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용천역 폭발사고로 인해 우리사회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용천역 어린아이들과 주민들에 대한 조건없는 지원을 보내야 한다는 인도주의와 민족애, 이를 빌미로 더 많은 외부지원을 받아내려는 김정일 정권의 또 다른 폭력, 이 가운데 방황하는 우리사회의 고민이다.
물론 이런 고민은 이번 용천역 사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포함한 대다수 대북교류사업의 핵심에도 이런 이중적인 기준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사회는 이 두가지 잣대에서 비롯되는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는 인색했다. 상대방을 폄하하고 적대시하는 일방주의가 난무했고 이런 가운데 대립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조선 말기 열강들의 한반도 나눠먹기가 절정을 이었던 상황 속에서도 소위 개화파와 보수파가 나뉘어 정쟁을 일삼던 수치스런 역사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친러, 친청, 친일파의 양보없는 대결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영토를 전쟁터로 내어주고 36년 일제의 식민지배를 허용한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김정일 정권의 무책임한 핵 도발은 강대국들의 이해를 한반도에 집중시켰고 반미감정은 반세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 우리 외교의 축을 중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이제 더 이상 사회내부의 대립과 갈등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국내외 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 감상주의를 경계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용천역 폭발사고의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폭발사고의 실체 - 국경없는 기자회, 취재의 자유를 달라 -
지난 22일 북한 용천역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두고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질산비료를 적재한 화차와 유조차를 교체하던 중 부주의로 전기선이 접촉되어 사고가 났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외신들의 보도는 여러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망자 160여명, 부상자 3,000여명, 수만명의 이재민이라는 재앙을 두고 이런 의문과 추측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 불상사의 중앙에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놓여있다. 북한당국은 사고당일 현장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고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인권단체 요원들의 현장방문도 사고 발생이 하루 지나야 이루어졌다. 더욱이 국제언론의 방문은 사고가 발생한 이틀 후에나 허가되었다.
이런 가운데 홍콩의 성도일보는 사고시각과 관련해 김정일을 태운 특별열차가 통과한 지 30분만에 폭발사고가 일어났다고 보도해 이번 폭발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반체제 요원들의 의도된 사고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별열차가 통과한 지 9시간 후에 사고가 났다는 북한의 공식적인 발표를 부인하고 있다. 또한 외신들은 160여명의 사망자 중에 반수 이상이 학생인 것과 관련해 학생들이 김정일 환영을 위해 동원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해 학생피해가 컸다고 보도하고 있다. 막상 국제인권단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시신처리 작업이 종결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확인은 불가한 상태다.
더욱이 이런 국가적 사고가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용천 사고소식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정확한 사고경위와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무소식이다. 북한당국과 언론이 의도적으로 이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군 창건 72주년 행사관련 소식, 김일성 탄생 92주년 행사와 평양에서 개최 중인 제7회 평양국제상품전시회에 대한 소식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이를 대변해 준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4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당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위해서도 용천역 사고현장을 취재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민과 정권의 괴리 - 김정일은 어디있나 -
용천역 사고는 그 유형으로 보아 화상이나 골절, 가스로 인한 호흡기 질환들로 응급치료가 절대적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국제구호단체들의 즉각적인 현장방문을 불허하고 의료진과 의약품에 대한 외부세계의 지원을 지연시키고 있다. 신의주의 의료시설로 보아 한시가 급한 부상자들을 치료할 형편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환자들을 단동으로 이송할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은 27일 “평안북도 룡천군 주민들은 아비규환의 열차폭발 참사 순간에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목숨을 걸고 챙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수령결사옹위의 숭고한 화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인민의 수령결사옹위정신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행동에서 더욱 뚜렷이 발휘되고 있다”며 열차폭발 사고의 참사 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챙긴 사례들을 소개했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룡천군 일반용품수매상점 수매원인 최영일ㆍ전동식씨는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강한 폭음소리를 듣고 기업소로 달려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품에 안고 나오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사망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룡천소학교(초등학교) 교사인 한은숙(32)씨는 수업 도중 강력한 폭풍으로 학교건물이 붕괴되면서 교실에 불이 나자 3층 교실에 있던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제자 7명을 구해내고 자신은 숨졌으며, 한정숙(56) 교사도 초상화를 품에 안은 채 사망했다.
