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왕복선: 정부 운영 우주여행의 잃어버린 수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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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라이너 지텔만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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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은 1981년부터 2011년까지 30년 동안 거의 2,000억 달러를 다 써버렸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하나의 새 연구는 번쩍 정신이 들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온갖 기준에 비추어도, 우주 왕복선은 그것을 둘러쌌었던 심지어 별로 많지 않은 희망에조차도 미치지 못했었다. 그리고 우주 왕복선은 여전히 날고 있었는데, 단지 그것을 더 좋은 날개가 달린, 재사용할 수 있는 우주선으로 대체하려는 모든 노력도 역시 실패했기 때문뿐이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 교수, 매슈 H. 헤르슈(Matthew H. Herrsch)가 자기의 최근 책, ≪어두운 별: 우주 왕복선의 새 역사(Dark Star: A New History of the Space Shuttle)≫에서 쓴 것에 따르면, 이것은 어떤 기술적 결점들이나 관리 실수들 때문도 아니었고, 오히려 “우주 왕복선의 설계와 그것의 근본적인 목적 결여”에서 생겼다.
NASA에 있는 그리고 미 공군 안의 많은 사람은 로켓처럼 이륙하고 비행기처럼 착륙하는 “팔방미인(jack of all trades)” 우주선 개념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날개들을 가진 그러한 우주선을 건조한다는 전 생각은, 비록 그것들[날개들]이 대부분 여행에 방해자가 되고 오직 착륙에만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광범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우주 왕복선은, 흔히 갈등하는 이익들과 요건들인 것을 많이 만족시키도록 의도된, 정치적 타협이었다. 우주 왕복선은 다음을 포함하는 다양한 과업을 충족하도록 기대되었다:
− 과학적 위성들의 항공 모함으로서
− 궤도 실험실로서
− 우주 정거장들과 행성 간 우주선들에 서비스하는 항공기로서
− 상업적 유효 탑재량들을 위한 배달 탈것으로서
− 외교와 국제 협력의 도구로서
− 군사 우주 비행기로서
이 기능들의 다수는 유인 우주선의 필요 없이 달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모두 14명의 우주 비행사가 1986년 챌린저 사고와 2003년 컬럼비아 사고에서 사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거의 모든 이 과업이 무인 우주선으로 더 값싸고 덜 위험하게 수행될 수 있었을 때 사람들을 그러한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해 질문을 제기한다.
비용들은 예상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각 비행은 견적 5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는데, 이것은 아폴로 시대 발사들의 비용과 비슷했다. 1파운드의 유효 탑재량을 운반하는 것은 낙관적인 예상들이 예측했었던 것보다 약 10배 더 비싸다는 점이 드러났고 확실히 전통적인,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로켓들과 관련된 비용들보다 더 적지 않았다. 라이너 라이흘(Reiner Reichl) 같은 전문가들은 만약 개발 비용들, 유지, 재생 등이 포함되면 그 비용들을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한다.
종종, 외재적 동기들이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우주선을 제조하는 것을 록웰 인터내셔널(Rockwell International)에 의뢰했는데, 왜냐하면 닉슨 대통령이 선거들에 임박해서 캘리포니아 경합주에 기지를 둔 회사에 계약을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타협과 절약이 그것[계약]의 배치를 움직였었고, 그것의 주요 편익은 그것을 선거해에 허가하는 것에 있었다.” 계약들은 자주 정치적 고려들에 근거하여 수여되었는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관행이다: “다양한 입법자에 의한 우주 왕복선의 지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나라 전역에서 하원 의원 선거구들에 있는 회사들이 날개들, 방향타, 그리고 궤도 비행체들의 그 밖의 부분들을 제조했고, 그다음 부품들을 최종 조립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팜데일(Palmdale)에 있는 록웰의 공장으로 수송했다.”
예를 들어, 티오콜(Thiokol)에 우주 왕복선의 고체 연료 로켓 추진체들(solid rocket boosters), 줄여서 SRB들을 제조하도록 의뢰한 결정은 유타주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 의한 정실의 고발들로 더럽혀진 채로였다. 1986년 1월에 있었던 비극적인 챌린저 사고는 만약 티오콜의 경영진이 발사를 허가하는 오도된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더욱더 비통한데, 왜냐하면 회사 고용인 중 한 사람이 우주 왕복선의 SRB들에 있는 접합 부분들을 막은 O링들(O-rings)이 추운 날씨에 위험할 정도로 딱딱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단호하게 경고했었기 때문으로, 이것은 그날 일어났고 사고로 이어진 문제이다.
탑승원은 교사를 포함했는데, 그녀는 여섯 우주 비행사와 함께 사망하였다−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 우주 왕복선을 가지고 하는 민간 우주 관광 여행을 위한 어떤 계획들도 실제로 끝났다. 객관적으로 우주 왕복선을 타고 비행하는 것이 아폴로 우주선보다 더 위험하지 않았고, 더 높은 사상자 수가 그저 더 큰 탑승원 크기의 결과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주 왕복선 비행들이 비행기에서 여행만큼 안전한 것으로 잘못 믿었다. 그러나 전문 우주 비행사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매우 잘 알았다.
챌린저 사고 후, 모든 발사가 두 해 이상 동안 중지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과업, 민간 위성들을 우주 속으로 운송하는 과업도 역시 중지된다는 점을 의미했다. 이 예기치 않은 운영 중지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헤르슈가 옳게 비판하듯이, “[예기치 않은 운영 중지가 없었더라면,] 우주를 탐사하는 대신, NASA는 발사 서비스들에 대한 배아기의 자유 시장을, 정치적 피임명자들이 선택하는 주요 방위 계약자들로부터 값비싸고 신뢰할 수 없는 로켓들을 구매하고, 그다음 특혜받는 사용자들을 위해 그것들의 비행 가격들을 비용 아래로 매겨서, 기술을 개선했을지 모르는 경쟁적 압력들을 파괴할, 단일 정부 제공자로 대체할 것이다.”
1986년 8월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NASA가 더는 민간 위성들을 발사하는 사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결정했다. 이것은 민간 제공자들을 위한 길을 닦았는데, 특히 레이건이 1년 반 전에 한 연설에서 자기 비전을 이미 개설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효 탑재량들을 우주에 넣는 데 관심이 있는 회사들은 민간 부문 발사 서비스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가장 큰 자산−우리 자유 기업 체제의 활력−을 활동시킬 것입니다.”
이 기사는 처음 2024년 7월 23일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에 게재되었다.
https://www.washingtonexaminer.com/opinion/3095318/the-lost-decades-of-government-run-space-travel/#google_vignette
라이너 지텔만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The Power of Capitalism)≫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25779/), ≪반자본주의자들의 열 가지 거짓말(In Defense of Capitalism)≫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1471405/), 그리고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How Nations Escape Poverty)≫(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830632/)의 저자이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