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로 보는 국부론

오문영 / 2023-05-19 / 조회: 1,150

몇 년 전 한국에선 반일 불매 운동이 거세게 불었다. 국민들은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며 열심히 'NO JAPAN’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슬램덩크’의 누적관객은 400만명을 돌파했다. 대략 국민 10명 중 1명이 영화를 본 것이다. 일본식 문화 통치에 걸려들기라도 한 걸까? 


반일 불매 운동에 나선 이들이 대게 반시장주의적,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띄는 것과 반대로 그들이 관람한 '슬램덩크’는 친시장주의 적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이기심, 경쟁이 국가의 부를 창출한다고 했는데, 슬램덩크에는 이같은 개념이 상당히 잘 녹아들어있다.


우선 슬램덩크의 주인공 5인방(강백호, 서태웅, 송태섭, 정대만, 채치수)은 상대팀뿐만 아니라 팀 내부 구성원과의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이는 주인공 팀이 외부의 팀과 경쟁하는 식의 스토리 라인, 즉 기존 스포츠물의 문법과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이렇다. 


늦깎이 농구선수이자 근거리 슛(골밑슛)밖에 할 줄 몰랐던 강백호는 팀내 라이벌 서태웅이 중거리 슛(점프슛)을 몇 백만 번 연습했다는 것에 자극받아, 2만 번의 중거리 슛 연습에 매진한다. 그렇게 반복 숙달된 강백호의 중거리 슛은 마지막 편 산왕 전에서 작품의 데미를 장식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서태웅 역시 팀 내부 원 간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서태웅은 윤대협이나 정우성과 같은 상대팀의 실력자들과 맞서면서도, 팀 내부적으로도 강백호, 정대만과 누가 북산의 에이스 선수인지를 겨루며 성장한다.   


정대만과 채치수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중학생 시절부터 MVP를 수상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던 정대만은 북산고에 입학한 뒤, 실력은 부족하지만 '키’라는 재능이 있던 채치수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이는 채치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두 사람의 경쟁 의식은 서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영화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경쟁 상대는 '친형’이다. 작중 송태섭은 농구선수이자 동경, 라이벌의 대상이었던 친형의 죽음으로 인해 방황하지만, 끝내 형의 그림자를 벗어나 뛰어난 농구선수로 거듭난다. 이처럼 슬램덩크는 '경쟁’을 통해 성장, 성숙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경쟁’ 그 자체의 긍정적 의미와 가치를 재고케 한다.


다음으론 '이기심’이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슬램덩크 주인공 5인방의 이기심은 애초 방향이 제각각이었다. 


(영화에서) 송태섭은 형의 그림자를 채우기 위해 농구에 매진했다. 강백호는 짝사랑하는 채소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지만 정대만은 안한수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우기 위해 북산에 입학했다. 채치수가 원하는 것은 전국제패였지만, 서태웅은 전국 최고의 선수가 되겠단 작정이었다. 


제각각으로 보였던 이들의 이기심은 자연스레 '승리’라는 하나의 집결지로 모인다. 송태섭이 자신의 형을 넘어서기 위해선, 강백호가 채소연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정대만이 안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서태웅이 전국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채치수가 전국제패를 하기 위해선, '북산의 승리’란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들 각자의 이기심 덕택에 본래 예선 통과도 힘들었던 북산은 전국 최강 고교팀 산왕을 꺾고 승리한다. 이기심이란 것이 어ᄄᅠᇂ게 자연스레 사회 전체의 이익[국부]으로 귀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다. 


마지막으로 슬램덩크가 담아낸 또 하나의 가치는 '분업’이다. 아담 스미스는 분업이 생산성, 효율, 전문성 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킨다고 봤다. 


북산고의 캐릭터들은 장단이 뚜렷하다. 강백호는 초보지만 점프력이 뛰어나 리바운드에 적합하다. 서태웅은 체력이 약하지만 1대1 공격 상황에선 적수가 없다. 송태섭은 단신이지만 드리블과 시야가 뛰어나 볼 운반과 패스를 책임진다. 채치수는 프리스로우에 약하고 공격 패턴이 단조롭지만 파워가 뛰어나다. 정대만은 체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3점 슛에 능하다. 


강백호가 3점 슛을 넣는다거나 채치수가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는 식의 설정, 즉 모든 걸 잘하는 만능의 선수는 슬램덩크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북산고 멤버들은 맡은바 포지션에 따라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데에 집중한다. 채치수는 골밑슛, 강백호는 리바운드, 송태섭은 드리블, 정대만은 3점슛, 서태웅은 1대1 공격이다. 


작품은 분업이 북산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다. 선수 각자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됨에 따라 팀 전체의 생산성, 효율, 전문성은 높아졌고, 반대로 각자의 단점은 팀의 다른 선수가 상쇄시켰다.


특히 작중 산왕전에서 신현철에게 골밑을 내주던 주장 채치수는 자신의 패배가 곧 팀의 패배라는 상념에 젖는데, 그런 채치수에게 라이벌 변덕규는 '넌 도미가 아니라 가자미다, 진흙투성이가 돼라’라는 조언을 건넨다. '너는 팀의 주역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에 채치수는 팀원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 모두가 부족한 개인들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시장경제의 강점을 역설하는 장면이다.


최근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문화 컨텐츠에는 '과다 경쟁’이니 '승자 독식’이니 하는 반시장주의적 프로파간다들이 교묘히 스며들어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열광적으로 관람했던 슬램덩크는 이와는 반대였다. 작품은 '경쟁을 통한 성장’을 고찰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생적 질서가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지를 강조한다. 한국인들이 무의식속에서 이에 대한 갈망과 동경을 품고 있었기에 슬램덩크가 큰 인기를 구가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슬램덩크 같은 컨텐츠들이 많이 제작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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