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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가격이 역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월 10일 금의 가격은 온스당 1,926달러입니다. 역사상 최고 가격을 찍은 8월 7일의 2,028달러보다 낮아지기는 했지만 지난 몇 달간 금 가격이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입니다. 투자자들이 위험을 느낄수록 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안 심리,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이 금에 대한 수요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모든 금 수요가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수요에 따라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줄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글로벌 금 시장에서의 수요자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말, 지구상에 존재하는 채굴된 금의 총량은 197,576톤이라고 합니다.1 반올림하면 20만 톤입니다. 정육면체로 만들면 각 변이 21.7미터입니다. 아파트 1개층 높이가 2.7~2.8미터이니까 8층 아파트 정도의 높이입니다. 전세계 금을 모두 모은다 해도 8층 높이 정도라니 정말 얼마 안되죠? 사실 누가 얼만큼 금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요. 이 숫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의 총량을 추정 합산한 것이랍니다. 금은 한번 채굴되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쓰는 모양입니다.
그 20만 톤 중에서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로 쓰이는 금은 9.3만 톤으로 47%를 차지합니다. ETF 등 투자용으로 보관된 금은 4.3만 톤 정도되고 21.6%입니다. 그 다음 큰 항목은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인데요. 3.4만 톤이고 금 총량 중 17.2%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2.8만 톤은 산업용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각 부문별 수요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신구용은 수요가 오히려 줄었습니다. 장신구는 사실 사치재의 성격이 강하죠. 돈이 잘 벌릴 때 장만하는 것이 장신구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전세계적 불황이 닥쳤고 소득도 줄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금 장신구를 새로 장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입니다. 있는 금붙이들도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연기하는 경우도 많아서 장신구용 금 수요는 이래저래 줄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장신구용 금 소비량의 추이를 보여줍니다. 2019년 1분기에 800톤 수준이던 소비가 절반으로 줄어서 2020년 1분기에는 400톤 수준이 되었습니다.2 특히 인도와 중국의 소비 감소가 눈에 띕니다. 금을 장신구용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인도와 중국입니다.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금을 좋아하기도 하지요.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은 온통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잖아요. 중국인들은 금을 좋아한다는 증거이죠. 인도 사람들도 중국만큼이나 금을 좋아합니다. 그런 인도와 중국이 모두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습니다. 소득도 줄었겠죠. 그러다 보니 가지고 있던 금 장신구들을 내다 팔아서 생활비로 쓰고 있답니다.
금이 장신구용으로만 쓰인다면 수요가 줄었으니 금 가격이 떨어졌겠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에 달해 있습니다. 장신구용이 아니라 다른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투자용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위험심리가 급등한 것도 원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선진국 통화의 가치에 대한 불안 심리입니다. 미국 달러, 일본 엔화, 유로화 같은 통화들은 금과 더불어 안전자산입니다. 그런데 미국, 일본, 유로 등이 코로나에 대응한다면서 모두 돈을 마구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디플레이션 상황이 유지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면 금은 공급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지요. 심지어 코로나 덕분에 스위스 금 제련공장의 가동이 중단되어 공급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안전자산이면서도 공급이 제한된 금의 가격이 다른 안전자산들보다 훨씬 더 희소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금에 대한 투자도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금에 대한 투자 수요 증가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금 ETF 통계입니다. ETF란 Exchange Traded Fund인데요. Exchange는 거래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금 ETF는 금에 대한 소유권을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펀드를 말합니다. 2020년 6월 말 미국의 금 실물 ETF가 보유한 금이 3,621톤인데요. 그 중 734톤이 올해 6월까지 새로 매입한 양입니다.3 2019년에 비해 반년 동안 25%나 증가했습니다. 아마도 올해 말쯤 되면 4천 톤을 훨씬 넘을 것 같습니다. 미국 투자자들의 금 선호 현상을 잘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 펀드 중에 큰 것들은 웬만한 나라의 중앙은행보다 훨씬 많은 금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보스턴의 State Street Bank와 World Gold Council, 즉 세계금협의회가 손잡고 운영하는 금 실물 ETF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금 실물이 1,258톤에 달합니다.4 일본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이 765톤인데 그보다 무려 64%가 더 많습니다. 104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행보다는 12배나 더 많습니다. 일개 ETF 상품이 그렇게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겁니다. 금이 투자수단으로 얼마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미국인의 금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실물 금도 미국으로 많이 흘러들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어느 나라가 금을 많이 수입하는지를 보여줍니다.5 수출국은 스위스인데요. 스위스의 금 제련산업은 세계적 수준입니다. 그래서 스위스로 모인 세계의 금들이 골드바 같은 것으로 가공된 후 세계로 수출됩니다.6 2018년과 2019년에는 중국과 인도, 영국이 스위스 금의 대량 수입국이었습니다. 인도와 중국은 장신구용이 많고요. 영국인들은 브렉시트에 따른 불안 때문에 금을 많이 찾았답니다. 그런데 2020년 들어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금 실물 ETF의 급성장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금을 매우 중요한 투자수단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글로벌 금 시장에서의 또 다른 큰 손은 중앙은행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곳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입니다. 8,133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금 총량 20만 톤의 4%에 해당합니다.
