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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안보관

박용옥 / 2006-03-09 / 조회: 4,370
I. NSC 선정 안보정책 목표와 과제


올 한해는 민족공조, 한미동맹, 한반도 평화체제 등 주요 안보 관련 이슈들을 둘러싸고 대내외적으로 매우 소란스러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특히 5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설 까지 겹쳐 국내정치상황이 예사롭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핵문제에 더하여 인권문제, 위폐문제 등 북한의 불법·범죄 행위가 부각됨으로써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압박도 한층 가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2. 17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금년 첫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올 한 해의 '안보정책목표’로 설정했으며, 이 목표달성을 위한 여섯 개의 '정책과제’도 선정했다. '북핵문제 해결구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전기 마련’, '한미동맹 조정협상 마무리’, '지속적인 신뢰구축으로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 '국방개혁의 가시적 성과 도출’, '대북인도주의 현안의 적극적 타개’, '안보정책에 대한 국민신뢰 제고’가 그 정책과제들이다.


우선 이 안보목표와 정책과제들을 보면, “올 한 해는 노무현정부의 '민족공조’ 위주의 대북정책이 더욱 급속히 추진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 과정에서 대내적으로는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보수세력과 혁신세력 간에,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통일지상주의 세력 간에 국론분열 현상이 심화되고, 대외적으로는 한·미간에는 물론 역내 국가간 힘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년간 노무현정부의 정책기조라 할 수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 '동북아 균형자 역할’, '남북민족공조 및 신뢰구축’ 등이 다분히 친북(親北)·탈미(脫美) 성향의 색채를 띠어 온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NSC가 발표한 안보정책목표와 정책과제들도 그런 성향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 글은 이번 NSC가 설정한 금년 '안보정책목표’와 선정된 '정책과제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II. '평화의 제도화’가 '평화·안보의 보장’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NSC의 결정은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 즉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간과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0여 년 간 우리의 역대 정부는 평화적인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2년 '남북 7. 4공동성명’과 '남북조절위원회’ 합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및 이의 이행·준수·감독을 위한 정치·군사·경제·사회 등 각 분야별 '부속합의서’와 '남북공동위원회’ 합의; 2000년 남북 정상 간 '6. 15 공동선언’, '장관급회담’ 및 각종 실무회담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북한의 대남도발은 끊이지 않았고, 특히 작년 2월 10일에는 북한당국이 '핵무기보유’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한반도를 '핵무기지대’(nuclear-weapons zone)로 변질시켰다. 안보환경은 오히려 훨씬 악화된 것이다. 즉,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는 어떤 제도적 장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확고한 군사대비태세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이다. 이번 NSC의 안보정책목표 설정과정에서 이런 역사적 교훈이 간과된 것 같다.


또한 현 정부의 이런 안보관은 목표 우선순위를 혼돈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평화를 위해 먼저 안보태세를 굳건히 하는 개념이 아니라, 먼저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그 결과로 안보환경이 개선될 것을 기대하는 개념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옛 로마인들의 현실적 사고방식과는 반대로 '전쟁에 대비하는 대신에 평화를 추구 하겠다’는 '극단적 평화주의자’(extreme pacifists)들의 이상주의적 사고방식을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남북한관계와 한반도 상황은 이런 이상주의적 발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III. '안보’ 강화와 거리 먼 정책 과제들

지난달 17일 NSC에서 선정한 여섯 가지 안보정책과제들도 결국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라는 안보정책목표를 지향하는 과제들이란 면에서 볼 때, 이들이 우리 안보환경에 미치게 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1. '북핵 해결구도 수립 및 한반도 평화체제 전기 마련’: 북핵해결 지연 초래


북핵문제는 벌써 몇 년이 지난 문제인데 지금 다시 그 '해결구도’를 수립하겠다는 것인가? 남북한은 이미 10여 년 전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재처리와 우라늄농축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북한의 비밀 핵개발 의혹은 계속됐고,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부단한 대북 핵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작년 2월 핵무기보유를 선언 했다. 또 지금도 계속 늘려나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실정이 이렇다면, 현 시점에서는 아직도 '북핵 해결구도 수립’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북핵제거를 위한 국제공조관계 강화’ 차원에서 정책과제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입장은 북핵문제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연계하여 장기적 과제로 다룰 정도로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현 안보당국자들이,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나마 남북관계개선의 모양새를 보이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보유 사실에까지 눈을 돌린다면, 이는 도리어 안보를 저해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북유화(宥和)의 늪에 빠져 오히려 안보위기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2. '한미동맹 조정협상 마무리’: 서두를 일이 아니다


