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치이고 제조사 눈치
전통시장 못 살리는 '유통법’
기울어진 운동장만 더 심화
오프라인 유통사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쿠팡 같은 온라인 유통 공룡의 매서운 성장으로 유통업계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오프라인 유통사는 각종 옛 규제에 발목이 묶여 출구전략 마련에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오프라인 유통사가 꼽는 대표적인 시대착오적 규제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과 제조사에 판촉비 전가 등을 막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등이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상생을 목적으로 2012년 도입됐다. 이 법은 대형마트가 월 2회 공휴일에 문을 닫고, 밤 12시부터 익일 오전 10시까지는 영업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의무휴업일은 기본적으로 공휴일 중에 지정해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통해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정작 의무휴업에 따른 혜택을 전통시장이 아닌, e-커머스(전자상거래)업체와 식자재마트 등이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자유기업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 '대형마트 규제 10년의 그림자와 향후 개선과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소매시장에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각각 21.7%에서 12.8%, 13.9%에서 9.5%로 각각 8.9%포인트, 4.4%포인트씩 줄었다.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물류 관련 4개 학회 전문가 1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전통시장의 경쟁상대로 가장 많이 꼽힌 곳은 슈퍼마켓·식자재마트(28.7%)였다. 온라인(27.8%)이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의무휴업 규제가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까지 적용되는 것은 본래 취지와도 어긋날뿐 아니라 e-커머스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국회에는 온라인 배송을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이 계류돼 있긴 하지만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지 마트에 있는 물건을 배송한다는 이유로 의무휴업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다. 오히려 온라인 쇼핑 쪽으로 운동장을 더 기울이려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규모유통업법도 유통 생태계 변화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등 대규모 유통업자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로 중소 납품업체 등에 불공정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2년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대형 유통업체들은 납품업체에 상품 반품 또는 판매 촉진 비용을 전가하거나 배타적 거래를 강요할 수 없다.
유통업계는 최근 온라인 시장 확대 등 판매채널 다변화로 대형 유통사들의 입지가 약해진 반면 제조사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유통업법은 유통사는 모두 갑, 제조사는 모두 을, 이런 식으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대기업이지만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아서 을의 위치에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유통사가 수익성 개선을 위해 확대하고 있는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하도급으로 규정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업계에서는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경영전략을 제한해 소비자의 편익이 제약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편의점업체 관계자는 “편의점 매출에서 PB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대에 달한다. 국내 편의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고, 온라인 쇼핑 확대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각종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벼리 헤럴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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