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주의 기원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에서 출발
문재인 정부의 차베스 따라하기 경제자유화가 처방전
최근 '공정경제 3법’으로 포장된 '기업규제 3법’을 둘러싼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경영계의 반발에도 정부 여당은 물론이고, 자유시장경제를 지켜야 할 우파 야당의 비대위원장까지 합세하여 큰 틀에는 '규제 3법’에 공감을 표시했다.
경제민주화만큼 대한민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이보다 더 불명확한 개념도 없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영은 경제민주화는 이미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시대의 흐름’ 혹은 '시대 정신’이라 강변한다. 혹은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연구자를 '색깔론’을 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라고 폄하하거나, “이런 어리석은 세뇌를 일삼는 정치세력은 민주적으로 숙청돼야 한다”라는 경고를 날리기도 한다.
진정 경제민주화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며, 선진 경제질서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인가. 사실은 경제민주화는 선진국에서는 아무 나라도 실행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엄청난 오류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대부분이 경제민주주의가 출발한 서구의 역사적 배경과 이론적 발전과정을 잘 모르고 있거나,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경제민주주의의 사회주의적 속성을 구태여 밝히지 않은 탓이라 여겨진다.
일부를 제외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경제민주화는 절대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시장경제 문제점의 보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민주주의의 기원이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에서 출발했고,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그룹 간에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반자본주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경제민주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에서 출발
경제민주주의의 개념이 가장 먼저 발달한 독일의 경우, 경제민주주의는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힐퍼딩(Rudolf Hilferding)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前) 단계로 정립한 '조직 자본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1928년 독일노총(ADGB)의 나프탈리(Fritz Naphtali)가 주도하여 사회주의로의 이행 프로그램으로 제안하고 체계화한 개념이다.
나프탈리는 경제민주주의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구체적, 현실적 길로 규정하면서, 사회주의와 경제민주주의는 최종목표로, 분리될 수 없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와 함께 Naphtali는 “경제민주주의의 개별적인 작은 진보는 동시에 미래의 거대한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주춧돌이다.”라고 개별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나프탈리의 경제민주주의에 관한 프로그램은 관철되지는 못하였으나, 최근까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 제시를 위한 이론적 원천으로 논의되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는 개별국가에서 최근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독일의 경우는 2차 대전 후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한 사회민주당(SPD)이 선거에 패배함으로써, 기독교민주당(CDU)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경제질서로 확립됐다. 이와 함께 기업 차원에서 노동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가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위하여 제도화됐다.
한국에서도 추진 중인 노동이사제는 독일을 비롯한 다수의 유럽국가에서 실시되고 있으나, 비효율성으로 인해 공동결정제 도입의 비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다수의 독일 기업이 감독 이사의 숫자가 적어 신속한 경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럽회사(SE)로 전환하고 있다.
한편, 경제민주주의를 주도했던 사회민주당은 2007년 함부르크강령 이후 경제민주주의를 사실상 폐기했고, 현재 극좌 노선의 좌파당(Die Linke)과 노조(DGB)만이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독일 외의 다른 나라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집단 농업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 구(舊) 유고 티토 정권의 '자주관리사회주의’, 체코의 오타 식(Ota Šik)이 주장한 '인본주의적 경제민주주의’, 프랑스에 1960-70년대 등장한 자주관리(autogestion), 마이드너(Meidner)가 1976년 스웨덴 노총(LO) 총회에서 제안하여 통과된 '임노동자기금’(wage-earner funds), 협동조합 형태인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차베스 정권의 '노동자 통제’와 '공동체 위원회’는 유고의 자주관리사회주의를 계승한 베네수엘라식 경제민주주의 모델이다.
최근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후 경제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 혹은 몰락한 소비에트 방식이 아니라 반(反)자본주의 길을 추구하는 다양한 시도를 총괄하는 사회민주주의 전략으로 일부 좌파 진영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경제민주주의는 사민주의 혹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통에서 출발한 것으로, 공동결정 혹은 통제의 사회화를 주된 과제로 설정하는 노선과 소유권 원칙 혹은 자본주의 소유관계의 철폐를 주장하는 노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 비판담론 → 권력담론화 ... 반시장적 규제 남발
한국에서 경제민주화의 대부라 자처하는 김종인은 이러한 경제민주주의의 역사적 근원을 한 번도 밝히지 않았고, 대립하는 개념인 사회적 시장경제와 경제민주주의가 동질적이라는 식으로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했다. 이와 같은 외국의 역사적 경험과 이론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도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이라 착각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987년 헌법의 제119조 제2항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조항이 입법자 간의 합의 없이 슬그머니 '알박기’로 삽입된 후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이론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대신에 경제민주화는 '비판 담론’에서 '권력 담론’화하여,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반시장적 규제를 남발하여 문어발식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한국 문제의 모든 문제를 재벌의 탐욕으로 환원하는 '재벌 만악(萬惡)론’으로 사회적 박탈감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정작 한국의 경제생태계를 교란하는 지대추구 세력이 먹튀 투기자본, 거대 공기업, 국가의 독점행정과 조직된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개혁을 주도하는 그룹은 기형적인 재벌의 독점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주주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사실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국내외의 투기자본과 동맹하여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경제를 망친 것은 미국의 사례에서 많이 나타난 바와 같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신규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행위규제, 이행강제금 3배 징벌배상제와 같은 다른 나라에는 드문 규제가 다수 존재한다. 이들 규제는 대기업 자체가 악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며, 글로벌시장에서 자국 기업을 역차별하기도 한다. 과다한 규제로 신흥 Unicorn 기업과 Decacorn 기업이 한국경제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례 없어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확대의 '기업규제 3법’은 기업의 경영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여 경제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례가 없고, 외부세력이 기업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어 국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기업을 투기자본의 먹이로 던져주는 악법이다. 또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외국의 경우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다.
각국에서는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과 같은 다양한 정책으로 자국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로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기보다,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垓子)를 메우고 성문을 열어주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 대규모의 신규투자를 담당해야 하는 대기업의 목을 조르면 미래의 먹거리를 누가 장만할 것인가?
또 하나 언급할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정반대로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주주자본주의를 표방했던 그룹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기존 경제민주화 논의의 질적 변화이다.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각종 기업규제를 통하여 재벌의 손발을 묶어 놓은 후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통제의 강화와 노동자에 의한 기업의 소유 혹은 소유의 사회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와 공공부문에서 출발한 노동이사제의 도입과 스튜어트십 코드를 통한 연금사회주의의 실현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로 가고 있다. 숙청되어야 할 것은 '색깔론’을 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니라 평등을 말하면서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한 어떤 동물들이다. 선진국에서 실시하지 않는 경제민주화와 과다한 기업규제가 시장경쟁 질서 확립을 위한 개입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에서 조속히 깨어나 경제 자유화를 통한 기업경쟁력을 강화하여 한국의 경제회복과 재도약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한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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