한미동맹 조정협상은 시대적 상황변화에 부응하여 이루어지는 당연한 일이다. 단지 조정대상의 성격에 따라 협상의 우선순위와 완급(緩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이미 협의를 마친 문제들의 원만한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무협의는 금년 내로 마무리 하는 것이 바람직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 주한미군 역할·임무의 추가인수, 연합사 지휘체제 등 협의 중에 있거나 앞으로 협의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협상도 금년 내로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무리다. 이런 문제들은 시한부적으로 조급하게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군의 준비태세에 따라 필요한 시기에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는 문제들이며,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더욱 아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해 한반도 군사환경이 '핵무기지대’로 변질된 현실여건 하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북억제 및 대응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 또는 미국으로부터의 '핵우산’은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함께 한미동맹 조정을 위한 협상방향과 협상속도가 검토되어야 한다. 즉, 한미동맹 조정협상은 안보태세 및 대북억제태세를 확고히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하며,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3. '지속적 신뢰구축으로 남북관계 질적 도약’: 북한 체제변화 유도해야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은 쌍방이 서로 상대방을 합리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합의사항은 존중되고 실천된다는 일말의 신뢰감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이것은 단기간 내 시한부적으로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양자대화가 가능해진 90년대부터는 한반도 안보 및 평화문제는 남북한 사이에서가 아니라 미·북 양자 간에 협의될 문제며 남한이 껴들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남북군사대화도 쌍방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되지 못했다. 북한 측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대남전략상 필요에 따라 때로는 군사회담에 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측 제의를 일축하는 자세로 일관해 왔으며, 지금도 그 행태는 여전하다. 이번에 3월 2-3일 양일 간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열린 제3차 남북장성급회담도 이런 관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기대할 수 없고,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는 남북대화와 군사대화를 국면 타개책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말 이후에서 1990년대 초까지의 남북고위급회담 등 활발한 남북대화는 미국과의 양자대화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여건에서 이루어진 남북대화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의 신뢰구축, 특히 군사신뢰구축은 북한의 개혁개방 등 체제변화 없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모든 남북대화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적극 유도해야 하며, 현 체제를 유지·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4. '국방개혁의 가시적 성과 도출’: 병력·국방비 감축으로는 기대 못해


최근 정동영(鄭東泳) 전통일원장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2015년 이전에 군병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40만 규모로 축소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절감되는 국방비 여유분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참으로 당혹스런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즉, 한편으로는 남북 신뢰구축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군병력과 국방비 모두를 감축하여 양극화 해소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 정부와 여권의 안보정책 구상이라면, 이런 분위기에서 추진되는 국방개혁이 과연 어떤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병력과 국방비의 '쌍둥이 감축’을 하면서 우리 군이 첨단정예군으로의 탈바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잘못된 상황인식일 뿐만 아니라 주변국 군사동향에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5. '대북 인도주의 현안 적극적 타개’: 인권문제 적극 제기해야


어떤 인도주의적 현안이 포함되는가가 문제다. 단지 이산가족의 정례적 상봉 행사에 만족하고, 국군포로나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송환 문제를 북측에 제기하고 그들이 호의적 반응만을 무한정 기다리는 등의 미온적 자세로는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을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국제공조 하에 북핵문제와는 별도로 북한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북한체제의 본질적 변화를 유도해야 할 때다. 북한에게는 '인권’보다 '생존권’이 더 절박한 문제라면서 대북지원에 급급해 하는 자세로는 국제적인 공감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개선에도 기여할 수 없을 것이다.



IV. 현 시점 최우선 안보목표는 '북한 핵무기’ 제거에 둬야


이번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선정한 안보정책목표와 정책과제들을 보면,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 남은 2년간 미국과의 거리를 점점 더 넓혀가면서, 민족공조 위주의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가운데, 북핵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연계하여 장기적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정책구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구도의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우리의 안보환경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신뢰할 만한 대응개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시점에서 우리 안보정책목표의 최우선순위는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 보다는 '북핵문제의 완전해결’ 또는 '북핵의 완전제거’에 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우리 안보이익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 군의 대북군사태세는 무의미해지며, 독자적 대북억제는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동맹관계와 연합방위체제 마저 흔들리게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 '균형외교’, '남북신뢰구축’도 모두 확고한 한미동맹관계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유사시 대한민국의 안보태세를 보장하는 것이며, 그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 두 동맹국 간 신뢰관계의 회복이다.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확고한 안보태세가 전제돼야 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 '안보태세’와 '평화의 제도화’가 병행 추진될 때, 국민은 정부의 안보정책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박용옥 /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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