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가 ‘재벌 개혁’을 당했다면? 공정경제3법과 기업의 본질

김정호 / 2020-11-24 / 조회: 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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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위 재벌개혁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공정경제3법이라는 것도 재벌개혁 조치 중 하나입니다. 기업경영을 민주적으로 하라는 요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사위원 선임시 '3%룰’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감사위원은 회사에 온갖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입니다. 3%룰이란 감사위원을 뽑을 때 총수는 아무리 많은 지분이 있어도 3%만 행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15%, 국민연금이 11%, 블랙록이 5%를 행사할 수 있는데요. 이 법이 통과되면 이재용 부회장의 표는 3%로 제한되니까 국민연금과 블랙록의 대리인이 감사위원으로 들어가기 십상입니다.


민주적으로 다른 투자자의 의견도 반영하라는 취지인데요. 그러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경쟁사의 첩자가 감사위원으로 들어가 각종 내부 정보들을 빼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자투표를 쉽게 만들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많은 주주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라는 취지입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 대상의 소송을 허용하는 것인데요. 더 많은 소액주주들을 챙기라는 취지입니다. 전속고발제 폐지안도 있습니다. 기업의 담합에 대해서 누구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공정위가 면밀히 조사한 후에 검찰에 고소를 합니다. 재벌개혁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의 공정경제3법이라는 것도 전체적으로 보면 기업의 의사결정과 기업 감시에 더 많은 사람을 참가시킨다는 것, 민주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민주화하면 기업이 더 잘 될까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의 역사,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삼성, 현대자동차, SK의 역사에 비추어 살펴볼까요?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산업입니다. 1983년 이병철 회장이 투자를 시작했고 1987년부터 이건희 회장이 넘겨 받아 크게 성공시켰습니다. 과감하고 현명한 투자가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만 그 과정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중역들이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투자에 반대를 했고 정부 역시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인 투자가 성공을 거둔 것이죠. 2000년대 이후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신경영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충격요법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총수 이건희의 독단적 결정이었습니다.


현대차의 성공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현대차가 글로벌 메이커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1999년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10년-10만 마일 무상 보증을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기존 현대차의 품질 상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수리비를 감당 못해 회사가 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몽구 회장은 회사의 명운을 건 베팅을 했습니다. 결국 회사의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서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에 성공했고 끝내 빅5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오너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모험이었습니다.


SK가 법정관리 중이던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인수하고 싶어하지 않던 하이닉스를 최태원 회장의 결단으로 인수했고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조율하느라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본 기업들은 회의만 하다가 결국 한국 기업, 중국 기업에게 시장을 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기업들이 그렇게 되어 갈 것 같습니다. 재벌개혁, 공정경제3법이라는 것으로 오너의 힘을 약화시킬 것이고 대기업들은 앞으로 과감한 결정은 하기 힘들 것입니다.


아마 이병철, 이건희, 정몽구, 최태원이 민주적으로 여러 사람들 의견을 모아서 다수결로 결정했다면 결과는 참담했을 겁니다. 그렇게 했던 기업이 과거의 기아자동차 아닙니까.  오너가 없는 상태에서 전문경영인 회장인 김선홍과 노조가 공동경영을 했죠. 결과는 부도였습니다. 그것을 정몽구의 현대차가 인수해서 현재의 글로벌 기업 기아차로 키웠습니다. 민주적 경영이 아니라 독단적 경영이 오히려 성공을 가져다준 겁니다.


기업은 돈 벌기 위해 태어난 조직입니다. 좋은 제품을 낮은 원가에 만들어서 잘 팔아야 합니다. 민주적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적 경영을 한답시고 형편없는 제품을 비싼 원가에 만들어낸다면, 그래서 팔수록 적자가 쌓여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죄악입니다. 그런 기업이라면 당장 문을 닫는 것이 이 사회를 위한 도리입니다.


