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년전인 지난 해 10월, 미국 제임스 켈리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이용한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폭로하였고,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핵위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제네바핵합의」이후 북한의 핵동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었던 한·미 양국과 세계에게'물론 여러 정보를 통해 비밀핵개발 추정은 하고 있었으나'이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최근 태국의 APEC회의 도중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북핵 포기시, 다자틀 안에서 문서로 북한체제 안전보장” 제의에 대해, 북한은 10월 21일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비난하고, 거듭 미·북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러나, 10월 25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의 기자질문 응답 형식을 통해, “ ‘서면불가침담보’(북한 표현)에 관한 부시대통령의 발언이....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이를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에, 북한의 이번 언명에 대한 의도와 전략을 분석하고, 그 대응책을 모색해 보는 것은 현시점에서 필요하고 시의적절한 일일 것이다.
1. 核위기의 시작과 경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네바핵합의」를 통해 1994년 이후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오던 한반도에 또다시 핵위기가 감돌게 된 것은 2002년 10월 북한의 비밀 핵개발계획 폭로 이후이다.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입장 곧 「제네바핵합의」를 위반하면서 비밀 핵개발을 시도해 온 북한의 입장은 애당초, 비밀 프로그램이 폭로된 직후 발표된 일련의 북한 당국 및 관영 언론매체의 성명 및 담화에 잘 나타나 있다(10.25 외무성 대변인 성명; 10.28, 10.30 민주조선 및 조선 중앙통신 보도; 10.31 주러대사 기자회견 등). 그 주요내용은 미·북간 “불가침조약을 통해 생존권과 자주권을 보장해주면, 안보상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후 북한은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미·북간 불가침조약 체결이야말로 “한반도의 엄중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조치”라고 주장해왔다.
2003년에 들어서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Non- Proliferation Treaty) 탈퇴를 선언함으로써(2003.1.10), 지난해 10월 이후 가속화되어 온 한반도 핵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기에 이른다. 지난 1993년 3월 12일 NPT탈퇴 발표 이후 3개월의 발효일자를 앞두고 유보를 선언한지(1993.6.11) 10년만에 재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영변 5MWe원자로 재가동 조치(2003.2.26) 등 북한의 도발적 자세는 금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2002년말부터 2003년초에 이르기까지 고조되기만 했던 북한 핵위기가 협상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3.20)과 단기간내에 전쟁이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로 끝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미국과의 대화 용의를 밝힘으로써(4.12), 사실상 미국과의 대화에 응할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의 조기 종전으로 인한 “바그다드 효과”가 북한에 대한 압박, 그리고 중국의 태도 변화를 야기시키는데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북경 3자회담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이 북한의 한국배제 요구를 수용하여 스스로의 주도적 위치를 포기하고 관망적 자세로 물러 앉은 것이 바로 이 즈음이며, 이에 대해 국민적 비판이 거세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3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은 이른 바 “새롭고 대담한 제안”이란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그 내용은 종래 그들의 주장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이에 대한 미국의 거부반응이 분명해지자, 북한은 회담 이틀만에 전격적인 “핵보유” 발언으로 회담을 결렬시켰다.
북경 3자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은 3자회담 틀의 지속보다는 한국과 일본 등이 참여하는 ‘확대 다자회담’을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북한핵개발 지속시 “추가적 조치” 입장과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더 강경한 조치” 언명은 북핵 저지를 위한 한·미·일 3국의 확고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대북 경제제재 및 외교적 고립이 모색되기 시작하였고, “모든 선택방안이 테이블 위에 있다”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처럼, 군사적 행동도 배제되지 않았다. 한편,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분위기도 강경해졌다. UN은 북핵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하였고, 특히 부시대통령은 G8정상회담(6.1) 직전, 육해공에서 봉쇄 및 정지, 나포, 압수·수색을 가능하도록 규정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선(先) 쌍무회담 후(後) 다자회담” 개최를 전격 제안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결국 6자회담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003년 8월 27~29일 북경에서 열린 6자회담은 북한이 또다시 갑작스러운 핵보유 선언을 함으로써 결렬되게 된다.
