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는 '논리적인 모순 없이’ 배분된 재산권 제도를 '일관성있게’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이 사상은 원래 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한 용어인 자유주의/리버럴리즘(liberalism)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정부간섭을 옹호하는 좌파 국가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기 시작하면서, '진짜(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졸지에 이름을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었고, 결국 'libertarianism’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언어적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 대략 1960년대에 들어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에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이 재탄생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오스트리아학파의 위대한 거인 머레이 뉴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이다.
여기에는 역설적인 점이 하나 있다. 원래 'libertarianism’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좌파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좌파 국가주의자들의 언어적 침공에 밀려난 피해자인 고전적 자유주의자들도 일종의 가해자가 되버린 셈이다. 머레이 라스바드 역시 자신의 저서 <미국 우파의 배신>(The Betrayal of the American Right)에서 이 점을 인정하였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보고자 한다: "One gratifying aspect of our rise to some prominence is that, for the first time in my memory, we, 'our side,' had captured a crucial word from the enemy. 'Libertarians' had long been simply a polite word for left-wing anarchists, that is for anti-private property anarchists, either of the communist or syndicalist variety. But now we had taken it over."
역사가 어찌되었건 관건은 자유를 논리적으로 일관성있게 옹호하는 어떤 사상이 오늘날 'libertarianism’으로 불린다는 점에 있다. 한국에서 'libertarianism’은 대체로 '자유지상주의’라고 번역된다. 해외 실정과 유사하게도, 존 롤스를 필두로 하는 좌파사상인 'liberalism’이 '자유주의’라는 번역어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는 편의상 사용하는 용어가 될 수 있어도, 아주 정확한 번역어는 아니다.
'libertarianism’은 영어단어 'Liberty’와 접미사 '~tarianism’을 조합한 단어이다. 문제는 '~tarianism’으로 끝나는 영어단어 중 '~지상주의’로 번역되는 사실상 유일한 단어가 바로 '자유지상주의’라는 점이다.
'humanity+tarianism’이라는 구조를 가진 'humanitarianism’은 결코 '인본지상주의’로 번역되지 않으며 '인본주의’ 혹은 '박애주의’로 번역된다. 'egalitarianism’은 '평등지상주의’가 아니라 '평등주의’이다. 'totalitarianism’역시 '전체지상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이고, 'utilitarianism’은 '효용지상주의’가 아니라 '공리주의’ 혹은 '효용주의’이다. 마지막으로, 'vegetarianism’은 '채식지상주의’가 아니라 '채식주의’이다. 심지어 '~지상주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외모지상주의’을 뜻하는 영단어는 '~tarianism’으로 끝나지도 'lookism’이다.
이러한 영어-한국어 번역 관습을 고려한다면 'libertarianism’을 '자유지상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정확하지 못하다. 'libertarianism’의 정확한 번역어는 '자유주의’이다.
"~지상주의"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예컨대, 외모지상주의, 자본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 결과지상주의 등)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지상주의’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여 경희대학교 철학과의 정연교 명예교수는 지난 2013년 머레이 라스바드의 명저 <새로운 자유를 위하여>(For a New Liberty)를 번역할 때 'libertarianism’의 번역어로 '자유지선주의’로 제안했는데, 한국어에서 '~지선주의’라는 접미어로 끝나는 단어는 사실상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 언어의 사회성과 관습성을 고려한다면 최선의 대안은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단어 '자유주의’는, 사실상 국가주의 세력에 의해 오염된 단어이다. 좌파 국가주의자와 우파 국가주의자 모두 자신의 이념을 칭할 때 '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특히 예전에는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진중권, 유시민, 혹은 조국 등의 사회자유주의를 의미했다면, 최근에는 경제적 간섭주의와 정치적 권위주의가 결합된 기묘한 보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에는 종종 무리가 따를 수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맞이한 언어적 위기가, 오늘날 한국의 리버테리언들에게도 유사하게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표하자면, 'libertarianism’의 정확한 번역어가 '자유주의’라고 해도, 상기한 현실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libertarianism’을 굳이 번역해서 표현하기 보다는 그대로 음차하여 '리버테리어니즘’이라고 기술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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