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과 북한의 외화벌이: 코코(koko)와 중앙당 39호실
1. 문제의 제기
북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빈국 중의 하나이다. 90년대 중반에는 2백 만명이 아사했으며 오늘날에도 수십만의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민들의 허기진 삶과는 달리 김정일을 비롯한 권력층의 생활은 호화롭다. 수십만 달러를 유럽 등지에 은닉해 놓고 상어 지느러미와 프랑스 산 와인을 즐기고 있다.
김정일은 독일의 명차 메르세데스 벤츠의 VIP 고객으로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도 벤츠를 선물하는 배짱 큰 사내다. 시대의 아이러니요,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임을 자찬하는 북한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상표에 대한 매니아인 것도 우스꽝스럽다.
이렇듯 인민을 우롱하고 사상적 토대를 왜곡하고 있으면서도 독재 권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존재하고 있던 비밀 외화벌이 조직 때문이었다.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나라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인민들은 방치한 채, 지난 년 말 발생한 남아시아 지진 해일 피해지역에 15만 달러를 제공하는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도 이런 비자금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거 동독의 호네커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남미, 폴란드 등에 수천만 마르크를 지원해 주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2. 동독의 외화벌이
2.1 비밀조직, 코코(koko)
호네커의 막강한 권력 배후에는 코코(KoKo)라고 하는 비밀회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코는 'Kommerzielle Koordinierung'의 약자로 상업조정회의라고 번역되지만 동독의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관으로 정상적인 무역이나 대외거래를 통하지 않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이었다.
코코의 대표는 알렉산더 샬크-골로드코프스키(Alexander Schalck-Golodkowski)였다. 그는 동독이 몰락했던 1989년까지 평생을 외화벌이 사업에 투신했던 인물이다. 비밀안전기획부 슈타지에서 에리히 밀케의 지도를 받아 박사 과정을 마쳤고 '적의 경제력 활용’이라는 주제하에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부를 갈취하고 빼앗아 들이는 방안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특히 서독사회가 이루어낸 경제적 부는 코코의 주요 타깃이었다. 그는 동독 사회주의 국가에 살면서도 서방의 막강한 자본가가 누리는 모든 혜택을 누린 인물이기도 했다.
코코는 산하에 220개 회사를 거느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왔다. 동독 몰락 후 코코의 지하실에는 동독 국립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의 5배에 달하는 21톤의 금괴가 저장되아 있었음을 미루어 코코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코코는 1,000개 이상의 비밀계좌를 보유하고 있었고 서독의 도이치 한델스 뱅크에 개설했던 계좌번호 0628은 호네커의 개인계좌였다.
정치범을 석방한 대가로 서독의 정부와 교회로부터 받은 총 34억 마르크(DM)의 돈도 이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분단시절 서독은 동독 내 정치범들을 1인당 평균 9만 마르크를 동독 정권에 지불해 석방시켰으며 63년부터 89년 동독이 몰락할 때까지 총 3만 3,755명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 1인당 9만 마르크는 당시 한화 5천 만 원에 해당되는 돈이지만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할 때 5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호네커는 이러한 불법 비자금을 수단으로 독재 권력을 유지해왔다. 측근들을 위해 고급 장식품, 화장품 및 고급 양주 샴페인들을 사들여 선물했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수천만 마르크를 남미나 폴란드에 지원해주기도 했다.
코코는 외화벌이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감행했다. 국제사회가 이전을 제한한 기술들을 비밀리에 제3국에 이전해 거액을 챙겨왔고 양심수도 외화벌이로 이용했다. 코코 산하의 무역회사였던 IMES는 국제적으로 무기를 밀거래해 외화를 벌어들였던 회사였다. 이런 식으로 코코가 벌어들인 외화는 총 500억 마르크에 달했고 이 중 적지 않은 자금이 해외에 은닉되었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통일 직후 바이겔 재무장관이 코코와 공산당의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5백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2.2 은닉재산, 규모와 유형
독일이 통일을 이룬 후 초대 내각의 최대과제는 무너진 동독사회를 재건해 내는 일이었다. 동독재건에 투입될 대규모 재정을 마련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고 이 가운데 동독의 공산당에 의해 은닉된 불법재산을 색출해내 재건사업에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동독재산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콜 정부는 내무부 산하에 정당재산위원회(UKPV)를 설립해 구 동독공산당들이 은닉해놓은 재산에 대한 환수작업에 착수했다. 정당재산위원회의 주요임무는
- 동독정당 및 단체들이 은닉한 재산을 파악하는 일
- 해외도피 재산을 조사하고 압수하는 일
- 은닉 재산을 환원하기 위한 법적조치를 취하는 일
- 통일관련 특수업무청과 협조해 상기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일
- 은닉재산이 동독정당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
- 연방의회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일 등
구 동독 공산당과 단체들이 국내외에 은닉해 놓은 재산을 색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업무들이었다. 당시 구 동독 공산당 사회주의통일당의 재산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89년 동독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사통당의 후신인 민사당(SED/PDS)의 간부들이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는 불법재산을 여러 방법으로 은닉했기 때문이다. 사통당의 후신인 민사당을 창당한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가 이 시기에 모스크바를 비롯해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산규모에 대해서 통일 관련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설립한 중앙수사대(ZERV)의 키틀라우스(Kittlaus) 대표는 당시 동독의 재산규모를 대략 260억 마르크(약13조원)로 추정했고 반면 베를린 지방검찰청은 약 90억 마르크(약4조2천억원)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당재산위원회는 98년 3월 지난 8년 간 수행해온 구 동독 공산당의 은닉재산 색출작업에 대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첫째, 동독정당 및 단체가 은닉한 재산 중 총 26억4천만 마르크를 색출해냈다. 이 중에는 당이 은닉한 재산이 20억1천만 마르크에 달했다. 그리고 동독의 자유노조연맹의 은닉재산 분은 4억2,000만 마르크, 동독자유청년회의 몫은 6,427만 마르크였다.
