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2003.8.27-29) 북경에서 소위 주변 4강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과 남북한, 모두 6자가 한 자리에 앉아 북핵문제 해결방안을 위한 의견개진에 들어간다. 역사적으로 주변4강이 이처럼 일시에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문제를 논한 적은 없었다. 본 회담은 김영삼 정부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에서 제외되었던 일본과 러시아까지도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롭고 시험적인 협상 포매트라 하겠다. 지난 해 10월 평양에서 강석주 (북 외무성 제1부상)가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북한 핵 프로그램을 시인한 이후 지난 몇 개월, 북미적대감이 분출되면서 위기국면이 전개되었음에 비추어 우리는 한편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을 접기 어렵다. (i)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표방했던 ‘주도적 역할’ 혹은 ‘중재적 역할’이란 말들이 무색해지는 가운데 북한 핵 문제가 바야흐로 강대국의 문제, 나아가 국제사회의 숙제로 공인된 것은 아닌지; (ii) 북한이 계속 핵 의욕을 버리지 않은 채, 과거와 같이 미국과 국제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주장하여 결과적으로 국제법적 정당성 측면에서 큰 하자가 없는 대북제재가 현실화될 때 한반도 안보에는 어떤 파급효과가 올 것인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본고는 주변 4강중 북한과 정식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소지한 러시아가 북핵 6자회담 노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러시아는 2000년 푸틴 대통령 취임이후 지난 3년 급격히 북한과의 거리를 좁혀왔으며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시인이후 주변 어떤 나라에 뒤지지 않는 전방위 외교를 펼쳐 왔다. 2000년 7월 채택된 러시아의 ‘신외교정책개념’을 보면 한반도는 “주변국들의 지정학적 야심, 군비경쟁, 긴장과 갈등 소지 등이 얽혀 있는 곳”이라며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러시아의 온전하고 동등한 참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남북한 균형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못 박고 있다.
러시아, 1993-94 對 2002-03
1990년대 북한 핵 문제해결이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 다자회담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러시아로서는 금번 6자회담 참여 그 자체로서도 이미 어느 정도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1993-94년 소위 제1차 북핵 위기시 러시아는 8자 (미'중'일'러'남북한'유엔'IAEA) 회담을 제안하였으나 관련국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었다. 당시 북러 관계는 시장경제와 다원주의 길에 들어선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불신으로 인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여서 러시아가 중재역을 거론할 입장이 아니었다. 미국도 별 지렛대를 쥐지 않은 러시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의 북핵 위기는 1994년 가을 북미 양자간 핵 합의문으로 일단락되었고 그 결과 북한 핵의 문제는 사실상 러시아 관심 밖의 일이었다. 러시아는 KEDO나 북한의 경수로 건설과 무관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2년 10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시인으로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면서 러시아는 다시금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2002-3년 북러 관계는 1993년-94년과 달리 상당정도 복원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i) 북러간 신 조약 체결: 2000년 2월 양국은 구소련 붕괴이후 부유하던 양국관계를 청산하고 ‘북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정상적 외교관계를 정립하였다. 비록 냉전시와 같은 ‘자동군사개입’조항은 부재하지만 ‘안보위협 발생시 즉각 협의’ ‘일방의 주권 및 영토 전일성 위배되는 제3국의 조처 불참가’ 등 미국, 일본과의 수교에 실패한 북한으로서는 정치안보 측면에서 의의를 둘 수밖에 없다;
(ii) 북러 정상회담: 2000년부터 매년 1회씩 3회에 걸쳐 푸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00년 여름, 구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푸틴대통령의 평양 방문; 2001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2002년 여름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러시아 극동지방 방문). 제1차 정상회담결과 푸틴 대통령은 북한미사일의 평화적 목적을 대외적으로 알렸으며 제2차 정상회담에서는 그간 ‘주한미군’에 대해 공식적 논평을 내지 않던 러시아가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이해한다는 선언문에 합의까지 하였다;
(iii) 외적 환경: 2002년 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후 북한의 입장에서 주변4강중 가장 마음 편한 상대가 바로 러시아였다. 중국이 신의주 특구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을 체포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일본은 김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사건 인정이후 다시 냉각상태로 돌입하였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러시아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내실 있는 관계발전을 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각적으로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 관리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김 위원장이 직접 주북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함은 물론 북한내 ‘러시아정교’ 교회 건립까지도 계획한다는 보도가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이후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시인→미국의 대북 중유공급중단→북한의 IAEA요원 추방' NPT탈퇴선언'탄도미사일 시험에 관한 모라토리엄 종료시사 등 핵위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러시아 관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NPT준수 및 IAEA와의 협력’ ‘외교적 해결’ 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건네준 자료를 검토해 보겠다” “북한은 기술적으로 핵무기 생산이 불가능하다” 혹은 “1994년 북미합의를 양측 다 잘 지켜야 한다”, 나아가 “KEDO이사국이 의무를 이행치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식의 대미견제성 발언을 내놓기도 하였다.