한편 룡천군탁아소 박순미 소장과 장연희, 리봉숙씨 등 7명의 보육원들도 폭음과 함께 천장이 내려앉는 위기 속에서도 여러 점의 초상화를 챙겼으며, 룡천소학교 최병렵 교장과 룡천중학교 강영수 교장도 화염과 싸워가며 초상화와 영상작품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용천역 사고를 둘러싼 외신들의 보도는 북한 관영언론들이 얼마나 정권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널리 드러내고 있다. IHT(인터네쇼널 트리뷴)지는 4월 30일자 '김정일은 어디있는가?,라는 제목 하에 "피해주민들은 죽어가면서도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챙기고 있는데 김정일은 도대체 어디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또한 이 신문은 “주민들은 가족의 생사여부와 가재도구들을 찾기 앞서 가정에 모신 초상화들을 안전하게 모시었다”는 이 통신기사를 인용, “지도자가 자기 자식보다 더 중요한 ’이상한 나라'”라며 북한의 현실을 보도했다.
WSJ(월스트리트 저널)이 이 기간 중 보도한 내용도 북한관영통신의 보도와는 거리가 멀다. 신문은 북한당국에 대해 "자기 인민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정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지 오웰 식 정치적 경연장이다."고 묘사하고 "북한 미디어는 용천역 피해상황의 현장모습은 방영하지 않았다. 그대신 주말의 인민군창설 72주년 기념식은 큰 관심을 갖고 방영했다. 인민군 고위 장교들은 - 외국인들이 폭발현장의 희생자들을 걱정하고 있는 동안 - 평양에서 댄스파티를 주도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사고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용천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은둔해 있는 김정일의 태도에 대해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불과 몇시간 전에 이곳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정일이 현장을 방문하거나 이에 대해 아무런 위로의 메시지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학생들의 사고에 대해서는 "의문점도 많다. 김정일의 특별열차가 정확하게 언제, 역을 통과했는지 아무도 모른 다는 것이며 희생자의 대부분이 거의 학생인데 이들이 학교에 있었는지, 아니면 김정일에 손을 흔들기 위해 정렬해 있었던 것인지 알수가 없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기야 현장에 외국인이 도착하기 전에 사상자들이 모두 치워졌다고 하니 영문을 모른다.
뉴욕타임스(NYT)는 4월 29일 “북한은 용천역 폭탄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비밀주의가 최우선이고, 북한의 일처리 방식에는 변화가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단동지역에 모여 있는 외국 언론들의 용천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면서 “열차 비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경제적 이득은 극대화하고, 정치적 위험은 최소화한다는 그들의 생존 전략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망자의 절반이 어린이이고, 부상자 1300명 중 500명이 눈이 멀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어린이인 것을 봐서 어린이들이 고위 인사가 탄 열차가 지나가는데 손을 흔들기 위해 도열한 것으로 일부 분석가들은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어서 “왜 부상자의 절반이 어린이이며, 대부분이 얼굴이나 눈에 상처를 당했는지 북한에 확인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상화 사건과 관련해서도 “북한 관영 언론들은 많은 영웅적 여성들이 김정일과 고 김일성 초상화를 밖으로 가져 나오기 위해 무너지는 빌딩 속으로 뛰어드는 장렬한 희생을 했으며, 많은 지역 주민들이 가족들을 찾거나 가재 도구를 건지는 것보다 초상화 보존을 먼저 실천했다고 방송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 위대한 지도자는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LAT)는 “북한은 신의주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압록강 건너 중국 단둥(丹東)병원들의 환자치료 제의를 거부하고, 한국이 제의한 의료진 및 병원선, 육로를 통한 긴급 의료지원을 일축하면서 모든 것은 시간이 더 걸리는 해로를 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하고 “전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구호회담에서 북한은 의료(인력) 지원은 고사하고, 용천 복구보다는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있다고 비판론자들이 의심하고 있는 시멘트와 불도저, 디젤유, 건설장비, TV 등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용천역 폭발사고를 둘러싼 이런 비판적 보도는 비단 미국언론만이 아니다. 독일의 주요 언론들도 북한당국에 태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독일의 지성지 디차이트(Die Zeit)는 4월 24일 환자들의 신의주 이송에 대해 "환자들이 서둘러 중국의 병원으로 옮겨졌어야 했다“며 의료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북한이 시급한 환자들을 돌보기 보다 시멘트, 철강, 건설장비, 디젤, 유리 등과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북한당국은 이런 자재들로 어떻게 환자들을 치료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며 환자를 돌보려는 의지가 희박함을 지적했다.
