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라크 전쟁의 1단계
지난 6월 28일 미국 및 연합국은 예상보다 이틀 빨리, 전격적으로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을 이양, 이라크 전쟁은 이제 비로소 전후(戰後) 단계로 돌입하게 되었다. 작년 3월 20일 시작된 이래 전쟁의 진행 단계를 구분하기 곤란했던 특이한 전쟁이었지만 이라크 전쟁도 결국 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 단계(戰前), 전쟁이 진행 중인 단계(戰爭), 그리고 전후(戰後)단계 등 전쟁의 제반 단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이라크 전쟁은 전쟁의 목적, 전쟁의 수행방식 및 전쟁의 진행과정이 모두 예외적인 전쟁이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전쟁의 진행 단계가 구분되기 어려운 전쟁 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적국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한 일이며 적국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의 저항 능력을 파괴해야한다’ 고 역설 했다. 근대 민족국가의 경우 저항 능력이란 그 나라의 군사력을 의미한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그동안 널리 받아들여지던 클라우제비츠的 전쟁 전통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진행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이 전쟁은 전통적 관점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복잡한 전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선 전쟁의 목표가 달랐다. 10년 전 걸프 전쟁(1990-1991) 당시 클라우제비츠的 전쟁관에 입각, 이라크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 미국은 '저항능력을 상실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거의 자동적으로 궤멸될 것이라고 기대 했었다. 그러나 걸프 전쟁 이후 미국은 후세인이 건재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막강해진 모습을 보고 걸프전쟁 당시 미국이 취했던 전략을 재평가 했다. 좋은 전략이란 적의 '힘의 중심'(Center of Gravity)을 정확하게 선정하여 파괴하는 것이며 근대 민족국가의 힘의 중심은 그 나라의 저항력 즉 군사력 이었다. 그런데 군사력을 잃은 후세인이 권좌를 지킬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을 보고 미국은 '독재국가의 경우 힘의 중심은 독재자 그 자신’ 이라는 새로운 전략 개념을 수립한 것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상정한 이라크의 힘의 중심은 '후세인 정권’ 이었다. 미국의 전략은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는 것, 즉 정권교체(Regime Change) 였다. 미국은 혁명적으로 발전된 군사 과학기술을 동원, 전쟁개시 불과 3주 만인 2003년 4월9일 후세인을 권좌에서 쫒아 버렸다. 미국의 군사 작전은 이라크의 저항력인 '이라크군’ 을 파괴하기 보다는 후세인과 그의 권력 장치를 파괴하는데 집중 되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전쟁 시작 43일째인 5월 1일 주요 전투 작전(major combat operation)의 종결을 선언하였다. 흔히 알려져 있는 바와 달리 부시 대통령의 선언은 종전(終戰) 선언도 승리(勝利) 선언도 아니었다. 주요전투작전이란 바로 미국의 제 1차적 전쟁목표인 후세인을 제거하는, 전쟁 과정상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2. 끝나기 어려운 전쟁
그러나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지난 1년 이상 종식이 될 수 없는 애매한 전쟁 상태의 연속이었다. 보통 전쟁 당사국 중 일방이 항복하거나 전쟁을 포기함으로서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 전쟁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 시킬 수 있는 상대방을 제거함을 목적으로 시작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전쟁이 계획대로 진행 될 경우 - 즉 상대국의 정권 제거에 성공할 경우 - 법적으로는 오히려 종결 불가능한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전쟁에는 승리 했지만 강화조약 혹은 평화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없는 상황에 직면 한 것이다. 결국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애초의 전쟁목표를 달성한 미국은 새로운 전쟁 목표를 수립해야만 하였다. 새로운 전쟁 목표는 이라크에 새로운 정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군사적인 목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목표였고, 예상 했던바 그대로 후세인의 제거보다 훨씬 어려운 목표라는 사실이 판명 되었다. 시간도 더뎠고 인명 피해도 많았다. 전쟁의 목표가 후세인의 군사력을 제거하는데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기를 든 채 도망갔던 후세인 추종 병력들이 서서히 반발하기 시작했고, 군사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평정 작업에 익숙하지 못한 미국군의 인명 피해도 늘어났다.
작년 5월 1일 주요 전투 작전 종결 당시의 인명 피해보다 5-6배에 이르는 인명 피해가 실질적인 전쟁이 종료 된 이후에 야기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발한 것이다. 2003년 5월 1일 주요전투작전의 종결이 선언된 이후, 후세인을 추종하던 세력과, 이라크로 유입된 외부의 테러리스트 세력은 미군 및 연합군에 대한 저항을 지속했다.
