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에너지 안보 시대

조성봉 / 2022-07-26 / 조회: 6,927       미래한국

우리 에너지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제시하려면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특징과 장단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 에너지 여건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올바른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에너지산업의 특징을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에너지의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1차 에너지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이런 이유로 중동전쟁, 일본의 원전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에너지 가격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에 따라 우리의 에너지 사정은 요동친다.


둘째, 에너지 인프라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고립형 아일랜드(island)다. 우리의 전력망, 가스 배관망 등은 다른 나라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력과 가스를 우리 자체에서 공급하고 소비해야 한다.


셋째,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권은 아파트 등 집단주택이 많아 전력, 가스, 열 등의 수송 및 배달비용이 매우 저렴한 특징을 보인다. 넷째, 우리 에너지 산업은 정부와 공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에너지정책에서 에너지 안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외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국내에서 오랫동안 비축하고 가공할 수 있는 원자력의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에너지원의 안정적 수입을 위해 강대국과 자원부국을 상대로 한 기민한 국제정치적 게임과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 이와 함께 에너지 및 희귀 자원에 대한 탐사와 개발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를 전후하여 석유 중심의 에너지원을 원자력, 유연탄, 천연가스 등으로 다변화한 계기도 1·2차 오일쇼크에 따른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의 결정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탈석탄을 강조하고 2030년과 2050년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높게 잡은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감시에 따른 목표 제시라는 점에서는 이해되지만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무시한 무리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의 역할을 높이고 석탄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감축하기로 한 점은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고립형 아일랜드인 우리나라는 전력망과 가스 배관망이 연결된 유럽을 벤치마크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원전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고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아 쉽게 탈원전과 탈석탄을 채택할 수 있었던 독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봉착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 산업 경쟁 가능성 열어놔야


에너지 안보가 우리 에너지정책이 갖춰야 할 큰 틀이라고 한다면 구체적인 에너지정책의 작동원리는 시장과 가격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최근 한전의 적자와 전기요금 문제에서도 나타났듯이 우리 에너지산업은 정부의 명령과 통제가 시장원리나 가격보다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에너지정책에는 경제성장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경제성장기에는 에너지 인프라의 건설, 연료의 도입, 에너지의 공급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제도와 시장의 정비보다 더 급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인센티브, 시장원리에 따른 가격체계의 운용 등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급한 대로 임시방편으로 마련했던 제도와 가격체계가 이제는 이해집단과 기득권을 형성하여 합리적인 에너지의 생산과 배분을 위한 제도적 개혁, 산업구조 개편, 가격체계 합리화를 가로막고 있다.


전기, 천연가스 등은 정부가 공기업을 통하여 공급하고 강력한 가격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한전, 가스공사를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은 누적적자가 커져 대부분 '재무위험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었다.


낮은 에너지 가격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정직한 에너지정책은 미래시점에 실천 불가능한 재생에너지 목표를 찍어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윤석열 정부가 시장원리에 기반한 전력시장과 전기요금 체계를 확립하고 전기위원회와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한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전기와 가스요금이 공공요금으로서 물가관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면 정부의 가격규제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가격수준과 함께 개선해야 하는 것은 가격체계이다. 일례로 전기요금은 전국이 동일한데 이로 말미암아 발전소와 송전선과 같이 전력설비가 제대로 건설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의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HDVC 고압 송전선을 벌써 지금쯤 완공했어야 하지만 아직 주민 동의도 받지 못한 상태다.


동해안에 건설될 민간의 석탄발전소와 울진의 원전도 이 송전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석탄발전소를 대체하기 위해 가스 발전소를 건설해야 하지만 전국을 뒤져도 그 입지를 찾아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송전선이 지나는 곳과 발전소가 많은 지역에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도입된다면 지자체는 산업체나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할 수 있게 되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게 되므로 전력설비의 입지에 협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기업 독점으로 운영해 왔던 에너지산업에 경쟁과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장기계약을 통해 대규모 사업자에 대한 전력판매를 허용하여 독점판매구조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겠다고 한 것은 이런 점에서 기대된다.


경쟁과 선택을 공정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의 중립적 운용은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가스산업에서도 도입한 LNG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허용하며 배관망과 저장탱크 등의 천연가스 공급인프라를 개방하여 연료의 효율적 공급을 허용해야 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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