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 구절은 우리 시대의 담론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토가 되었고, 모든 정책 토론의 핵심 논거가 되어왔다. 2020년, "나는 과학을 믿는다"라는 문구로 캠페인을 벌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을 예로 든다면 이러한 정서가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확산되었는지는 명백하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F.A. 하이에크가 분명히 밝혔듯이, 과학의 이러한 우월성은 사실 과학 탐구의 실제 목적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은 궤도에서 벗어난 과학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과학 혁명은 우리에게 많은 발전을 가져왔고 지난 수천 년 간 물질적, 기술적, 의학적 진보의 핵심 요인이었다. 작년에 과학자들이 짧은 시간에 여러 개의 백신을 독립적으로 개발함에 따라 이러한 상황은 다시 한번 연출됐다.
그러나 과학은 무엇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가를 전혀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서로 다른 절충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없다. 예를 들어, 과학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건강에 심각한 전염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공적 생활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는 없다. 과학적 오만은 지난 수세기 동안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이성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은 실로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이에크가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 경고한 것처럼 관료주의적 정책집행을 조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과학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의 대성공에서 끝없는 "자만심"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이성의 남용과 그로 인한 쇠퇴" 도 생겨났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이 자연과학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동일한 방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다.
과학에 대한 이념적, 종교적인 관점을 취하는 과학주의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무시한다. 사회는 원자, 분자, 아메바와 다르게 행동을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 없는 자기 결정적인 인간들의 구성체라는 점이다. 과학주의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하이에크가 <과학의 반혁명>에서 언급했던 과학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자연세계와는 다르게 작동되는 인간행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사회과학은 사람의 의식적인 행동, 즉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경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한 연구이다. 역설적이게도 과학 자료와 정보가 증가했을지라도, 과학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인간행동에 대해서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학주의라는 잘못된 이론은 '집단주의’로 이어질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되어왔다. 만일 정치인들이 이러한 종류의 과학을 항상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부의 행동과 개입은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든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우리의 정책 체계는 전염병학자들이 만든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전염병에 대한 새로운 제한사항이나 의무사항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례 없는 1년 이상의 국가적 제재로 돌아왔다. 우리는 하이에크가 만약 코로나 유행 기간동안 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 지 확실히 알 순 없다. 그러나 이 위기는 그가 이미 수십 년 전에 한 과학주의에 대한 경고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이에크가 앤서니 파우치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결과에 큰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여부 판단은 이러한 '전문가들’에게 맡겨져선 안 된다. 그래야만, 과학지식의 미명에 빠지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다시 중심에 둘 수 있을 것이다.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입니다.
Kai Weiss, A 40-Year-Old Warning on How Humanity’s 'Unbound Confidence' in Science Can Undermine Reason—and Lead to Collectivism
25 August, 2021
번역: 예혁준, 오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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