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미관계와 미국인의 대한인식

이주천 / 2003-04-10 / 조회: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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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0
No. 07

I.


2000년 9.11 테러사건이후부터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으로 이어지는 2년반동안 세계질서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의 역사는 평화의 세기가 아니라 유혈이 낭자한 테러와 전쟁의 시대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한편 부시는 9.11테러이후 대외정책의 전반적인 틀을 재조정하게 되었다. 기존의 수동적 방어태세에서 적이 더 많은 대량 살상무기로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고 언급하여 미국인들의 전쟁관이 방어적 태도에서 공세적으로 급변하게 되었다. 부시는 작년 초 연두교서 연설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여 향후 미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의 신호탄이 되었다. 부시는 ① 두 나라가 알카에다 조직과 연계되어있다고 의심한 점과, ② 이 두 나라를 초기에 무력화시켜야 장차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의 방지와 함께, 국내에서 더 이상의 테러를 막을 수 있고, ③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고 판단한 점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무력응징을 결의하면서 2차대전이후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역학관계가 심각한 내부 분열과 불안정을 보이고 있고, NATO 등 기존의 서유럽동맹체제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대립과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라크 선제공격이 가져올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우려한 도덕적 대의명분이라는 반발과 함께 각 국가들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시각과 척도가 역사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달라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소련 등 거대한 공산권세력의 소멸이라는 탈냉전체제라는 역사적 변화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의 결속력이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이런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관계도 냉전시대와 달리 결속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으면, 한국이 마땅하게 북한이나 미국을 다룰 수 있는 마땅한 외교적 지렛대가 없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II.

김대중 정부이후에 벌어지는 한미동맹의 불편한 관계는 미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9.1테러 이전에 김대중 정부의 어정쩡한 대미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대한 불신감을 사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과 상의하지 않고 비밀리에 박지원을 중국의 상해로 파견하여 중국측에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하도록 부탁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중국의 입김이 커지게 되었으며, 미국은 동맹국 한국에 대해 섭섭함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야당시절 정치인 김대중은 얼마나 많이 미국의 도움을 받았던가? 그가 망명한 곳도 미국이요. 각종 물질적, 정치적 도움을 받은 곳도 미국이었다. 그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탄압에 맞서 카터를 위시한 민주당 인사들과 접촉하여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많은 미국 한인교포들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으로 귀국하여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김대중씨는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체시키겠다는 엉뚱한 야심을 품었고, 그것은 2000년 6.15정상회담으로 귀착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강경책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공화당의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게 되었다. 부시와 공화당 보수파들은 김대중정부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현찰송금 및 DMZ의 개통을 통한 금강산 육로관광 등과 같은 햇볕정책은 김정일 정권의 강고화에 기여할 뿐이라고 판단하여, 그들의 불만을 유엔사령부나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김대중 정부측에 전달하였다. 그들은 북한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일방적 양보가 정도가 지나쳐서 대북전략의 건전성에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 뒤 한미관계는 대북강경책을 고수한 부시 행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각기 제 갈 길을 가면서 긴장상태에 들어서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하여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했고, 북쪽에서 온 공산주의 이념과 주체사상으로 훈련받은 젊은 북측인사들과 순수하게 만남을 원하는 고령의 남측인사들간의 눈물의 상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작년 6월에 열린 월드컵 열기와 한국팀의 4강 선전은 한국민족주의에 기름을 부었으며, “붉은 악마” 응원단의 구호는 급기야 WE CAN DO EVERYTHING이라는 자신감의 표출로 이어졌다. 이어서 10월 부산의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팀을 초청하였는데, 김정일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300여명의 북한미인들을 응원단으로 파견하여 남한시민들의 혼을 빼내었다. 부산시민들은 다대포 앞 바다에 정박한 만경봉호(과거 재일동포들을 강제로 북한으로 수송한 북송선으로 이름을 날린 북한선박)의 평양미인들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는 것이 하루의 일거리가 되었다. 한국언론들도 평양응원단들의 동정에 더 많은 취재와 우호적 감정을 보냈으며, 북한의 일장독재체제와 인권에 대한 문제점은 내 팽개친 채 평양의 미인들이 아름답다는 ‘男南北女’의 논리로 여론을 이끌고 갔다. 김정일의 미인계가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평화롭게 진척되는데, 왜 주한미군 당국은 사사건건 남북교류에 대해 트집을 잡는가? 즉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주한미군이 거추장스런 존재로 둔갑하고 말았다.

