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채식의 시대를 열다

백진영 / 2022-12-06 / 조회: 1,490

요즈음 대형 마트에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냉동 고기만두 한 봉지를 무심코 집어 드니 포장지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식물성’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닭고기 대신 두부로 만든 두부 텐더, 대체육을 사용한 콩불고기와 함박스테이크, 우유 대신 귀리에서 짜낸 오트밀크까지. 고기와 우유가 식품 산업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식물과 곡물이 서서히 대체하고 있다. 바야흐로 채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채식 상품이 이렇게 많이 출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정부의 친환경 정책도, 환경 단체의 압박도 그 원동력이 아니었다. 답은 식품 산업에서 채식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변화한 것에 있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와 오물을 배출하는 축산업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비윤리적인 사육 환경과 잔인한 도축 과정 또한 동물의 권리가 중시됨에 따라 비판받게 되었다. 그 결과 ‘간헐적 채식’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성 식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인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국내 채식 인구가 250만 명에 달하는 등 식물성 식품에 대한 수요가 가시적으로 늘어난 것이 확인되었다.


식품 기업들은 기꺼이 변화의 물결에 뛰어들어 이익을 누리고자 했다. 이들은 동물성 재료들을 식물성으로 대체하는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으며,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채식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채식 식품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였기에 기업들이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한편,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기업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시장 진입 기회와 보다 자유로운 경쟁 환경이 제공되었다. 기업들은 기존 제품의 원료를 식물성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손쉽게 경쟁자들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었고, 이는 친환경 경영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획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채식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은 신념에 근거해 가치소비를 해서 타 고객들에 비해 가격탄력성이 낮다는 점을 이용해 충성스러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환경 친화적 경영으로 기업 이미지가 제고된 덕에 늘어난 외부 투자 지원은 덤이었다.


소비자들도 그들이 원하던 이익을 얻었다. 과거 식품 시장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상품의 종류가 제한적이었으며, 그마저도 공급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과 수요가 발생했다. 이는 곧 사중손실의 발생을 의미하며, 효용을 극대화하지 못한 소비자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이 다양한 채식 식품을 시장에 내놓은 덕에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수준까지 충분히 구매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기업들이 새 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소셜 미디어에 쏟아지는 후기들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후기들은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진 소비자들의 신규 유입을 이끌어내었으며, 이는 식품 기업들로 하여금 채식 산업에 계속해서 투자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했다. 그 덕에 채식 식품 시장이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고 발전되는 선순환이 나타났다.


채식 식품 산업의 성장은 사회 전반에도 바람직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존에 기업이 동물성 식품을 생산할 때에 발생하던 생태계 훼손과 도살당하던 가축들의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외부의 강제도 없었으며,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라 자발적으로 산업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소비자들은 채식주의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가치소비를 실현함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시장에 참여했다. 식품 기업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요에 맞추어 식물성 상품의 공급을 늘렸다. 이처럼 두 경제적 주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과정에서, 환경 보호라는 궁극적인 가치가 실현되며 공동체 전체가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채식 식품 시장의 사례는 시장 경제 시스템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채식의 시대를 연 것은 엄격한 기업 규제나 과격한 시위가 아닌,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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