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이야기

도서명 금융실명제 이야기
저 자 김한응
페이지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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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이야기 시리즈 14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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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할 것을 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이 제도는 우리 경제에 대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실시될 당시에는 금융실명제만 실시되면 부정부패는 즉시 우리나라에서 근절될 것이라고 하는 환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19세기 초에 미국에서 금주법을 시행하기만 하면 미국 땅에서 모든 범죄가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했던 금주운동과 비슷한 것이었다. 미국의 금주법이 범죄를 소탕하는 데 실패하고 또 이 법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이 법은 미국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될 때에 있었던 이에 대한 지지열기는 어디로 갔는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실명제에 대한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융실명제와 관련된 근본적 문제점이 일반국민들에 의해 이해되기도 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절실하게 실생활에서 이들은 큰 불편을 몸소 경험하게 된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실명제의 폐지에 대한 지지는 학력이 낮은 30대~40대 그리고 자영업과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영세상공인들이라고 가정하면 많은 것이 설명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금융실명제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금융실명제는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자기 재산을 보호하고 감추려는 본성이 있으며 "자유"의 개념은 이런 본능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검은 돈" 운운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효과, 더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 실명제의 실시가 연기되고 있다.


둘째로,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당시에도 이러한 우려는 강했으며 그 이후 이러한 부작용을 중화시키기 위하여 많은 통화를 살포하였다. 이렇게 살포된 통화로 인한 인플레 기대심리와 더불어 금융실명제는 경제에 큰 주름살을 안겨주고 말았다. 


구체적으로는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었고, 민간저축률이 떨어지고 과소비가 만연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금융도 더 번창하였고 지하경제도 늘어만 갔다.


셋째로, 금융실명제는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조세의 형평을 달성하는 데 있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에 집착한 제도이다. 먼저 일반국민은 부패와 거리가 멀고 권력과 규제만이 부패할 위험성이 높은데 금융실명제는 이 점을 간과하고 부정부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일반국민까지 구속하는 방식을 택했다.


규제를 풀고 권력을 분산시키면 부정부패가 생길 소지 자체가 크게 줄고 여기에 정치인, 고급관료 등을 감시․감독하기 위한 정치자금법과 부정부패방지법을 제정하고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해 놓으면 부정부패의 대부분은 해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평과세도 전체적인 세율을 낮추고 조세구조를 단순화하여 조세포탈 의욕 자체를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과 같아서는 세무공무원들의 부정을 방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 정도이다.


금융실명제는 범죄, 즉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지 못한 측면이 많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옥석(玉石)을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고, 또 금융기관 직원을 쉽게 공범자로 만들 위험성도 있는 것이 금융실명제의 문제점이다.


IMF측에서 금융실명제의 기본골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지만 이들이 "사생활", "투명성", "국민의 알 권리" 등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므로 이런 시각에서 IMF측의 입장을 고려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