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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유무역협정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 RCEP이라는 중국 중심의 자유무역헙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면서 RCEP에 서명하는 장면이 보도됐었습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대하던 사람이 또 다른 자유무역협정인 RCEP에 대해서는 이렇게 감격스러워 합니다. 그 속마음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은 해볼 수 있습니다. 이 RCEP이라는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은 빠지고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큰 무역체제이기 때문일 겁니다.
RCEP이란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의 약자입니다.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이라고 번역됩니다. 여기서 역내는 태평양지역 내를 말합니다. 참가국 중 잘 사는 나라들로는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이 있고, 개발도상국들로는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많습니다. 총회원국은 15개국입니다. 인도는 빠졌습니다.
RCEP의 표면적 취지는 회원국들 사이의 경제 장벽을 낮춰서 자유무역을 촉진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또 다른 자유무역 체제인 CPTPP와의 관계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CPTPP는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으로 번역됩니다. 이 협정은 원래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을 불러 모은 프로젝트로 출발했습니다. 이름은 TPP,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이었습니다.
TPP는 중국 견제에 방점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방 강도가 높았습니다.1 단순한 제조업 상품 수출입에 대한 관세 인하뿐 아니라 정부의 기업에 대한 보조금 금지, 금융, 환경, 노동 규제 등 경제 전반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관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즉 계획경제의 성격이 강한 중국은 그 같은 개방을 받아들일 수 없지요. 그래서 중국은 TPP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도 미국으로부터 참여를 권유 받았지만 끝내 불참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창 한-중 FTA에 공을 들이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기분을 상하게 하면 한-중 FTA 협상이 깨질 수도 있음을 걱정했던 것입니다.2
TPP가 관철되었더라면 중국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했을 겁니다. 미국-일본-호주를 중심으로 해서 강력한 반중국 경제 네트워크가 성립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순항 중이던 TPP는 2017년 좌초 위기를 맞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TPP에서 탈퇴했기 때문입니다. 주최국인 미국이 빠졌으니 나머지 11개국은 황당한 입장이 되었지요. 아베의 일본과 호주가 앞장서서 협정을 추진했고 2018년 4월 미국이 빠진 8개국이 협정에 서명했고 그 후 11개국으로 늘었습니다. 이름은 CPTPP가 됩니다. TPP보다 개방의 강도는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RCEP보다는 개방 강도와 폭이 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PP에 이미 가입되어 있던 나라들끼리는 RCEP의 의미가 미미합니다.
RCEP은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개방 수준이 낮습니다. 중국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개방 수준이 어떤지를 말해 줍니다. 한-중 FTA 이후 중국의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실적을 보면 중국과의 소위 '자유무역협정’이 어떤 것인지가 드러납니다.
아래 그래프는 2014년과 2018년 중국 수입총액 중 중요국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한-중 FTA가 2015년 12월 30일 발효되었음을 감안할 때 2014년에 대한 2018년의 수입시장 점유율 증가율은 중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 미국, 대만보다 더 높은 것이 정상일 겁니다. 하지만 실제의 숫자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은 9.69%에서 9.80%로 1.0% 증가했는데 일본은 10.4%, 미국은 7.6%, 대만은 7.4% 증가했습니다.3 FTA 유무 이외에 여러가지가 작용할 수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운 결과이지요. 중국과의 FTA가 무역장벽을 낮추는 자유무역 장치이기보다 형식적인 정치적 네트워크임을 시사하는 증거입니다.
자료: Newstomato.com
이번에 체결된 RCEP도 경제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RCEP을 시작한 것은 동남아국가연합인 ASEAN이고 중국은 나중에 합류하긴 했습니다만, 역내 최대의 국가이다 보니 당연히 모임 전체가 중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도 그런 효과를 기대하며 RCEP에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특히 시진핑 치하의 중국은 자유시장경제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에게 자유무역이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역이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는 체제를 뜻할 뿐입니다.4 그런 중국이 이끄는 RCEP은 자유무역체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TPP가 체결되었다면 RCEP은 무산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체결되었더라도 의미 없는 행사에 불과했을 겁니다. 미국이 TPP에서 빠진 후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그 자리를 중국이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중국은 CPTPP에도 가입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쳐왔습니다. 하지만 협정의 내용을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특히 국영기업 등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 등은 중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가입하려면 CPTPP의 개방 수준을 현재보다 낮춰야 합니다. 오히려 자유무역 상황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니케이 아시아 리뷰의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같은 사람은 자유무역체제를 위해서 중국의 CPTPP 가입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5 그리고 CPTPP 주도국인 일본과 호주가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중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복귀 가능성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도 외교적으로만 보면 TPP에 복귀해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고 싶겠지만 국내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노동자들의 반대가 극심할 것이고요. 흑인 노동자들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이든이 어떤 결정을 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만약 미국이 TPP에 복귀한다면 한국도 가입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재인 정권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가입을 하자니 중국이 무섭고 거절하자니 미국이 무서울 겁니다. 트럼프 시대처럼 양다리 외교는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정답은 가입입니다. 자유무역협정은 당연히 자유무역의 종주국인 미국 주도의 네트워크를 선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 https://thediplomat.com/2015/10/the-truth-about-south-koreas-tpp-shift/
3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863232
4 https://asia.nikkei.com/Economy/Think-the-RCEP-is-about-free-trade-Think-again
5 William Pesek, China should not be allowed anywhere near the TPP: The only way Beijing enters Pacific trade deal is by watering it down to mediocrity, November 26, 2020. https://asia.nikkei.com/Opinion/China-should-not-be-allowed-anywhere-near-the-T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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