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어셰이머 지음/ 이춘근 옮김/ 나남출판
인류 역사에서 국가들 사이에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긴장 상태가 오히려 정상이었다. 20세기 전반에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참여하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20세기 후반은 전쟁에 준하는 냉전 상태였다.
국제정치학은 국제 관계가 지닌 폭력적 성격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필요에서 출발했다. 1948년의 저작으로 현대 국제정치학의 체계를 세운 모겐소(Hans Morgenthau)는 그것이 인간에 고유한 권력욕 때문이라고 보았다. 남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즉 권력욕은 거의 모든 인간에 고유한 본성이다. 권력 행사의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폭력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는 잠재적으로 폭력적이다. 국제정치의 폭력성이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것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국내 정치에 비해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1979년의 저작을 통해 현대 국제정치학의 제2세대를 이끈 월츠(Kenneth Waltz)는 모겐소의 이론이 과학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의 권력욕이란 입증하기 어려운, 불필요한 가정이다. 그것 없이도 국제정치의 폭력성은 설명이 가능하다. 자고로, 그리고 특히 국가들이 주권평등을 주장하는 오늘날 국제정치에는 국가들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세계정부가 없다.
이럴 때 국가의 최고 목표는 생존이다. 그래서 국가들은 큰 세력에 편승하여 더 큰 힘을 추구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약한 세력에 동참하여 큰 힘의 충격을 완화하려고 한다. 세력균형이란 그렇게 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이론의 과학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 그래서 냉전의 평화적 종식이라는 파격적 변화를 예측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했다.
2001년 출간된 미어셰이머(John Mearsheimer)의 이 책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도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세계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존망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의 행동 동기를 구성한다고 본다. 그러나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몸을 사리고 현상유지에 급급해한다는 월츠의 ‘방어적 현실주의’이론은 역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존이 목표라고 하여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이 반드시 현상유지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큰 권력을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세계 차원에서 패권국이 될 때 생존이 가장 확실히 보장된다. 그래서 그는 국가들이 생존이라는 방어적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권력을 추구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를 주창한다.
월츠는 탈냉전시대에 필적할 세력이 없는 미국이 두려워 다른 강대국들이 세력 균형을 추구할 것이고 그때문에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패권국인 미국이 공격적 일방주의 외교를 취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 오히려 군사력을 증강하고 재편하고 빈번하게 전쟁을 하고 있다.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패권적 지위를 굳히기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가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안보를 위해 힘, 나아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들의 정책은 자멸적이다. 강대국들 사이에 빚어지는 상호 위협의 딜레마 때문이다. 한 나라가 힘을 추구할수록 다른 나라를 위협한다. 다른 나라는 대응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응행동은 애초의 노력을 중화하고 위협을 가중시킨다. 위협은 상승적으로 커진다. 그래서 국가들은 존망의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심지어 파멸적인 전쟁에 이르게 된다.
고래 같은 강대국들이 서로 싸우면서 이처럼 비극적 운명을 면치 못한다면 그 사이에 낀 새우와 같은 약소국들의 운명은 더욱 비극적이다. 탈냉전시대 평화의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오늘날 이 책은 시의적절한 해독제다.
(김태현 중앙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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