요약해 볼 때, 북한의 6자회담 참석 동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인한 ‘바그다드 효과’와 국제사회의 대북압박 움직임, 그리고 미국의 강경한 의사를 확인한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은 이러한 북핵 저지 압박요인에 의해 마지 못해 회담장에 나오게 되었으나, 그 기본 동기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 중 가능하면 미·북 단독채널을 확보, 미·북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을 원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핵보유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를 기도하는 한편, 핵잇슈를 협상칩으로 활용, 한반도문제 전반에 걸쳐 미국과의 대(大) 타결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미국이 단호한 태도로 선(先) 핵포기를 분명히 요구하고'가시적이고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불가침 조약을 거부하며, 체제보장에 구체적 응답을 하지 않는 한편, “불침”약속 정도로 그치게 되자, 북한은 회담이 그들의 목적상 실익(實益)이 없다고 판단, 원래 목표인 핵보유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6자회담 제1차 회담이 끝나고 2차회담을 앞에 두고 있는 현재, 북핵 문제의 본질적 의미는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의 협조 노력을 확인한 것이 하나의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북한의 의도와 전략
10월 25일 표명된 ‘문서 체제보장’ 수용 가능성을 골자로 하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입장변화는 미국의 대응여하에 따라 한반도 핵위기가 중대한 고비에 들어서고 있음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북한이 부시대통령이 제의한 ‘서면 체제보장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지 나흘만에 “동시행동원칙 ' ' ' ' ”이라는 단서를 달아, 수용할 의사를 내비친 것은 향후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북핵 저지를 통한 한반도 평화’라는 흔들려서는 안될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이 중요한 국면에 진입하였음을 의미한다.
첫째, 북한이 협상 조건으로서 주장한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 ' ' ” 운운(云云)은 한마디로 북한이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향후 핵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주장은 기존의 대북원칙상 중요한 변화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북핵 포기를 조건으로 했던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에서 선(先) 핵포기 없이 북한이 원하는 혜택사항을 동시에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법무기를 강탈한 범법자가 그 무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무기회수와 안전보장 및 생활지원을 동시에 실행할 회담을 열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원칙대로 한다면, 먼저 그 무기를 회수한 연후에, 정상을 참작하여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그 자체가 한반도비핵화합의, 제네바핵합의, NPT합의의 위반이기 때문에 선(先)핵포기가 당위적인 것임에도, 북한의 이번 대응은 그 절차를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둘째, “일괄처리” 주장에 관한 것이다. 일괄처리 또는 포괄처리는 여러 현안문제들을 한꺼번에 맞바꾸어 타결한다는 취지인 바, 이를테면 북한이 이행해야 할 핵·미사일·생화학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와, 대북지원, 체제안전보장, 불가침조약 등을 한꺼번에 묶어서 맞교환하는 형태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본질적인 개념은 “동시해결”과 일맥상통한다고 보겠다. 이는 김대중정부가 핵·미사일 위기때 미국에게 종용한 바 있는 협상방식으로, 이러한 방식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저지하는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없다. 북한의 핵개발 저지는 “핵포기 용의” 등의 구두(口頭)선언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핵을 포기하였다는 철저한 사실 검증과 사찰이 수반되어야 하는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이 사찰과 검증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과 많은 난관이 뒤따르게 된다. 핵개발을 시도하는 국가들'예컨대, 북한, 이란 등'이 핵시설을 순순히 사찰받지 않고, 이를 가능하면 은폐하고 위장하려 하기 때문이다. 핵개발을 검증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혜택 특히 물적지원을 해야 한다면 그 지리한 협상기간과 과정을 고려할 때, 자칫 북한의 핵개발을 실제적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북한이 노리는 고도의 지연전술이며 위장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보다 우려되는 것은, 그 가능성이 비록 매우 낮긴 하지만, 핵문제를 계기로 형성된 미·북 협상 채널을 통해 북한이 ‘핵’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를 대표하는 권력실체로서 북한을 인정하게 하여, 한반도 전반 잇슈를 북한과 일대 타협·타결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다. 다행히 부시행정부가 원칙있게 대응함으로써, 현재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것이나, 북한과 같은 집요하고 끈질긴 정권과 핵협상에 지친 나머지, 북한핵을 포기시키는 대가로, 한국의 국가안보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을 북한에 양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예컨대, 불가침조약, 주한미군 위상 변화 등). 바로 이러한 형태가 1960년대말 70년대초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미·월맹 직접협상의 참담한 결과였던 것이다.
