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에 불어닥친 한국의 경제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발전방식이 수명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새로운 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확실한 것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미래의 번영이냐 아니면 참혹한 역사의 반복이냐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나갈 방향을 정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든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세계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을 자유시장원리에 철저히 적응시키는 것 뿐이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철저하게 시장원리로 해결한다는 대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개혁이야말로 시대가 요청하는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좌파 이데올로기(Idelogue)들은 여전히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혁명을 주장하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중도노선(middle way)을 내세우는 세련됨으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이든 중도노선이든, 모두 다 실패를 기약하는 넌센스라는 점에서는 다른 것이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근래에 우리 나라가 자유주의가 아닌 중도노선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일부 좌파적 성향을 가진 학자들의 관념 속에서 숨어 있던 이데올로기가 사회정책으로 가시화될 수도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중도노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노선은 이러한 환상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 그것이 비록 민주주의라는 그럴 듯한 외피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바로 그러한 실패의 전형적 사례이다. 스웨덴의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시장원리를 무시한 중도노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지식인이 전해주는 `스웨덴 실패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스웨덴과 스위스는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내는 평판 좋은 기업들이 있었다. 두 나라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교전국들 사이에서 무역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뒤 스웨덴과 스위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경제발전을 추진하였다. 스위스는 전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반면 스웨덴의 경제는 1960년대 말 이후에 지속적으로 하강국면에 있다. 그 기간 동안 스웨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스웨덴의 산업화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로 약 100여 년에 걸쳐 스웨덴은 다른 어떤 산업국가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달성해 왔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서 국제적으로 성장해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해외에서 유입된 기술과 자본이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되었기 때문이며, 둘째, 계속적인 기술혁신이 일어났고, 셋째,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노동력이 이동하였고, 넷째,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고안된 산업문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제성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은 70년대에 2%로 하락하더니 80년대에는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기업의 파산이 5배나 증가했으며, 실업률도 2%에서 8%로 상승했다. 정부는 GDP의 10%에 이르는 예산적자를 기록했으며 외채는 두 배로 늘어났다. 어떤 메커니즘이 스웨덴의 경제를 이런 위기로 몰아넣었을까?
1932년 이래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거의 계속 집권했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핵심이 되는 세력은 사회민주당과 노조연합이며 이들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정책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인 개입으로 특징지어진다. 사회민주주의는 스웨덴의 정치적 사고체계를 형성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특권을 만들어 냈다.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원을 둔다. 비록 사회민주주의가 급진적인 혁명을 포기한다고는 하지만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목표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경제를 국유화하거나 최소한 국가의 통제하에 두려고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목표로 인해, 스웨덴에서는 케인즈의 개입정책이 쉽게 도입되었다. 그러나 케인즈적 개입주의는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스웨덴의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한 때 계획경제체제로 진전하기도 했다. 1944년에 전후 경제불황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사회민주당은 계획경제체제를 도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1948년 선거에서 수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은 모든 기업을 사회화시키고자 하기도 하였다.
계획경제나 기업의 사회화가 선거에 의해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소득을 사회화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조세의 폭이 넓어지고 한계세(marginal tax) 및 간접세가 증가했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 저소득층은 소득의 60%, 고소득층은 소득의 65% 이상을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스웨덴은 1970년경부터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문제들을 점점 더 집단적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개인의 예금을 집단주의화 시키는 방법으로 국영의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되었으며, 아동보호는 개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질병이나 실직과 같은 불행에 대한 대비도 개인의 저축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사회보험에 의해서 해결된다.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을 강조한다. 스웨덴에서의 평등은 `불공정` 자체에 대한 반대일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차이`도 참을 수 없다는 식으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주택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선호의 차이가 무시되고 일방적인 평등기준이 적용된다. 그리고 기술수준이 높은 근로자와 낮은 근로자가 받는 급여의 차이도 줄어들었다.
소득에 대한 높은 세금과 예금의 집단화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의 저축 동기가 매우 낮아졌다. 그 결과 현재 스웨덴의 저축률은 다른 나라들의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주식투자에 의해서 얻는 소득에 대해서 다른 형태의 소득에 비해서 훨씬 많은 세금을 부과해 왔다. 즉 이윤분배에 대한 세금이 85%에서 92%에 달했던 것이다. 이렇게 배당소득을 거의 몰수하다시피 하는 세제稅制는 산업구조의 경직성을 야기했다. 즉 오래된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이윤의 이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의회제도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이 거의 완벽하게 결핍되어 있다. 즉 51%의 다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노동조합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혜택을 부여해 왔다. 더욱이 스웨덴 헌법은 소유권 보호에 대한 규정을 미약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다수파인 사회민주당은 소유권을 무력화시키는 세금제도를 무제한적으로 도입해 왔다.
사회민주주의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현재, 스웨덴은 인구의 20% 이상이 실업상태에 있다. 실업률이 이렇게 높아진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 최저임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고, 둘째, 조세부담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며, 셋째, 기본급여율(구제금)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스웨덴 경제가 안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는 성장의 동기가 쇠약해졌고, 경제의 유연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경쟁과 기술이 국제화됨으로써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 그런데 세금제도와 복지제도의 일반보호법안이 이러한 변화를 막는 강력한 장벽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