둘째, 건물ㆍ토지로 6,129건의 부동산이 밝혀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금재산의 경우 사회주의 통일당이 현금재산으로 보유했던 규모는 62억 마르크였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 중 해외로부터 3억2,500만 마르크를 찾아내 국고에 환수시켰다.
이 밖에도 은닉재산에 대한 여러 경로와 건수가 밝혀지고 있는데 불법재산의 주역은 당 소속 기업들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2002년 2월 29일 튀링겐에서 발행되는 "튀링겐란데스 짜이퉁"지는 당시 동독의 혼란기에 총 150개 법인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인맥을 이용해 총 2억3,930만 마르크를 대출했던 것도 재산도피의 한 형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 국가가 조직적으로 은닉해 놓은 재산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독 공산당의 재산도피 행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북한의 중앙당 39호실과 아태 평화위원회
북한의 중앙당 39호실 역시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한다. 39호실은 동독의 코코와도 같이 외화벌이가 되는 사업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39호실에 소속된 대성무역총회사는 산하에 수 십 개의 무역상사와 운수회사, 해외지사 및 대성은행을 두고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외화벌이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금광으로 년간 10톤 내지 15톤을 생산한다. 북한의 금광은 모두가 김정일의 소유다. 또한 대량살상무기, 위조달러, 마약 등의 밀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도 모두 김정일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된다. 이 밖에도 각 단체 산하에 여러 사업체를 두고 외화벌이에 동원하고 있다. 조선 아태평화위는 대남사업을 주도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김정일은 이 비자금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등지에 은닉해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서방의 고급 상품들을 구매해 자신과 측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주요 구매품목 중 하나가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다. 김정일이 측근에게 주는 벤츠의 번호는 「216xx」다. 「216」은 김정일 생일을 의미하며 「216」으로 시작되는 차는 특권층을 상징하고 있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 태어난 장남 김정남이 2001년 5월 4일 도미니카 공화국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일본의 나리타공항으로 입국하다 발각되어 추방될 당시 지니고 있던 달러와 명품만 보더라도 외화벌이는 이들 로얄 페밀리가 독점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971년생인 김정남은 당시 30세의 나이로 트렁크에 100달러 지폐가 가득 차 있었고 손목에는 다이아몬드가 달린 고급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한 지갑에는 달러와 엔화 고액권이 가득 들어있었다.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 중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곳이 아태평화위원회이다. 아태평화위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기구로 1994년 10월 설립되었다. 출범 이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사업을 성사시켰고 노무현 정부가 대북정책의 열쇠로 추진하고 있는 개성공단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대가로 아태평화위원회에 2005년 3월까지 9억 4천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약속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그룹이 도산 직전에 이르렀어도 밀린 관광대금은 꼬박꼬박 챙겨왔다. 관광대금은 현대 아산의 사업성과와는 무관하게 지불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태평화위의 설립목적이 남한 사업을 통한 외화벌이 사업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성공단 사업에도 이런 함정이 도처에 깔려있다.
4. 결 론
최근 통일연구원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대북 교역사업을 추진했던 기업체 10개 중 8개는 교역을 시작한 지 6년 이내에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3년을 못 넘긴 기업체가 절반 가까운 49%를 차지했고 10년을 넘긴 기업체는 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대북협력사업이 초기의 장미 빛 구상과는 달리 각종 문제점과 갈등에 봉착하는 주된 이유는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북한의 이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에 비치는 남한기업은 아직도 북한의 자원과 재산, 인민을 착취해 이윤을 남기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포커스가 경제 분야 최고위층 탈북자 김태산 씨를 인용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냄비가 남한에서 잘 팔리면 해당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도 외화벌이가 북한권력층의 주된 관심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하게 될 중소기업으로부터 사업성과와는 무관하게 매년 10억 달러씩 받게될 것이라는 보도도 그 사실여부를 떠나 외화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탐욕을 대변한다.
이제는 개성공단에 입주해서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그야말로 무책임한 주장보다는 기업의 인사권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등 투자의 기본여건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당과 맺은 임금 57달러의 고용계약부터가 함정이다. 어느날 갑자기 당 행사를 이유로 노동자을 당 행사에 동원해도 인사권이 없는 기업으로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이런 위험을 순수 투자이론에서는 정치적 위험이라 하며 이런 정치적 위험을 커버하지 못하는 투자는 처음부터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김태산 씨는 개성공단은 반미여론 조성용이라고 말한다. 개성공단 사업은 실패할 것이고 북한은 그 실패 이유를 미국으로 돌려 남한사회에 반미감정과 자극하고 한미간을 이간질하려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라고 한다.
아태평화위원회가 순수 민간단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기구이고 핵심관계자들이 당 고위간부라는 사실만으로도 개성공단 사업이 단순한 경제적 협력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어차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경제협력이라면 개별 경제협력사업 뒤에 숨겨진 북한 권력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대처해야만 기업의 손해를 막고 통일을 단축할 수 있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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