남북관계는 표면적으로 진척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미관계는 악화되었다. 작년 6월 미군 장갑차의 운전병에 의해 두 명의 여중생이 사망한 사건으로부터 발단이 되었다. 주한미군이 이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감정과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져나갔다. 한총련과 친북세력들은 이 사건을 호재로 하여 반미운동에 불을 지폈고, 전국적으로 반미 촛불시위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가을의 대통령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서 재작년 미국을 방문하고 확고한 한미동맹관계를 약속한 이회창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자주외교와 남북간의 상호교류,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발전적 계승을 주장한 노무현후보의 극적 승리를 일구어 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반미데모와 촛불시위는 올해에 들어서서 한미간의 불평등한 소파개정은 물론 더 나아가 주한미군철수까지 거론하게 되었다.

좌익의 발호가 노무현후보를 당선시키고, 주한미군철수 운동까지 벌이자 우익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올해 3.1절 민족기념행사에는 정부측과 친북세력들이 북한에서 온 100명의 자칭 기독교 인사(?)들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모여서 남북협상을 자축하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우익세력과 애국인사들이 시청앞에서 모여서 “반핵, 반김정일” 3.1절 자유통일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주한미군철수 반대를 격렬하게 외쳤으니, 이것은 1945년 해방이후 한국사회가 그 끔찍했던 좌우익의 대결과 갈등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반복인 것이다. 이념대립은 사회적 분열을 낳고, 자칫하면 내란을 초래하는 것이다. 레바논, 베트남, 아프간이 내란으로 홍역을 치렸고, 장차 이라크가 전쟁이 끝난 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내의 이런 이념대립과 사회분열은 敵前分裂과 자중지난을 초래하여 자칫하면 패망으로 연결될 수도 있음은 월남패망과 共産化가 잘 말해주고 있다.

작년 한국에서 벌어진 반미데모의 규모와 미군철수 구호는 과거에 있었던 일부 극렬 한총련 이적단체 그룹의 반미운동과는 다른 점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의 반미운동은 민중들의 참여가 외면된 채, 소수 집단의 격렬한 시위로 전개되었지만, 이번의 반미운동은 월드컵에서 불어닥친 민족주의 물결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민중들의 자존심에 호소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10대와 20대의 한국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심정적으로 파고들어 그 여파가 대단히 컸다는 점이다.

III.


그러나 어떤 사회변혁운동이던지 지나치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미언론은 한국의 반미운동을 거두절미하여 화염병투척과 성조기를 불태우는 장면 등, 선정적인 부분만 거두절미하여 방송하였고, 그 방송을 본 미국인 시청자들의 반한감정을 만들어내는데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미언론도 한국문제를 예전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대우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반세기동안 쌓아올린 한미간의 혈맹관계는 이제 옛말이 된 것처럼 보인다.