디벨트(Die Welt)도 4월 28일자에 "북한은 긴급의료지원을 방해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북한당국의 사고처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Berliner Morgenpost)도 4월 25일에 북한당국의 의도를 지적하며 “국제구호단체요원들의 현장방문을 사고난 다음날에야 허가했다. 이들은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었고 현장의 피해상황을 외부에 전달할 수 없었다. 더욱이 외국 저널리스트은 사고가 난 지 이틀 후에야 진입이 허가되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구호단체인 Concern의 Anne O'Mahony는 더블린 라디어 방송인 RTE와의 인터뷰에서 기차에 실렸던 것은 폭발물이었다고 전해 북한당국의 발표에 이의를 달았다. 일본의 교토 통신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전하며 이 폭발물은 이 지역 운하건설용으로 보관되어 있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최대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도 4월 25일자 인터넷 판에서 “신의주의 병원이 초만원 상태고 의료시설도 환자들을 치료하기 역부족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이들 환자들을 중국으로 후송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치료받지 못하는 아일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사고 후 사람들이 몰려와 정리작업을 하고 있으며 벽돌, 나무 등 폐허 더미 속에서 쓸만한 것들을 찾고 있다”는 현장의 모습과 함께 “북한당국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여러 핑계로 지연하는 한 사고 복구는 그만큼 늦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이 마비된 사회 - 앵벌이의 먹이사슬 -
이런 외신의 보도와는 달리 우리언론의 보도는 사건경위보다는 피해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 연일 현장성도 결여되고 출처도 불분명한 어설픈 화면을 내보내며 북한돕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용천소학교의 파괴된 전경과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구호물자를 실은 화물차의 모습을 종일 내보내며 성금을 모아들이고 있다. 공공단체, 학교, 교회, 민간구호기관, 대한적십자사 심지어 동네 친목모임에서도 북한돕기 돈 모으기가 한창이다. 마치 이 캠페인에 빠지면 민족을 저버리는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용천역 사고의 피해자들은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치료를 제때 받지못해 사망할 수도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 미국, 유럽연합,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시리아 등지로부터 구호품이 전달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의약품과 의료장비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도움이 가장 필요한 부상자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정부에 대해 김정일 정권은 보기에도 민망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의약품과 의료진을 서둘러 파견해 부상자를 돕자는 제의를 대해 의료진은 풍부하다며 거절하고 있고 의약품도 시간이 더 걸리는 해상로를 고집하고 있다. 또한 식량이나 의약품 보다는 중장비, 디젤, 철강, 시멘트, 유리 등을 부상자들의 치료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요구하는 상대는 우리정부다.
그동안 모든 협상에서 북한의 요구에 제동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한 우리정부였음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사회의 대북채널(공공기관, 민간단체포함)이 북한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늘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언성을 높인다.
우리사회의 대다수의 국민들도 “김정일은 어디있는가?”라는 서방언론들의 질문에 동의하며 김정일의 답변을 듣기를 원한다. 속으론 그러면서도 겉으론 북한은 으레 그래 하면서 대범한체 넘어가야 '진보적’이고 '민족애’가 있다고 여기는 우리의 현실이 이상할 뿐이다.
앵벌이를 도와주는 데 조건을 단다면 그 앵벌이는 폭력배로부터 끔찍한 피해를 당한다. 매도 맞고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앵벌이의 먹이사슬을 알면서도 도와주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먹이사슬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폭력배는 물론이고 앵벌이도 사라지는 법이다.
우리사회는 이런 폭력배의 존재에 대해 침묵하며 인도주의요, 애국이요, 민족애를 부르짖는다. 모두가 돕자고 떠들고만 있다. 그 뒤에 숨겨진 폭력배의 실체에는 눈을 감고 만다.
교육열 최고의 사회와 마비된 이성, 이 이상한 행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박상봉 /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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