미국은 원래 금본위제를 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 실물을 내줘야 했으니까요. 1958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할 당시 미국의 금 보유량은 2만 톤이 넘었습니다. 세계 금 총량의 10% 이상이었고 각국 정부 금보유총량의 3/4에 해당하는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일본과 유럽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들의 무역거래를 위한 달러가 대량으로 풀려나가게 되었고 달러 가치에 대한 의구심도 같이 커졌습니다.
달러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하게 된 각국 정부들은 미국에 달러를 주고 금을 받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금재고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미국은 1971년 급기야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을 했습니다.7 금본위제가 막을 내린 겁니다. 미국 연준의 금 보유량은 1980년경부터 8,100톤 수준이 된 후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이 그 다음으로 많은 금을 보유한 나라들입니다. 지난 3~4년을 보면 이 나라들의 금 보유량은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금에 대해서 시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프에서 보시듯이 오히려 보유하고 있던 금을 대다 팔았죠.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런 추세는 반대로 돌아섭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이 돈을 많이 찍어 내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각국 정부가 미국 달러만으로 외환보유고를 구성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외환보유고에 금의 비중을 늘리는 나라가 많아졌습니다.
한편 지난 3~4년간은 정치적 목적 때문에 금 매입을 늘린 나라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반미정책을 펴는 나라들의 경우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비해서 달러 대신 금을 보유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금을 사들여야 하죠. 러시아, 중국, 터키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중앙은행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금을 사들일 것 같습니다. 세계금협의회는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2020년에는 375톤, 2021년에는 450톤의 금을 사들일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8
지금까지 장신구용 수요, 투자용 수요, 중앙은행의 수요를 살펴봤는데요. 금 시장의 다음 큰 손은 산업용 수요자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전자기기들일 겁니다. 스마트폰 같은 소형 전자기기들에 미량의 금이 들어가는 데 그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총량은 상당합니다. 연간 320톤 정도의 금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용으로 사용됩니다. 그 밖에도 금은 치과용, 의료용 등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금의 가장 큰 수요자는 반지, 팔찌 등 장신구용 소비자들인데 코로나로 인해 올해 그 수요는 많이 줄었습니다. 반면 민간 투자자들, 특히 미국의 금 실물 ETF가 금 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했습니다. 중앙은행들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 보유를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을 사모으는 나라도 있습니다. 금은 스마트폰 등 산업용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오늘은 금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10.4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1 https://www.gold.org/goldhub/data/above-ground-stocks
2 https://www.ft.com/content/8a53dbaf-8210-4c60-8753-e3018fa1b1e1
4 https://www.ft.com/content/5316a714-6aa9-4919-ab29-96fab47cf2d4
5 https://www.ft.com/content/8a53dbaf-8210-4c60-8753-e3018fa1b1e1
7 https://www.federalreservehistory.org/essays/gold_convertibility_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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