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도서정가제

김용운 / 2023-05-19 / 조회: 1,692

최근 책을 살 때, 보통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 가게 되거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게 된다. 동네 서점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고, 아직 남아있는 서점들은 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책들이 많아 정작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은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혜택, 사은품 등에서 동네 서점에 비해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요즘에는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서 과거보다 더 다양한 책들이 전자책으로 출간되고 있다. 기존의 종이책에 비하여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접근성, 편리성을 가진 전자책의 이점으로 인해,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일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과거 동네 서점은 지리적 차이로 인한 제품 차별화를 통해 대형 서점과 경쟁을 할 수 있었다. 대형 서점은 판매하는 도서의 종류가 매우 다양했지만, 점포의 개수가 적고 일부 대도시에만 자리했다. 즉 책을 구매하기 위해 서점을 가는데 드는 비용이 높았다. 이러한 추가비용의 존재로 인하여 동네 서점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고, 무료배송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소비자들은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낮은 운송비용으로 책을 구매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 또 인터넷 서점들이 할인 경쟁이 심화되면서 책의 가격은 계속 낮아졌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책을 구매하였고, 동네의 서점의 경쟁력은 약화되었다. 실제로 동네서점은 1994년 5700개에서 2013년에 1700개까지 감소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네 서점의 보호와 대형 온라인 서점들의 과도한 할인경쟁의 억제를 위해 2014년 4월 국회에서 출판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었다. 도서정가제 자체는 2004년에 이미 도입된 제도였지만 기존에는 발매 후 18개월까지만 10%의 할인제한이 적용되고 그 이후에는 제한이 없었던 것, 경품과 포인트 적립은 할인과 별도로 책 가격의 10%까지 가능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도서정가제는 발매일과 상관없이 가격할인은 10%로 제한하고 직접할인과 포인트 적립과 같은 간접할인의 합이 정가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의 개정은 도입 이후 9년이 지나도록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비판의 주요 쟁점은 도서정가제의 도입목적인 동네 서점의 보호의 실효성과 소비자의 가격 부담 상승 문제이다. 


도서정가제 도입 목적 중 하나는 인터넷 서점들의 약탈가격정책을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와 그로 인한 시장경쟁 저해의 방지이다. 서점이 책을 공급받는 구조는 2가지가 있는데, 출판사와 서점이 직접 계약하여 책을 공급받는 형태와 중간에 중간 유통 역할을 도매 서점으로부터 책을 제공받는 형태이다. 규모가 작은 동네 서점들은 보통 도매 서점을 통해 책을 공급받는데, 거래비용의 증가로 인하여 출판사와 직접 계약하여 책을 공급받는 대형 인터넷 서점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을 매입한다. 또한 초기 투자비용이 큰 인터넷 서점들은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여, 책의 판매량이 많아질수록 평균비용이 감소한다. 따라서 동네 서점의 평균비용이 인터넷 서점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서점들이 균형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을 판매한다면 규모가 작은 동네 서점들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고, 도서 시장에서 인터넷 서점의 시장 지배력은 강화된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 정책을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 서점들이 경쟁적으로 할인율을 높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인터넷 서점들이 서로 담합하여 가격을 내렸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할인 경쟁은 균형 가격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쟁은 비효율적인 기업을 퇴출시키고, 가격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하여 사회적 잉여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만약 도서 정가제로 인해 경쟁이 제한되고 시장의 왜곡이 일어난다면, 이는 사회 전체의 잉여를 감소시킬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가격의 할인을 제한하고 정가의 일정 이하로 판매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가격하한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격하한제 하에서 책의 균형가격이 가격하한 이하일 때 초과공급이 일어나고 사회적 후생이 감소한다. 특히 소비자잉여의 감소는 더 크다. 또한 소비자 잉여 감소의 일부분은 공급자에게 이전된다. 도서 정가제로 인하여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게 되고 도서 시장의 규모도 축소된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취미가 다양해지고 있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의 접근이 쉬워지며, 책을 읽는 사람의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1년간 책을 1권이상 읽은 사람은 2011년 73.7%에서 2021년 46.9%까지 감소했다. 책의 수요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서정가제의 도입은 시장 축소를 더욱 가속화했다. 수요가 감소하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 정상인데, 가격하한의 존재로 시장의 왜곡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내려가야 할 책의 가격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책의 구매를 더 줄였다. 


도서정가제는 정부가 정교한 분석 없이 시장에 개입했을 때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대형 인터넷 서점의 시장지배를 방지하고 출판산업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제한의 결과로 시장은 왜곡은 더욱 심화되었고 소비자의 부담은 늘어나게 되었다. 동네 서점의 몰락이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환경의 변화에 의한 기존 경쟁력의 상실에 인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가격을 직접적으로 제한하여 시장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기존의 도서정가제 대신 동네 서점이 자발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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