정권은 반테러 전쟁의 표적이 되는 바람에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대체로 낙관적인 국제정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안보와 군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냉전이 끝났는데도 냉전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비하 당했다. 군사 경쟁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국제정치에서 군사력의 기능도 별로 중요하치 않게 되었다고 주장되었다.
이번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군사 훈련은 국제정치에서 군사력이 아직도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웅변해 준다. 주변 강대국들이 북한 문제에 군사력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옵션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6자 회담이 휴회 중인 와중에 군사력 역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수단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사상 최초의 중ㆍ러 군사훈련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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