많은 미국인들은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고의가 아니라 훈련중의 우발적 사고였으며 주한미군이 적절한 보상을 지불했다고 믿고 있다. 한국의 지나친 반미시위에 대해 특히 미의회의 분위기는 더욱 격앙되어 있다: “한국은 과연 미국의 동맹국인가?”. “한국은 제대로 친구와 적을 구분하나?” “최소한 동맹국이라면 동맹국의 이익도 배려할 줄 알아야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가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정대철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지만 미의회의 차가운 분위기에 놀랐다. 그래도 한국정부는 구체적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우선 9.11테러의 즉각적 영향인지, 21세기의 신종 고립주의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카터연구소(Cato Institute)의 국방과 외교정책연구회의 부회장 카핀터(Ted G. Carpenter)는 1월 6일 Foreign Policy Briefing에 기고한 글, “Option for Dealing with North Korea”에서 과거의 대북유화정책이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미군이 냉전시절에는 억지력을 가졌으나, 핵무장 시절에는 미군은 핵공격의 위험한 볼모가 될 수 있으므로 미군이 철수하고 일본, 중국,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인구면에서 북한의 두 배이고 경제력에서 북한에 40배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으므로, 방위비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컬럼니스트 웨더킹(J. R. Wederking)은 한국전쟁이후 태어난 전후세대가 길러낸 현재의 젊은 세대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의 잔인성과 피의 통일에 대한 탐욕을 기억하는 그들의 부모님과는 달리, 역사와 사실을 떨쳐버리고 미국을 그들의 분노의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핵개발이 미국의 자극에 의해 저질러 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미사일은 국경선을 날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사실을 멍청이 같은 정치적 담론으로 대체한 촌티나고 자존심이 강한 대학교수들에 의해 잘못 교육되었다. 잘못 인도된 남한의 젊은 세대들의 감상적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인식도 서슴치 않고 비판한다.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가장 위협적 존재라고 믿었다. 노무현은 전부를 강탈하려는 북한의 독재자와 거래, 협상 그리고 타협을 주장한다. 만약 미국의 개입 없이 한국이 통일된다면, 노무현은 대통령직에서 30초안에 어김없이 포로가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있음으로써 한국을 정치, 경제적으로 성장, 발전시켰다고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믿고 있지만, 이제 본토의 안보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므로, 급하면 해외에 주둔한 미군들의 점차적 철수가 있어야 할 단계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고립주의적 분위기는 제2차대전이후 처음으로 크게 확산되는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미국전략가들은 냉전시절에는 미지상군이 공산주의세력의 침략을 방지하는 전쟁억지력을 가졌지만, 21세기에 항공력이 발달하고, 핵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새로운 전략적 환경에서는 지상군의 과대한 해외주둔이 오히려 분쟁 발생시 대량의 미군사상자 발생을 유발할 수 있는 볼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최근 2월 중순의 상원외교분과위원회의 증언에서 또 3월 6일 펜타곤에서 레온 라포트(Leon LaPorte)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주한미군의 변화 및 철수 가능성을 두 차례에 걸쳐 언급한 것은 현재 워싱턴에서 장기적인 한미군사동맹에 관한 심각한 재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월리엄 세파이어(William Safire)는 3월 11일, 뉴욕타임즈, “Asian War front”에서 아예 한국을 중립국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그는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의 비협조적 태도와 한국의 대북유화책을 공격하고 있다. “한국지도자들은 비무장지대 근방에 주둔한 미군들을 비방하고 미국에게 북한의 요구에 양보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인기를 얻었다. 서울의 언론과 대중들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미군병사들을 감옥에 보내기를 원했다. 이전에 친미 정치가들도 갑자기 반미데모를 고무하고 있다.”

지금 한미동맹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은 표면적으로는 적은 병력의 지상군과 좀더 늘어난 해군, 공군력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지만, 만약 서울의 반미운동과 이에 반발하는 미국내 반한(反韓)세력의 반한운동의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결국 미국측은 한미동맹을 격하시키고, 미일동맹을 강화시키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창한 <동북아시대의 도래>를 북핵에 대한 구체적 언급없이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구상으로 보고 있다. 그가 희망한 한반도의 평화정착도 구체적 전략과 실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부시로 볼 때, 이라크와 북한 문제는 그의 정치적 리더쉽을 재는 시금석이 되고 말았다. 부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강행하는 시점에서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다. 분명한 점은 중동, 유럽 미국내부 등에서 이라크에 대한 전쟁반대가 거세지만,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응징에 대해서는 그다지 반발이 적다는 점이다. 그만큼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상실했다. 이라크 전쟁이 종결된 후,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한국정부의 다급해진 인식은 3월말 윤영관(尹永寬) 한국 외교부 장관을 미국으로 방문하도록 했다. 윤장관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포기토록 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책의 제공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상들을 제시했으며 국제 다자간 회의를 개최해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내놓았지만, 윤 장관의 이러한 제안에 대한 미국 관리들은 대북정책 형성을 위한 첫 단계 정도로 보고 있을 뿐이며 낙관적 견해를 펴지는 않고 있다.