소위 민주적임을 내세우는 조직들의 사정을 한번 볼까요. 대표적인 민주 조직은 국회이지요. 그 국회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엉망인 조직일 것입니다. 제대로 된 토론은커녕 고함지르기, 멱살잡기가 수시로 벌어집니다. 산출물이라고 만들어내는 법률의 수준은 또 얼마나 한심합니까? 온통 포퓰리즘 투성이여서 그 법이 많을수록 나라 형편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는 또 어떤가요?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해서 제대로 되는 것이 있나요? 참여연대 출신인 조국이니 장하성, 김상조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서 정책이랍시고 하는 것들 보세요. 윤미향이라는 사람이 위안부 할머니들 업고 만들어 놓은 정의기억연대라는 곳,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납니다. 그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민주적으로 해야 합니다. 독재는 십중팔구 북한식, 중국식 전체주의 지옥을 가져오기 십상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기업에 간섭할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자기들 몸가짐이나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사명은 좋은 제품 싸게 만들어서 잘 파는 겁니다. 그렇게 돈 많이 벌어서 주주들,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을 주게 됩니다. 그러자면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직원들 월급도 넉넉히 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러지 못하면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품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매출은 줄고 적자가 쌓입니다. 그런 조짐이 보이면 좋은 직원도 뽑을 수 없습니다. 제품을 좋게 만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경영이 필요한지는 각 기업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일 엉망인 그 정치인들, 시민운동가들이 기업들에게 그것도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들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간섭을 하고 나섰습니다. 자기 주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재벌개혁은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뿐 아니라 일찍부터 외국인투자자들도 가세해왔습니다. 장하성은 월스트리트에서 환영받는 인사였습니다. 그들이 돈을 대서 장하성 펀드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죠. 장하성은 월스트리트의 대리인이 된 겁니다. 그런데 수익률이 좋지 않아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장하성이 간섭한다고 기업이 잘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죠.


헤지펀드 같은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재벌들이 미국식으로 경영할 것을 요구합니다. 투명경영을 하라는 거죠.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식 경영이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사회분위기와 노동자, 정치와 공무원, 언론의 속성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은 미국과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경영자가 노동자도 보듬어야 하고 정부 눈치도 봐야 하고 언론에도 잘 보여야 합니다. 이들에게 다 잘하려다보면 투명하게 경영하기 어렵습니다. 같이 술도 먹어야 하고 아름아름 뒤를 봐줘야 할 때도 많지요. 그렇게 안 하면 언제 어떤 복병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매우 작지요.


흥미롭게도 한국에 진출해 있는 많은 미국계 기업들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유한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MS코리아, 구글코리아 등이 모두 유한회사입니다. 유한회사와 주식회사는 파산시에 회사 재산으로만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유한회사라는 형태를 취한 것은 회사의 내부 사정을 세상에 알릴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미국식으로 경영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된다면 굳이 유한회사로 만들어 내부 사정을 숨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미국식 경영이 한국의 노동자와 정치와 언론에 의해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밖에 알리지 않으려는 것이죠. 다른 것은 모두 감추고 제품만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외국계이면서 상장주식회사인 기업들로는 GM코리아, 르노삼성, SC제일은행이 있는데 실적이 그저 그렇습니다. 지배구조가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성과는 초라합니다. GM은 언제 한국에서 철수할지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미국계 기업으로 가장 잘나가는 곳이 아마도 스타벅스코리아일텐데요. 여기는 실질적으로 이마트가 경영하고 있지요. 그리고 비상장 기업입니다.


투자자들이 요구해 온 미국식 지배구조는 한국에서는 잘 작동을 안 합니다. 쉽게 말해서 그렇게 경영하는 기업들은 돈을 잘 못 법니다. 그런데도 계속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과정에서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 주가가 올라가곤 하지요. 그렇게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회사의 장기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해서 기존 경영진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경영권 분쟁은 당사자들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정부가 끼어드는 것이고 더욱 큰 문제는 기업을 민주화한다면서 전통적인 한국식 경영이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재벌개혁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총수가 회사의 재산을 훔치는 일이라면 처벌을 해야겠죠. 하지만 회사를 민주화해서 국회처럼, 시민단체처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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