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 달러만 기축 통화인가?

김정호 / 2020-07-21 / 조회: 1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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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입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드러냅니다. 다음 그래프는 2000년, 2007년, 2019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가 어떤 돈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1 가장 최근인 2019년 달러의 비중은 61.8%입니다. 2000년 당시 71.3%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미국 달러가 압도적입니다.



2위는 20.2%인 유로화입니다. 2000년에 18.3%이던 것이 계속 높아져서 2007년 26.1%에 도달했으나 그리스발 부도위기를 겪으면서 떨어져 20.2%가 되었습니다. 또, 눈 여겨 봐야 할 통화가 중국의 위안화 또는 인민폐입니다. 2019년 비중은 2.0%로 5.3%의 일본 엔화, 4.5%인 영국의 파운드보다도 못합니다.


중국 위안화의 위상은 경제규모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중국이 16%로서 24%인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 그런데 통화의 비중은 2%에 불과합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GDP 비중과 통화 비중이 비슷합니다. 일본은 GDP 비중 5.7%, 통화 비중 5.3%, 영국은 GDP 비중 3.1%, 통화 비중 4.5%, 유로화의 모체인 유럽연합은 GDP 비중 21.8%, 통화 비중 20.2%입니다. 중국만 유독 통화의 위상이 GDP의 위상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당연히 중국은 억울한 생각이 들겠죠. 그래서 2008년 외환위기 이후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 이뤄졌어요. 중국의 후지타오 주석은 2009년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통화의 다원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같은 취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오바마는 그럴 필요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중국의 달러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위안화의 가치를 달러당 6~7위안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했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위안화 통화스와프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2016년에는 위안화가 드디어 IMF의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을 위한 통화바스켓에 편입되기에 이릅니다. 중국 위안화의 비중은 11%로서 42%인 미국 달러의 1/4에 불과하지만 일본 엔화의 8%보다는 높은 위상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중국 돈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2019년 외환보유고에 위안화의 비율 2%도 0%이던 그 이전보다 높아진 것은 맞지만 경제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왜 미국 돈은 그렇게 힘이 강할까요? 그리고 중국 돈은 왜 터무니없이 영향력이 작을까요? 달러의 위상에 대한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달러가 국제 기축통화일 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달러의 가치를 믿기 때문입니다. 조금 허망하게 들리는 이유이지만 돈이 돈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뢰에 있습니다. 달러는 물리적으로 보면 그저 종이 또는 계정 상의 숫자에 불과합니다. 과거 달러가 태환지폐일 때는 달러가 곧 금이라는 안전판이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1년 금 태환(교환)이 중지된 이후 달러는 그저 종이이자 숫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돈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은 남태평양의 얍이라는 섬의 집 모습인데요. 집 앞에 놓은 큰 돈을 보시기 바랍니다. 큰 맷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입니다. 이 섬의 사람들은 이처럼 커다란 둥근 돌을 돈으로 사용했습니다. 크기가 클수록 돈 가치도 많이 쳐줬답니다. 돌이 워낙 크고 무겁다 보니까 돈을 내고 물건을 사고 팔아도 돈인 돌을 움직이지는 못할 때가 많았답니다. 그냥 남의 집 앞에 있어서 실제 주인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의 주인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겁니다. 얍섬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답니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멀리 떨어진 섬에서 큰 돌을 구했답니다. 큰 부자가 된 거죠. 하지만 배에 싣고 오던 중 풍랑을 만나서 돌이 바다에 빠졌답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재산이 사라진 겁니다. 그런데도 얍섬 사람들은 수대에 걸쳐 그 집을 큰 부자로 인정해 주었답니다. 돈이 돈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돈이라고 믿기 때문임을 말해주는 사례입니다.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일 수 있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기 때문입니다.



돈이라고 믿기 때문에 돈이라는 설명은 여전히 허망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미국 달러의 가치를 믿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에 대한 몇 가지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화가 통화 가치의 관리를 제법 잘 해왔다는 겁니다. 미국의 연준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의 목표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어떤 나라의 중앙은행보다 포퓰리즘 등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롭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기준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연준의 독립성을 해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까지 연준은 행정부와 의회로부터 철저히 독립된 상태에서 물가와 실업을 관리해왔습니다. 그것이 달러에 대한 믿음의 기반이 되어 왔습니다.


둘째는 국력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세계 GDP의 25%를 담당해왔고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9년의 비율은 24%입니다. 군사적으로도 압도적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세계의 최강대국입니다. 달러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돈인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 역시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로화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취약합니다. 유로를 발행하는 주체는 유럽연합입니다. 그런데 살펴봤듯이 유럽연합은 남-북유럽 사이의 갈등, 동-서유럽 사이의 갈등 등의 문제로 앞날이 어둡습니다. 유럽연합이 해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로화에 대한 신뢰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셋째는 거래와 교환이 가장 자유로운 통화라는 점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합니다. 돈의 거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달러를 보유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처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안심하고 미국 달러를 보유할 수 있게 해줍니다.


종합하자면 미국 중앙은행의 프로의식과 독립성, 탄탄한 경제, 경제적 자유가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 달러를 믿을 수 있게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해 보면 중국돈의 위상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 돈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공산당 고위간부가 아니라면 중국의 인민은행이 어떤 기준으로 위안화를 발행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위안화의 미래에 대해서 예측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둘째, 거래와 교환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위안화의 거래에 대한 많은 규제들 때문에 일단 위안화를 보유한 다음에 처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위안화의 보유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큰 요인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미국 달러가 오래 동안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러화의 추락설 또한 끊이지 않아 왔습니다. 최근에 달러 추락설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사람은 스테펜 로치(Steven Roach)입니다. 투자회사인 모간스탠리아시아의 대표를 지냈고 지금은 예일대 교수로 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달러 가치가 35%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2 그렇게 되는 근거로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달러가 너무 많이 풀린 데다가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둘째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인해 달러의 사용이 줄어들게 된다는 겁니다. 2007년에도 달러 가치의 추락에 대한 예측이 제기되었습니다. 그 당시 예측을 한 사람은 미국 연준 의장을 오래 동안 지낸 그린스펀이었는데, 유로화가 미국 달러를 밀어 내고 국제 기축통화가 되리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달러 가치는 추락하게 되죠.



그러면 실제 달러의 가치는 어떤 상태일까요? 미국 달러의 가치는 보통 달러 인덱스로 측정합니다.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5개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의 상대 가치가 달러 인덱스입니다. 위 그림은 달러 인덱스의 추이를 보여줍니다.3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달러의 위상이 추락을 했고 인덱스는 80 수준을 오르내렸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그린스펀의 예언이 맞아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달러가치는 떨어지고 유로화의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달러의 위상은 다시 높아졌습니다. 2015년 달러 인덱스는 거의 100으로 뛰어올랐고 줄곧 그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7월 19일 현재 96으로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조짐은 전혀 없습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의 위상을 차지한 것은 1921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입니다. 햇수로 따지면 99년입니다. 달러 이전에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105년 동안 기축통화였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그 전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의 통화가 기축통화였고 각각 80~100여년 동안 그랬습니다. 미국 달러의 위세는 얼마나 더 갈까요? 당분간은 달러를 대체할 통화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젠가는 바뀌겠지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사람들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1 https://www.brookings.edu/wp-content/uploads/2019/09/DollarInGlobalFinance.final_.9.20.pdf

2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20-06-14/dollar-crash-how-will-it-unfold?sref=9fHdl3GV

3 https://tradingeconomics.com/united-states/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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