3. 대응방향
북한은 핵을 지렛대로 삼아, 한반도에서의 일대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확대된 다자회담’ 곧 6자회담에서 미국 주도하 국제사회의 압박에 의해 수세로 몰리게 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6자회담에서 중·러를 포함하는 모든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북핵저지를 강요하고 압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으로서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 나타난 일종의 대북압박 ‘국제적 공동연대 또는 전선’에 의해, 국제여론이 일치된 입장으로 북핵 포기를 압박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이번 전격적인 태도변화로 핵개발에 관한 북한의 기본의도나 전략이 변화한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 불과 4일전이다. 지금까지의 김정일정권의 행적으로 볼 때, 북한의 핵개발 전략은 핵보유·생산을 달성하는 것이며, 이를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북한은 다만 미국의 확고한 대북 핵억지정책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은 간교하고 영악한 지도자이다. 그는 매우 주도면밀하고, 때때로 과감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시(生時)인 1993년 북한의 NPT탈퇴를 주도(主導)한 주범이었고, 잔인한 인권탄압, 대량살상무기 개발, 그리고 마약 등 온갖 불법거래의 주역이다. 김정일은 유훈통치 기간인 지난 1995~97년 처절한 기아(饑餓)와 에너지난 등 혹독한 체제붕괴 위기 속에서 김대중정권의 지원으로 살아남았다. 2000년 김대중정부가 공여한 현금 등 대규모 지원을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다가 이를 호박넝쿨째 과감히 받아들인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그가 미국과 대치하고 있을 때보다 화해 제스쳐를 취하는 이 시기에 더욱 주의가 요망되는 것은 혹여 이러한 위장된 화해가 한국의 국가안보의 기본 틀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위상 등에 변화를 가져올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김대중정부 5년간 “햇볕정책”의 논리하에 양성된 우리 사회내 반미·평화주의자, 그리고 ‘민족’과 ‘평화’라는 허상에 덧씌워 북한의 행동을 합리적 판단이 결여된 채 맹목적으로 변호하고 선의적(善意的)으로 해석하려는 세력이 확산되고 있는 현 한국의 내부상황 때문이다.
지금 우리 상황은 일견 1930년대 중반 중국대륙에서 있었던 ‘제2차 국·공합작’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공산당은 힘에 있어서 국민당과 비교가 안될 만큼 열세에 있었으나, “항일(抗日)”이라는 명분을 쥐고 극적으로 전세(戰勢)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 북한은 ‘남북화해’와 ‘민족공조’라는 명분을 활용하고 있고, 불행하게도 이 오도(誤導)된 명분이 한국사회내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북한은 매우 유연한 태도로 이번 “서면 안전보장 고려 용의” 표명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입장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합당한 근거없이 북한이 변하였다는 등 장밋빛으로 사태를 보지 말고, 사태의 본질과 이면에 숨겨져있는 진실을 간파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제라도, 북한 핵문제가 한국의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며, 따라서 한국은 결코 “중재자”나 “균형자”가 아니라, 북한핵문제의 움직일 수 없는 제1의 당사자로서, 반드시 북핵을 저지하고 북핵논의에 참가해야 하는 당위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1994년 이후 「제네바핵합의」를 통해 나타난 미·북 쌍무구도가 다시 재현(再現)되는 것을 막고, 미국이 한국과의 사전동의 없이 북한과 어떠한 중요한 거래도 하지 않도록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미·북 직접대화를 통해 우리 어깨 너머로 우리의 국가안보에 결정적 훼손을 가져올 만한 사안이 행여 논의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할 것이며, 미국과의 사전 정책공조와 조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홍 관 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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