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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동차용 반도체 이야기입니다. 차량용 반도체의 품귀 현상이 전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독일의 폭스바겐, 미국의 GM과 포드, 일본의 혼다 등 세계의 거의 모든 자동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서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는 2020년 4사분기부터 본격화되었는데요. 그나마 한국의 현대-기아차와 일본의 도요타는 반도체 재고를 유지한 덕분에 가동을 줄이지 않아도 됐었는데요. 그 쌓아 두었던 재고마저 바닥이 나면서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코나, 아이오닉 5 등을 생산하는 현대차 울산1공장이 4월 5일부터 일주일간 휴업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1
자동차는 원래 기계 장치였죠. 하지만 차츰 많은 부분들에서 전자적 제어가 이뤄지면서 반도체가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차량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 센서들이 모두 반도체입니다. 스티어링과 트랜스미션 등 기계장치를 제어하는 반도체, 전기 공급을 제어하는 반도체, 차량내 전장 시스템 전체를 제어하는 MCU(Micro Controller Unit) 등도 모두 반도체입니다.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신차 생산비용 중 전자장치가 차지하는 비용이 40%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그 중 반도체 조달비용은 475달러, 약 53만원 정도에 이른답니다.2 개수로는 200~300개가 된다는군요. 전기차의 비율이 급격이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가 자율주행 기능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으니 자동차 생산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자동차는 기계 장치이기 보다는 달리는 스마트폰이 되어 가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벌어지다 보니 자동차 공장들이 맥없이 멈춰서 버렸습니다. 블룸버그의 추산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생산차질액이 61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는데요.3 북미와 유럽에서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아래 그림은 2021년 1사분기에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을 못한 차량 대수를 보여줍니다. 미국을 비롯한 북미지역의 피해가 가장 큽니다. 41.1만대이군요.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의 경우 28.6만대이군요. 아시아 지역은 피해가 23.9만대로 추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국 자동차 업체 중에는 르노삼성과 GM코리아만 있습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리 반도체를 확보해둔 덕분에 1사분기는 무사히 넘겼다고 합니다. 일본의 도요타도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대차도 2사분기에 들면서 반도체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고 결국 조업 축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자동차 업계의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문제 때문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나씩 따져 보죠.
첫째, 자동차업계 자체의 특성 때문에 초래된 측면입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자동차 판매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동차 기업들은 판매 감소에 맞춰서 부품 주문도 줄였습니다. 반도체 주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가 오랜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죠. 그런데 2020년 하반기부터 뜻밖에 자동차 판매가 급증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4월부터 판매가 전년 수준을 웃돌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반도체였습니다. 수요가 늘더라도 다른 부품들은 바로 주문하면 구할 수가 있는데요. 반도체는 그렇지가 못했던 겁니다. 코로나19로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기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수요도 급증했습니다. 반도체 공장이 풀가동에 들어간 상태에서 반도체를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넣어봤자 순위가 밀리게 된 거죠. 블룸버그가 팹리스 반도체 회사인 브로드컴의 리드타임 데이터를 보도했는데요.4 리드타임이란 주문을 넣어서 최종 제품을 인도받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2월, 12.2주이던 리드타임이 2021년 1월에는 15주로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주문이 밀려 있다는 뜻이죠. 그나마 주문을 넣을 수 있으면 다행인 상태라고 봐야겠죠.
특히 잘 짜여진 Just-In-Time 방식이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부품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필요할 때 바로 주문해서 쓰는 방식인데요. 이 방식을 통해서 자동차 업체들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오히려 Just-In-Time 방식에 발목을 잡힌 셈입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여분의 반도체 부품을 쌓아 둔 덕분에 위기를 비켜갈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일본과의 반도체 분쟁을 겪으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 둔 것이죠. 도요타도 사정이 비슷합니다.5 사실 Just-In-Time 방식은 1960년대에 도요타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요. 2008년 국제금융위기, 2010년대 초반 일본 대지진과 태국에서의 태풍 사태를 겪으면서 부품 공급망을 재편하게 되었습니다. 6,800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업자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촘촘한 의사소통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부품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전에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Rescue’ 구조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정보망 덕분에 반도체 부족 사태를 피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번째의 원인은 코로나로 인해 자동차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재택근무, 온라인쇼핑 등의 활동이 급증했죠. 그러느라 스마트폰, PC 판매가 증가했습니다. 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게임기에 대한 수요도 늘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기 등 모두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죠. 따라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늘었고 반도체 생산 라인들은 풀가동을 하게 된 겁니다.6 그러다 보니 자동차용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넣어도 뒤로 밀리게 된 것이죠.
세번째는 반도체 업계의 입장에서 보면 차량용 반도체의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문제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업체들로는 일본의 르네사스(Renesas), 독일의 인피니온(Infineon), 네덜란드의 NXP 같은 기업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기본적으로 패블리스 업체들입니다. 즉, 자신들이 판매할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제조는 위탁생산업체 즉 파운드리에 맡깁니다. 대부분 대만의 TSMC에 맡기게 되는 데요. TSMC 입장에서는 차량 반도체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다음 그림에 나타나 있듯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안됩니다.7
가격도 쌉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8 따르면 Nvidia의 게임기용 반도체는 300~400달러 수준인데 차량용 반도체는 하나당 1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비싼 반도체의 주문도 감당하기 힘든 파운드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동차용 반도체가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거죠. 자동차 기업들이 다른 대부분의 납품업체들에게는 갑 중에서 슈퍼 갑이지만 반도체에서는 오히려 사정을 해가면서 물건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겁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차량 반도체는 거의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전장 장치의 두뇌에 해당하는 MCU는 안 만듭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그렇고요. 파운드리 업체인 DB하이테크, 키파운드리도 MCU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만의 TSMC가 생산한 것을 쓰게 되는 거죠.
사정이 급하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외교 채널을 통해 대만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지경에 달했습니다. TSMC에 힘 좀 써 달라는 거죠. TSMC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은 합니다만 얼마나 상황이 나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어떻게 될까요?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가 증가하는 만큼 차량반도체 수요도 계속 증가합니다. 하지만 공급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에서 공급이 이뤄지려면 이윤이 남아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차량용 반도체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그것이 공급 확대의 인센티브가 될지 모르죠.
차량용 반도체는 구식 공정에서 제조하는 것이 많은데요. 그런 공정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7나노, 5나노 것은 최신 공정이죠. 이런 공정으로 만드는 반도체는 주로 스마트폰이나 고성능 피시에 사용됩니다. 작은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 데다가 배터리 절약을 위해 전력소모량도 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값도 비쌉니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 예를 들어 MCU는 55나노 같은 구식 공정으로 만듭니다.9 자동차는 공간이 넓기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용처럼 극단적으로 미세공정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문제는 그런 구식공정들을 위해서는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도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비가 필요하면 중고 장비를 사서 쓴다고 해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자동차 반도체만을 새로 제조 시설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10 반도체 때문에 차를 못 만드는 상황도 꽤 길어질 것 같습니다.
공급이 부족하면 값이 오르죠. 미국에서는 자동차 딜러들이 차 값을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도체 부족의 여파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1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32952381
2 Semiconductors – the Next Wave, Deloitte, 2019
8 https://www.wsj.com/articles/no-quick-fix-for-auto-chip-shortage-11612883643
9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4/20210324023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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