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의 일반적인 추세는 작은정부로의 지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작은정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작은정부라고 말할 때, 흔히 공무원 수나 재정규모 같은 정부부문의 축소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식적인 정부부문의 축소만으로는 부족하며 진정한 작은 정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준정부조직의 축소가 병행되어야 한다.
준정부조직이라는 것은 정부조직이 아니면서도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조직들을 말한다. 이 부문은 매우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광범위한 준정부부문 중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연연구소, 정부지원 민간단체등 3개 조직에 대해서 그것의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아울러 개선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8개의 정부투자기관이 있다. 1996년 12월 현재 이들의 총자산은 178조 9,382억원이며, 여기에서 총부채를 제외한 자기자본액은 43조 9,937억원이다. 이들이 1996년 한해 동안 벌어들인 총수입은 43조 5,334억원이며, 여기에서 총비용과 세금을 제외한 당기순이익은 1조 6,712억원이다. 정부투자기관의 총수입은 정부 총국세의 67%에 해당한다.
1997년 현재 정부의 출연을 받는 연구기관(교육방송 포함)은 총 51개에 이른다. 이들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인원수는 1만 2천 5백여명이다. 그리고 1997년 예산상 이들 기관에 배정된 출연금은 7,190억원이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실제 규모는 이 보다 훨씬 더 크다. 과학기술계 출연기관의 1995년도 연구개발비 총액(출연금과 프로젝트별 사업비)은 1조 2,511억원이었다. 여기에 인문사회계 연구소들의 정부출연금과 자체수입금을 합하면 1995년도에 정부출연연구소가 사용한 돈의 규모는 1조 3,742억원 정도가 된다. 한편 이들 기관에 대한 정부출연금의 증가율 평균(1995∼1997년)은 16.4%로서 같은 기간 GNP 증가율 12.9%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민간단체에 지원되는 돈은 정부예산 중 민간경상보조로 분류되데, 그 액수가 일반회계기준으로 1996년에 8,142억원, 1997년에 9,967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들 3개 준정부조직의 총규모를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서 이들의 총수입을 정부부문의 수입인 총국세와 비교해 보았다. 1996년도를 기준으로 18개 정부투자기관의 총수입은 43조 5,334억원, 정부출연연구소의 총연구개발비는 1조 6,188억원(추정치), 그리고 민간경상보조총액은 8,142억원으로 총 45조9,664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정부의 총국세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해 64조 9,588억원이다. 양자를 비교해 보았을 때, 3개 준정부조직의 규모는 정부규모의 70.1%에 이른다. 이들 3개 조직의 규모가 정부규모의 70.1%에 이른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준정부부문의 크기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준정부조직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없을까? 3개 준정부조직들은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정부투자기관의 문제점이다. 1996년 8월 현재 18개 정부투자기관의 사장과 이사장의 경력을 보면 경영전문인들 보다는 정치인, 전직관료, 군인 등 비전문가들이 이들 기관의 경영자로 임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정부투자기관의 효율성보다는 임명권자의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투자기관들은 각종 규제들을 통해 해당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독점은 여러 가지 명분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러한 명분들이 더 이상 타당하지 못하다는 지적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투자기관들의 명분없는 독점 속에서 기술진보가 정체되고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출연연구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예산운용에 있어서 정부의 출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출연연구소들은 예산집행의 경직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수시로 바뀌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변화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 연구소를 자기 부처의 산하에 두려고 하는 부처이기주의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한편 이들 연구소들은 산업체의 필요와는 동떨어진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계 출연연구소만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사회계 출연연구소들은 어용연구소라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으며 예산 대비 연구비 비율이 총예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셋째,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은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은 김영삼 정부의 초기에 줄어들다가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6년과 1997년에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낭비적인 지원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성격이 비슷한 단체에 중복해서 지원함으로써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수명이 다한 단체(기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단체)에도 계속해서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한’에이즈퇴치연맹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대한 지원은 중복지원의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대한가족계획협회와 한국결핵협회에 대한 지원은 수명이 다한 단체에 대한 지원의 사례일 것이다.
한편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단체가 각종 규제를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통상산업부 산하의 민간단체는 승인, 지정, 추천, 등록, 신고, 보고, 제한, 면제, 지도ㆍ감독 등 다양한 형태의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규제는 가입ㆍ탈퇴의 제한이나 사업활동의 제한과 같은 경쟁제한적 성격의 규제, 증명발급 및 자료제출규제와 같은 행정절차적 성격의 규제로 나누어진다. 민간단체를 통한 이러한 규제는, 정부에 의한 직접규제와 함께, 경제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경제적 진보를 제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쟁을 통한 상공업 발전과 소비자 후생의 증대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준정부부문을 구성하고 있는 세 조직을 살펴 본 결과, 준정부부부문은 정부부문의 비효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면서 민간부문을 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정부실패에 추가해서 준정부의 실패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준정부부문은 과감히 축소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개선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준정부부문에 대한 종합적인 현황파악이 필요하다. 이 글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3개 준정부조직의 규모만 해도 정부규모의 70%에 이르고 있다. 준정부부문 전체의 규모는 정부규모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현황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 부문에 대한 종합적인 현황을 ‘준정부부문 백서’의 형식으로 발간하도록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정부투자기관은 민영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경영성과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소비자 잉여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민영화를 통한 경쟁체제의 도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현행 제도의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반발을 두려워하여 개혁의 시기를 늦추게 되면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김영삼정부 초기에 추진되었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복구하여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민영화로는 그 효과를 제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각종 규제를 철폐해서 해당 사업분야가 경쟁체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출연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들을 과감하게 민영화시켜 시장원리에 맡겨 두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출연연구소들이 산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산업체들이 그것을 소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현재 과학기술계 출연연구소를 민영화시키게 되면 굳이 연구방향을 조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산업계와 연구소 사이의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문사회계 출연연구소의 비효율성도, 그것을 시장기능에 맡겨두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다만 인문사회계의 경우 시장에서의 수요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대학이나 뜻있는 개인, 기업에 불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정부의 민간단체지원은 원칙적으로 중단되어야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적 목적으로, 또는 경제적 낭비를 수반하면서 이들 단체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민간단체에 의해 수행되는 규제업무는 시장질서를 왜곡시킨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일시에 중단시키는 것이 어려울 경우, 3년 정도의 시한을 두로 연차적으로 지원액을 줄여나가고 3년 후부터는 지원을 중단하면 될 것이다. 지원이 줄어드는 동안 각 민간단체들이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규제업무의 철폐는 그것의 근거가 되는 관련법, 시행령, 고시 등을 폐지함으로써, 그리고 법적 근거 없이 정관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규제들을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