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의 무임승차와 강제승차

김영신 / 2023-03-20 / 조회: 4,569       시장경제신문

최근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적지 않은 국민들이 에너지 관련 공공요금 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들이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역할은 필요하다. 특히 취약계층이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모두가 정부가 관여할 수도 없고 또한 관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주체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에 시장실패의 원인이 된다고도 한다. 일찍이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구성원의 자발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도 어렵고 실행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정부에 의해 도로, 항만, 공항, 군대 등 사회간접시설이 건설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공공재는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않기에 정부가 더 잘 공급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 의존하는 것은 무임승차와 강제승차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정부는 공공재의 최적 공급량을 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알 수 있더라도 최적량을 공급할 유인도 약하다. 그러므로 공공재는 실제의 요구보다 과잉 또는 과소 공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니스카넨(Niskanen), 미그-빌레인저(Migue-Belanger)모형 등에서는 공공재가 사회적 최적량보다 많이 공급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공공재에 대한 무임승차자의 문제로 인해 마치 공공재가 과소 공급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이는 공공재에 대한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불필요하게 많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비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는 가격 기능을 통해 필요한 수요량과 공급량이 조절된다. 재화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가 명확하게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용된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술한 도로, 항만, 공항, 군대 등 엄밀히 말하면 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가격을 부과할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의 발전으로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는 얼마든지 민간에서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정부의 과다한 공공재 공급에 따른 세금 낭비와 자원배분의 왜곡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원가 이하로 제공되는 공공재 공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기업의 적자는 결국 누군가의 부담으로 귀착될 것이다. 누구라도 공공재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비용을 부담해도 된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누가 얼마나, 언제 그리고 어떻게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된다.


예컨대, 정부의 지원으로 공기업 적자가 메꾸어 질 경우 해당 공공재나 공공서비스의 사용 여부 또는 사용 정도와 관계없이 조세를 납부해야 한다. 무임승차의 문제와 대조적으로 원치 않는 공공재 공급 수준을 위해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강제승차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적자를 보는 공기업의 과다한 공사채 발행은 금융시장을 교란하기도 한다.


최근 비교적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한전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금융시장의 조달금리가 높아져 금융 대출자의 대출이자 부담이 가중되기도 한다. 결국 금융시장에서의 대출자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전기 사용자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셈이다. 채권시장에서는 한전채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일반 회사채 발행은 어려워져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채권시장의 왜곡을 초래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전의 지속적이고 과다한 영업적자로 기업가치는 훼손되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전을 포함한 코스피(KOSPI)에 상장된 에너지 공기업들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공공요금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해당 공기업 일반주주들은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것이다.


약 50여년 전, 세계 자원·환경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석유고갈이 현실화되지 않은 것은 시장가격이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적절한 행동 신호를 주었기 때문이다. 수요측면에서는 비싸진 석유를 더욱 아끼고 절약하게 만들며 공급측면에서는 비싸진 석유생산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게끔 하였기 때문이다. 규제는 불완전한 수단이다. 과도한 규제가 현실을 외면하고 정치적 목적에 경도되어 있거나 정부 부처의 성과주의에 매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획일적인 규제정책은 또 다른 왜곡을 낳아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킬 뿐이다.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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