3. 이라크 전쟁의 게릴라전적인 성격
작년 5월 1일 이후 주요 전투작전이 종결된 이후 무장 세력의 반란이 지속되는 것을 보고 일부 논자들은 이라크 전쟁이 제2의 월남전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월남전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미군 및 연합군에 대한 저항은 이라크 국민들의 거족적인, 민족독립을 위한 저항이기 보다는 주로 지난 30년간 권력을 향유 했던 후세인 추종 세력의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종교적으로는 다수파인 시아파(60%), 소수파인 수니파(35%), 그리고 약간(5%)의 기독교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종적으로는 아랍족(80%)과 쿠르드족(20%)으로 구성된 분열적인 나라다. 쿠르드족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하기 때문에 아랍인이며 동시에 수니파인 사람들은 전체 이라크 인구의 약 15% 정도에 해당하는데 바로 이들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후세인의 비호아래 이라크의 독재 권력을 장악했던 세력이었다. 이들 아랍계 수니파는 특히 같은 수니파이지만 종족이 다른 쿠르드 족을 가장 가혹하게 다루었다. 쿠르드족은 후세인의 화학 무기 공격 때문에 십만 이상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미국 및 연합국에게 저항한 세력은 주로 후세인을 추종하던 수니파 아랍인들이었으며 이들의 저항은 거의 모두가 이라크 영토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바그다드-티크리트-알 라마디 라는 세 개의 도시를 연결하는 소위 수니 삼각형(Sunni Triangle)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지난 4월 이후 시아파의 과격주의자인 알 사드르에의한 저항도 역시 민족적인 것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것 이었으며 무력 저항 이후 정치적으로 명성을 날리는데 성공한 알 사드르는 미국에 대한 저항을 중지하고 이제 정당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저항의 성격이 민족주의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이고, 저항세력의 숫자가 오히려 소수라는 사실, 미국의 무기가 월남전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밀해 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라크는 게릴라전이 불리한 사막 지형이라는 사실 등은 이라크의 게릴라 전쟁이 월남전의 경우처럼 될 수 없도록 하는 요인들이다.
4. 이라크 전쟁과 테러전쟁
이라크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도 저항 세력의 반발은 상당기간 진행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저항 세력이 보유하고 있는 탄약 등 장비가 점차 고갈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라크 저항세력의 저항은 연합군을 향하는 것이기보다는 이라크 인으로 구성된 임시정부를 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도 달라 지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정권제거(Regime Change)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대테러 전쟁의 첫 번째 중요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미국은 앞으로 미국이 상정한 적국들에 대한 '정권제거’ 전쟁을 시작 할 경우 이라크 전쟁에서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
5. 이라크와 반 테러전쟁의 미래
미국은 약속보다 빨리 주권을 이라크 임시정부에 이양 했고, 후세인도 이미 이라크 임시정부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이라크 임시 정부는 대통령은 수니파가 맡았고 총리는 시아파가 맡았으며 부통령은 시아파와 수니파가 각각 1명씩 맡았다. 후세인 재임기간 가장 처절한 고통을 당했던 쿠르드족 출신들이 외교 및 안보관련 장관직을 차지했다. 내년 1월 31일까지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라크 임시정부의 새 총리는 내년 1월 2일 선거를 치루겠다고 약속했다. 의회가 구성된 후 이라크 정부는 '과도정부’ 라 불릴 것이다. 과도정부는 내년 8월 15일에는 헌법을 제정하며, 내년 12월 15일까지 완전히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2006년 1월 1일 진정 새로운 이라크 정부가 출범할 예정이다.
물론 새로 구성된 이라크 임시정부는 능력과 정통성에서 의문이 많다. 특히 치안과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걱정이다. 아마 사분오열된 이라크 국민을 완벽하게 대표하는 정치기구, 그리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이라크 정부의 건설은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 정부는 후세인 정권처럼 수십만 자국 국민을 살해할 폭력 정권도 아니며 인구의 15% 정도에 불과한 아랍계 수니파를 대표할 정권도 아니다.
이미 20만 명에 이르는 치안유지 병력 및 경찰을 확보한 이라크 임시정부는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치안을 유지하며 중동에서의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어려운 실험을 시작할 것이다. 전쟁 이후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던 역사적 사례들과 비교하면 이라크에서의 상황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전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권의 제거라는 특이한 전쟁 목표를 성취한 미국은 미국 대사관중 세계 최대로서 주재원이 1000명이나 된다는 대사관을 바그다드에 건설하는 등 비로소 이라크 전쟁의 전후(戰後) 단계로 돌입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미국의 반 테러 전쟁 양식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북한이 바로 미국이 상정하는 반 테러 전쟁의 주요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한 곧 증파되어, 새로이 형성된 이라크 정권 성패의 관건인 치안유지와 건설에 일조할 대한민국 국군의 눈부신 활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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