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업집단 문제 일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대중경제지식을 다루고 있다. 지식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습관적으로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기업집단 문제의 몇몇 주요 사실을 중심으로 필자의 논리를 쉽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첫째, 대기업은 담합행위를 할 수 있는가?
기업집단 문제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과 일반 대중들은 30개나 50개의 그룹들을 하나의 단합된 실체로 받아들이는 데 아주 익숙하다. 과연 기업집단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나의 단일 주체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기업집단이란 개념은 단순히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개념일 뿐이다. 시장에서 단합(collusion)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은 아주 소수의 통일된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이 참여해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기업집단들은 다양한 이해를 가진 극히 이질적인 기업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40조나 50조 정도의 매출액을 가진 상위 그룹들로부터 2-3조에 불과한 하위 그룹들에 이르기까지 그룹들은 아주 이질적이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그들 사이에 공동이익의 극대화를 시도할 만한 여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단합이 유지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둘째, 기업집단의 전횡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기업들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나 투자가의 환심을 사야 한다. 그런데 소비자나 투자자처럼 냉정한 사람들도 드물다. 왜냐하면 소비자나 투자자는 가격이나 품질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금새라도 안면을 몰수한다. 이처럼 순간순간마다 기업들은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과 같은 존재이다. 정치가들은 4년이나 6년만에 한 번만 시험을 보면 되지만, 기업들은 매 순간마다 치열한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비자나 투자가의 자비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나 투자가에서 뇌물을 갖다 바치고 환심을 살 수도 없다. 따라서 소비자나 투자자 위에서 군림하는, 소위 기업집단의 전횡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셋째, 문어발식 확장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계열기업을 늘려가는 데는 기업가의 탐욕이나 비경제적인 요인보다는 시장기구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인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줄이려는 동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의 기업집단이 생성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래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요인을 대단히 중시하여 왔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기업을 확대하려는 경제적인 유인이 존재하는 환경 하에서 기업의 사업확장을 규제하려고 시도하거나, 이를 비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는 그들이 누리는 편익을 최대한 증가시키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는 인센티브에 따라 행동한다. 기업이나 소비자를 둘러싸고 있는 유인구조가 존재하는 한 이 같은 것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
넷째, 기업집단은 영원히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독점의 원천은 정부의 인허가권에서 나오고,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이 그동안 독점이윤을 누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의 의지나 외부적인 환경 변화에 의해서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정책이 실시되면서 오늘날 대기업이 누릴 수 있는 독점이윤은 거의 소멸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진입장벽이 지금은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는가? 어떤 시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몇몇 분야에서 정부는 아직도 유치산업 보호론 정도의 사고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사업분야들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독과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수입선 다변화 대상이 되는 몇몇 품목과 산업합리화 대상이 되는 몇몇 사업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산품 시장에서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다섯째, 정경유착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관계는 대등하지가 않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대등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하면 기업집단, 기업들이 돈을 갖다 바치는 행위는 어떤 이유를 든다고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한쪽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나머지 한 쪽은 막강한 권한을 쥔 정치권력 아래에서 기업을 움직여 가야 한다고 하면, 돈을 갖다 바치지 않고서 배겨날 기업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기업운영이나 장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야 도덕이나 윤리 문제를 거론할 수가 있다.
여섯째,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환상은 타당한가?
현실적으로 시장경제와 재산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체제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인위적으로 강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인위적으로 강요할 그 어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당위성도 없다. 그렇다면 지식인이나 정책입안자들은 감정과 열정에 기초한 잘못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소리 높여 외치는, 소유와 경영의 인위적인 분리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기업집단은 소득분배를 왜곡시키는가?
오늘날 한국의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부란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팔아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성장은 상장이란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업성장에 참여하여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덟째, 기업집단의 성장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억제하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를 반목과 갈등으로 파악하는 고정관념이 유행하고 있는 데 반해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오늘날 만들어진 대부분의 제품들은 수없이 많은 부품이나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건대 한 기업이 모든 부품이나 소재를 직접 생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중소기업 문제는 금융산업의 낙후가 실물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비즈니스로서의 은행이 중소기업의 신용, 능력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체제의 구축 없이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중소기업 지원책은 경제에 주름살만 가져올 뿐이다. 비즈니스로서의 은행산업이 자리를 잡을 때만이 중소기업 역시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자신의 신용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홉째, 지식인은 기업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지식인들은 안정지향형 인간들이다. 이들은 기업하는 인간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기업가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가라면 그는 이미 기업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가를 한마디로 `튀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가들과 지식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열째, 기업집단의 생명은 영원한가?
사람들은 정치권력은 유한하되, 경제 권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치권력에 비해 경제 권력의 힘은 막강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30대 기업집단이라 불리는 이익집단이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는 데 열을 올린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한국 기업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생각보다는 기업들의 부침이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원히 부를 누릴 수 있는 기업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짧은 우리 기업의 성장사는 보여 주고 있다.
아무튼 한국의 기업집단 문제는 열띤 감정이나 흥분에 기초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냉정하게 분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말이나 글로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식인들이 언행에 보다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기업집단들은 현재 상당한 변혁기에 당면해 있다. 안팎으로 치열해지는 경쟁압력과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이양해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다. 게다가 정보환경과 기술 환경의 변화는 기업집단들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현재 30대 기업집단이 2000년대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최상위권 기업집단들을 제외하면, 사업구조조정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업집단들의 도태가 눈에 두드러지게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 사업다각화 문제, 그리고 전문경영인 등용과 같은 기업집단 문제도 경쟁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해결되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