IV.


이런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한국의 국익(National Interest)을 어떻게 극대화하는가를 고민할 줄 알아야 진정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9.11테러 이후,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긴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아프간전쟁에서 미국은 파키스탄의 공군기지가 필요에 따라서, 파키스탄은 미국의 봉쇄를 풀면서, 핵무장을 묵인 받게 되었고, 아프간전쟁에서 미국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면서 핵개발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를 풀었고, 막대한 경제원조를 얻으면서, 인도를 견제하는 힘을 얻었다. 또 터어키도 미국의 이라크전쟁 수행에 따른 지상군과 공군 기지의 필요성에 따라 막후협상에서 상당한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확보하였고, 또한 장차 중동에서 이라크의 군사적 붕괴이하 중동지역의 질서유지에 이라크를 대처할 강국으로 부상할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도 미국에 협력하면서, 경제협력을 얻어내고 테러조직의 박멸이라는 대의명분속에서 중국내의 독립을 지향하는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탄압할 좋은 구실을 얻었다.

유럽에서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챙긴 나라는 바로 영국이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인기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대영제국의 권위와 국익의 확보에 여념이 없다. 그는 재선의 가능성도 포기한 채, 미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왜? 영국은 미국에 협력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확보함은 물론 아일랜드 테러전선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유럽공동체에서 그동안 프랑스와 독일에 상실한 헤게모니의 탈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만약 영국에게 안보와 경제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확실하게 도와줄 나라가 미국뿐이라는 사실은 1차, 2차 양차대전을 통해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나라이다. 일본의 경우, 안보와 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면 역시 도와줄 나라는 동맹국인 미국뿐이라는 인식이 조야에서 널리 합의를 본 상태이다.

이렇게 각 국가들은 전쟁의 도덕적 측면과는 별도로, 이라크전쟁에 참여하면서 국익의 확보라는 주판굴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인정하던 안 하던 간에, 미국은 21세기에도 지역권의 개별국가를 약자로 만들거나 혹은 강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엄연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한국은 미국의 지원없이 어떻게 김정일의 핵무장을 감당할 것이며,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최근 9.11테러이후 한미관계를 살펴 보면, 한국이 얻은 것은 거의 없고 잔뜩 손해만 보았다. 김정일의 핵무장을 억제하기도 전에, 통일을 이루기도 전에 50년동안의 한미동맹관계가 위기에 처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 어설프게, 적과 친구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채, 북한과 미국의 중재자노릇을 자처하다가는 오랜 맹방과의 우의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의 집권층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을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외교적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당장에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주한미군철수를 거론한 뒤에, 해외투자가 급감하고, 주식이 폭락하여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론조사는 한국사회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신용등급도 미국내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등 다국적회사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콜 수상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서독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을 他山之石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공병 및 의료부대의 지원이라도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니, 그나마도 다행한 일이다. 이왕 파병하기로 했으면,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 군대를 보내서 우방의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서둘러 파병하여 한시라도 빨리 전쟁의 부담을 함께 해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라크 전쟁이후 이라크의 경제복구와 건설에 참여하게 될 거대한 프로젝트에 어느 나라가 어떻게 참여하는 가에 벌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지도층과 국민들은 김정일이 구사하는 “민족의 논리”에 현혹되지 말고, 국가이익의 논리를 우선적으로 내세워서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더 이상 스스로 외교적 위기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간은 항상 우리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이주천, 세인트 루이스 미주리대학 사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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