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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은 결국 날조였나?

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6-09-18

4월에 아르테미스 2호(Artemis II) 임무 후, 1969년 달 착륙이 날조였고 실제로 TV 방송실에서 촬영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이 새로워진 탄력을 얻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이것들 같은 질문들이 더욱더 제기되었다:

1. “만약 우리가 1969년에 아폴로 11호(Apollo 11) 달 착륙으로써 달에 착륙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왜 그것을 심지어 오늘도 할 수 없는가?”
2. “지금 그들이 오직 달의 궤도를 돌기만 한다는 점은 이상하다−그것은 그들이 전혀 실제로 착륙에 숙달하지 못한 것처럼 들린다.”
3. “기술은 더 낫게 되어 있지만, 지금 우리는 착륙하는 대신에 그저 달 주위를 비행하기만 하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4. “50년 전에는 그들이 덜 선진 기술을 가지고 그것을 했다고 주장된다−지금 수퍼컴퓨터들을 가지고, 그들이 할 수 없다?”
5. “만약 그것 모두가 전에 작동했다면 그들이 왜 전적으로 새로운 로켓들과 시스템들이 필요한가?”
6. “만약 아폴로가 진짜였다면, 달 착륙들은 지금까지는 정례적이어야 한다−그러나 그것들은 그렇지 않다.”
7. “내게는, 그것이 실제로 과거 그때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그들이 알기 때문에 그들이 조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질문들은 그럴듯한 것 같다: 반세기 이상 후에, 인간들이 왜 아직도 달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들이 왜 지금 착륙하는 대신 그저 그것 주위를 비행하기만 했는가? 컴퓨터 기술이 그때 이후로 아주 극적으로 발전했으므로 과거 그때 가능했던 것은 오늘날 아주, 아주 더 쉬워야 한다.

달 착륙이 TV 방송실에서 촬영되었는지에 관한 의심들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회의론자들은, 무엇보다도, 주장했다: “여러 비디오 장면에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그러므로 각각의 장면들이 지구에서 촬영되었음이 틀림없다.” 우리가 알듯이, 달에는 바람이 없고, 그래서 깃발이 어떻게 바람에 펄럭일 수 있을까? 이 주장들을 자기의 책 ≪달 날조(The Moon Hoax)≫에서 광범위하게 다루는 토마스 에버스버그(Thomas Eversberg)는 지적한다: “... 우주 비행사 중 한 사람이 깃발에 혹은 그것의 깃대에 손대거나 그것이 움직이기 2-3초 전에 그것에 손대지를 않고 깃발이 움직이는 단 하나의 장면도 없다. '펄럭이는(fluttering)’ 움직임은 오직 그 깃발이 방금 접촉되었거나 지금 접촉되고 있는 경우에만 관찰될 수 있다.” 그 밖에도: 만약 달 착륙이 방송실에서 촬영되었다고 추정된다면, “바람(wind)”이 어디서부터 거기로 왔는가?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에어컨 시스템에서부터. 에버스버그는 또한 다른 주장들도 자기 책에서 논박하는데, 예를 들면, 달의 하늘에서는 왜 아무 별들도 볼 수 없는지 같은 것이다.

1960년대에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 우주 경쟁이 있었다. 각 측은 자기 체제의 우월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승리하기를 원했다. 소련은 왜 사기라고 주장되는 것을 사기로서 즉각 폭로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쉬웠을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폭로할 온갖 이유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1969년 7월에 달 착륙 후, 다섯 개 더 달 착륙이 뒤따랐다. 비록 각 추가적인 가짜가 그 사기가 폭로될 가능성을 증가시켰을지라도, 누군가가 왜 TV 방송실에서 다섯 개 추가 영화를 일부러 촬영했을까?