분명한 것은 1993-4년과 비교, 2003년 러시아는 지난 3년간 푸틴행정부의 노력결과 대북창부를 원활히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불어 미국으로부터도 북한 핵과 관련 중요요소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2003년 1월 외무차관 로슈코프는 푸틴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과 여섯 시간에 걸쳐 단독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내정불간섭’, ‘주권존중’의 원칙, 유엔안보리 상정 반대 등 북한의 입장에 동의를 표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 포기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측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전격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안보우려’에 대한 이해를 담은 러시아의 중재안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보였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비록 김 위원장의 핵 야심을 중단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북미 중재에 나설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슷한 시점 평양을 방문한 한국의 현직 및 차기 대통령 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사실을 상기케 한다. 북한은 러시아의 중재역할은 수용하지만 한국정부의 중재역할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 같다. 다시 말해 적어도 이점에서만은 지난 몇 해 러시아의 대북포용정책은 성공했지만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은 그렇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핵6자회담, 러시아에게 다가온 기회
상기 전후사정으로 보아 북미 양자회담만을 고집하던 북한이 6자회담에 나서는 결정을 한 데에는 중국의 전방위 외교 외에도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안보요구는 타탕하다”는 이바노프 외무장관의 발언을 위시, 러시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코너로 몰 경우 오히려 위기촉발의 역효과가 초래될 수 있음을 강조하여 왔다. 물론 그 저변에는 1993-94년의 경험에 비추어 러시아가 미국의 제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경우 대한반도 정책에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국익 증진에 위배될 것이라는 계산이 없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특히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계기로 남한, 북한, 러시아간 3각협력 방안을 구상하여 왔다. 과거 구소련 지원으로 건설된 북한 내 낙후 시설복원, TKR-TSR (한반도종단-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 시베리아 극동지방 에너지자원 개발 등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년 각각 김대중 전대통령,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시 공동선언문을 통해 이 점을 강조하여 왔었다. 한반도 위기는 자칫 이러한 기대를 무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6자회담에서 러시아는 어떠한 입장을 보일 것인가' 예측컨대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를 표방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 포기 유도책, 국제사회의 대북 안전보장 방식, 수순 등에 대해서는 先포기를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가시적이던 묵시적이던 러시아는 상당기간 자국이 표명한 바 있는 이른바 중재안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요소는 (i) 북한의 핵 포기 약속 ; (ii)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 (iii) 중국' 러시아의 다자적 보장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본 틀 위에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받아낼 사안에 핵 포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수출 및 생화학무기 생산 포기도 상정해 두고 있다. 또한 미국이 보장해 줄 사안의 경우도 불가침 약속 외에 미국의 현행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한체제 승인, 에너지 등의 경제지원까지 신축적으로 감안하고 있다. 다자보장의 경우 역시 중국, 러시아 외에 한국, 일본, 그리고 EU도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의 북한핵정책 딜레마
북핵6자 회담은 러시아에게 기회이지만 또한 도전이기도 하다. 북한핵정책과 관련한 러시아의 딜레마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러시아내 1993-94년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주도적 입장에 협력한 결과 북러 관계만 악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상실 등 국익에 손상을 가져 왔다”는 평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10여년 여러 국제문제에서 “미국과 다른 입장”을 견지한 결과 국익의 손상을 입었다는 평가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냉전이후 국제질서 속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의혹을 받거나 자국민을 학대하는 지도자를 두둔하는 일이 실용적으로나 명예로나 결코 러시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 널리 인지되고 있다. 러시아는 발칸 사태시 서방의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인종탄압을 서슴지 않았던 밀로세비치를 설득, 보호하는 입장에 섰었다. 러시아가 맞이한 것은 자국이 배제된 NATO의 공습이었으며 그 결과 NATO주도 평화유지군 구조 내 종속적 편입에 만족해야 했다. 이라크의 경우도 러시아는 프리마코프 전 총리를 특사로 파견하는 등 최후까지 후세인 설득에 나섰지만 소기의 중재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 핵의 경우 이 두 사례와 견주어 볼 수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2003년 봄 유엔인권위원회 연례회의에 의해 시정대상으로 공식 지명된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북한은 미국 및 국제사회가 문제시하는 핵확산, 탄도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을 국가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국가이다. NPT사상 회원국이 탈퇴하는 예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10년전, 그리고 금년 또다시 탈퇴를 선언한 점은 북한 핵문제의 만성적 성격을 말해준다. 