그렇지만, 회의론자들의 질문은 정당화된다: 만약 인간들이 정말로 과거 그때 달에 도달했다면, 다음 50년간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 나의 책 ≪새 우주 자본주의(New Space Capitalism)≫(https://www.skyhorsepublishing.com/9781510788220/new-space-capitalism/)에서, 나는 이 질문에 답한다: 그것은 국가 운영 우주 비행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폴로는 엄청난 성공작이었지만, 뒤따른 우주 왕복선(Space Shuttle) 프로그램은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발사 비용들은 수십 년간 정체했다. 민간 산업에서는 모든 곳에서 급속한 진보가 발생했지만(그저 PC들과 이동 전화들을 생각하기만 해 보라!), 국가 주도 우주 비행은 정체했다.

나의 책의 첫 장은 “미래의 종언(The End of the Future)”이라고 제목이 붙여져 있다. 거기서 나는, 2011년 후에는, 미국이 더는 심지어 자기 자신의 로켓들을 사용하여 미국 우주 비행사들을 국제 우주 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에 운송할 수조차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저 6년 전에라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자기의 팰컨 9호(Falcon 9)로 다시 성공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발사 비용들을 우주 왕복선과 비교하여 95퍼센트만큼 줄였는지 보여준다. 국가는 실패했다−다시 한번!

그러나 1972년 이래, 화성에는 말할 것도 없고, 달에 왜 인간들이 없었는가? 왜냐하면 진정으로 강력한 이유가 없이는 전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그 이유는 소련과 미국 사이 체제의 경쟁이었다. 일단 그 경쟁이 판결 났을 때, 그저 어떤 강력한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이 승리했었다−증명할 그 밖에 무엇이 있었는가? 왜 계속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나?

오직 지금에서야 미국인들은 달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인들이 거기에 먼저 도달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위신은 장기적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경제적 동기들이 없으면, 미래 진보는 그렇지 않으면 가능할 것 훨씬 아래에 머무를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유인들의 결여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에는, 1967년의 우주 조약(Outer Space Treaty of 1967)에 연결되어 있다. 이 조약의 제2조에 따르면, 국가들은 천체들이나 천체들 위의 땅을 소유하도록 허가되지 않는다. 이것이 또한 사인들에도 적용되는지는 우주법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 된다. 불분명한 법적 상황이 민간 주도를 마비시킨다.

달 착륙 후, 아폴로 프로그램의 설계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앞으로 해들에서 우주여행의 우선순위들이 무엇이어야 할지 질문받았다. 그는 대답했다: “우리는 우주 비행이 지구상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는 점, 심지어 이문이 있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하고, 사실상, 우주 프로젝트들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주도 우주 비행이 달성하지 못했던 바로 그것이다.

달, 화성, 그리고 소행성들에서 사유 재산을 얻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는 순간, 인간 역사에서 가장 보기 드문 부동산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경제적 엔진이 있을 것이다! 주식 시장들은 화성과 소행성 주식들, 소위 우주-부동산 투자 신탁들(Space-REITs; Space-Real Estate Investment Trusts)에서 호황을 경험할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1862년의 자영 농지법(Homestead Act of 1862)이 없었더라면, 서부 미국의 정착은 훨씬 더 느리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법은 “서부로 갈(Go West)” 필요를 기꺼이 마음에 두는 누구에게든 거의 공짜 땅을 제공했다. 모든 성인 미국 시민과 이민자는 160에이커 땅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그것에 5년간 정착해서 경작하기로 동의한다는 조건에서였다. 그 결과는 동부 주들과 유럽으로부터 중서부로 대량 이주였는데, 이것은 농장들, 정착지들, 그리고, 특히 철도들의 건설들과 관련된, 사회 기반 시설의 개발로 이어졌다.

우리는 우주에서도 사유 재산이 필요하다. 사유 재산이 없는 체제들은 지구상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우주 정복의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들이 필요하다.


이 칼럼은 2026년 5월 10일에 작성되었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책 ≪새 우주 자본주의(New Space Capitalism)≫의 저자다. https://www.skyhorsepublishing.com/9781510788220/new-space-capitalism/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https://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