미봉책이 아닌 궁극적 해결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북한의 개혁, 개방 및 21세기 글로벌 경제사회로의 편입이지만 이는 불가피하게 체제이완 및 민주화 과정을 수반하게 된다. 이를 허용하지 않는 한 북한은 지속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외화 및 물류 유입을 필요로 할 터이고 다시 위기를 조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종주국이던 구소련의 승계 국으로 북한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러시아가 이 문제에 눈을 감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자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안보를 지나치게 우려해준 나머지 북한 핵위협 재현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은 비확산을 기치로 하는 현재의 러시아 외교 및 안보정책으로 보나 북한과의 지리적 인접성으로 보나 결코 러시아의 선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러시아는 국제평화와 안보를 책임지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냉전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 특히 테러집단으로의 이전에 관해 미국과 함께 이를 근절할 의지를 갖고 있다. 러시아의 ‘국가안보개념’이나 ‘군사독트린’은 이러한 러시아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특정 회원국이 NPT 탈퇴 후 핵무기를 개발, 소지하는 일이 기정사실화 된다면 이는 러시아가 염려하는 바 비확산 레짐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은 러시아와의 접경국인 만큼 그 의지는 더 확고하다고 보아야 한다. 러시아의 한 일간지 기고문 중에는 러시아 외무부의 북핵 중재안에 대해 “약속을 어기고 핵 위협하는 북한에게 다시 보상을 약속하며 합의하라는 것”이라며 “왜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러시아가 그토록 위협을 일삼는 국가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의 경제사정이 지난 3-4년 어느 정도 호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중국, 한국, 미국, 일본 수준으로 대북지원 잠재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설사 그럴 여력이 된다 해도 이념분쟁이 사라진 21세기, 자국 생존을 미국과의 협력에서 찾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과 여타 주변국들의 입장에 반하면서까지 북한을 단독 지원할 이유는 전무한 것이다. 이즈음 북한 에너지난을 러시아산 석유나 가스를 수송, 충당하는 안이 국내외에서 비공식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잠재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기술적, 정치적 여건이 확보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기간으로나 투자확보 차원에서나 당장의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주요변수들
궁극적으로 6자 회담내 러시아의 외교역량은 북한의 선택 그리고 강대국 역학관계에 달려있다. 북한이 핵 야심을 버리지 않고 대미 대결구도를 마다하지 않는 경우, 러시아까지 미국과 대결구도에 들어설 것이라 가정하기는 어렵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미 지난 5월 ‘남북비핵화선언’ 준수를 거부한다는 북한의 메시지에 대해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북한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논평을 낸바 있다. 수위를 더해가는 북한의 각종 경고 메시지에 대해 미국은 ‘先완전'불가역적핵포기 後보장’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일일이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다자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PSI)을 진척시키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도 점차 방향 조절의 필요성을 감지하게 될지 모르겠다. 한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 초, 러시아 대외정보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마약거래, 국제범죄 저지 등의 차원에서 서방정보기관과 협력을 도모하였으며 그 일례로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CIA에 제공하였다고 한다. 이는 냉전이후 미러간 비확산 의지가 공유되고 있으며 주요 국제문제 해결과정에서 구조적으로 강대국 간에는 견제의지뿐 아니라 협력의지도 강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03년 러시아가 꼭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국제관계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아닌가 여겨진다. 러시아의 6자회담 참여도 사실 북한의 주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지난 5월 월포비츠 (미국무부 부장관)의 러시아 방문시 미러간 합의에 의한 것임을 분명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미국의 NMD구축을 극구 반대하던 러시아가 그 한 대안으로 미국에게 북한 미사일로부터의 공격을 상정한 미러 공동의 TMD구축을 제안하였다는 보도나 근래 러시아군관구가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의 안전을 고려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9.11이후 반테러리즘 차원에서 미러의 공조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대러경제 지원보장 혹은 보상 정도 그리고 10년전에 비해 북한체제의 도덕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국제적 실망 증대 등, 궁극적으로는 대미공조를 유도할 수 있는 상황변수들이 있다. 요컨대, 지난 1993-94년에 비해 러시아의 대북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된 것은 사실이나 러시아가 반드시 이를 독자적으로 활용할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북한의 지도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어떠한 길이 냉전이후 질서 속에 소외되지 않고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안정, 번영으로 가는 길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은숙(政博,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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