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개혁을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더불어 국정운영의 3대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교육을 서비스 산업으로 보고 국가 독점에서 탈피해 다양성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교육 난제들을 보수의 가치인 자유와 다양성에 기반해서 풀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새로 부임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여러 정책을 발표하고 '교육대전환’을 외치고 있지만 개혁다운 과제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수능의 고난도(소위, 킬러 문항) 문제를 제외키로 결정했지만, 수능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난이도를 변경해 수업생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다. 수능 문제가 공교육에서 배운 내용 중에서 출제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타당하지만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허둥지둥 수능 출제 방향과 난이도를 바꾸는 것은 오랜 기간 대비한 수업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고 선거 공약하고 킬러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법률개정안까지 발의한 야당이 이 문제를 윤 대통령 공격하는 정쟁의 대상을 삼아 꼴사납다. 수능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고난도 문항을 변별력을 이유로 출제하던 관행을 버리는 것은 사교육비 경감과 학교교육 정상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능 난이도 문제는 수능이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수능체제 등 근본적인 입시개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킬러문항 배제 넘어 대입 등 본질적 교육개혁 시급
윤석열 정부가 교육개혁이 절실한 사유로 '획일적 평등주의로 학생·학부모가 원하는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규제일변도 정책 등으로 디지털 시대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를 들고 있다. 교육 현장과 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있으며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대국민담화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1년이었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을 보이고 있지만 지난 정부의 비정상적인 정책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지체되고 있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은 한마디로 '혁신교육’으로 부를 수 있다. 혁신교육은 한국교육의 가장 큰 병폐를 점수로 줄 세우는 '경쟁 교육'의 탈피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경쟁교육을 끝내고 서로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협력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또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평등교육을 추구하고 힘든 공부는 피하며 아이들의 행복을 중시한다.
한국교총은 지난해 6·1지방선거 촌평에서 '이념 편향적인 민주, 혁신, 인권, 평등 개념과 정책기조는 전면 수정·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념 과잉, 정치 편향의 민주시민교육, 학교 간 차별과 학력 저하 조장하는 혁신학교, 책임은 없고 권리만 강조하는 학생인권조례, 기초학력 진단조차 일제고사로 폄훼하는 평가 터부 기조, 내로남불식 자사고·외고 폐지, 학교 자율 아닌 '교육감 자치’만 강화하는 무분별한 유·초·중등교육 시도 이양 등이 대표적 청산 과제라는 지적이다. 전적으로 바른 지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험·숙제·훈육 없는 3무(無) 혁신교육을 폐지하고 학력중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학교는 '공부하고(학력) 사람 만드는(인성)’ 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혁신교육은 '쉬운 교육’을 추구하여 시험 없고, 숙제 없고, 훈육 없는 3무 학교를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과 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3무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 학력중시 정책으로 전환이 이뤄지 않으면 학력 최상위국가에서 추락하여 인재 경쟁력이 뒷걸음칠 것이다.
공교육에만 의존하는 서민층 자녀들이 그 피해를 제일 크게 입는다. 시험·숙제·훈육 없는 3무 정책을 학력·인성 중시 정책으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부활하여 학력을 진단하고 맞춤형 지도가 필요하다. 다행히 교육부는 최근 모든 초3·중1학생의 학력평가를 권고하고 수업 잘하는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학력평가가 강화되고 학력향상 학교와 교사에 대한 포상이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우리 교육 발전을 막고 있는 낡은 교육제도를 혁파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요체라 할 수 있다. 국제적 규범(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보면 고교평준화, 정부 주도의 대입제도, 연공서열식 교원제도는 개혁하여야 할 대표적인 낡은 제도이다.
이들 제도는 우리나라가 공업화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학생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절에 형성된 제도이다, 제도가 시대 흐름에 정합성이 떨어짐을 역대 정부는 인식하면서도 이해 충돌과 교육이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피했던 과제이다. AI 디지털 혁명시대가 도래하고 학생수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을 맞아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위하여 기득권을 깨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첫째, 고교평준화를 끝내고 고교선택제의 도입이다.
고교평준화는 1970년대 연간 100만 명이 태어나 오전·오후반 2부제 수업을 하던 시절에 탄생하였다. 연간 25만 명이 태어나 개별화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적합한 제도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평준화가 명문고를 해체하여 고교 서열주의를 완화하고, 과열 입시경쟁을 줄이는 효과는 거뒀다. 그러나 학력하향 평준화, 사교육비 증가, 공교육의 무기력화 등 교육적 부작용이 더 크다. 단기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고교평준화가 50년 세월 장수함에 따라 공교육은 무경쟁, 무긴장의 무활성화(無活性化) 늪에 빠졌다. 학교 간 경쟁이 사라져 한국교육은 경쟁력 있는 자기혁신에 실패하였다.
따라서 어느 곳에 살든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고교선택제를 제안한다. 광역시별 공동학군(단일학군)으로 하여 학생은 거주지에 관계없이 일반고, 특목고, 직업계고를 지원하고, 학교장이 정한 기준에 따라 입학자를 결정토록 한다.
이는 현행 후기 일반계고 배정(교육감 전형)을 폐지하고 학교장 선발 전형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원자가 모집정원을 초과할 경우, 학생 선발기준은 이원화한다. 특목고(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자사고·외고, 독립형 사립고(자사고·외고·예술고 등)는 중학교 내신과 면접을 통해서 선발토록 한다. 이는 현재 과학고와 직업계고 선발방식이다. 공립고와 정부의존형 사립고는 지원자 중에서 추첨으로 합격자를 선발토록 하여 자칫 평준화 이전의 입시지옥과 과외 열풍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아울러 2025년에 폐지토록 예정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살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이뤄야 한다.
둘째, 대학입시 완전 자유화하고 국가는 진로형 수능으로 대학의 학생선발에 타당한 전형자료를 제공한다. 학생부 중심의 수시전형은 2024학년도에 약 79%에 이르렀다. 그러나 학생부 중심 전형은 공정성이나 학생·학부모들의 신뢰 얻는 데 실패하였다. 2022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고,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2024학년도에는 수능과 대입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
지난 정부의 획일적 평등주의 정책부터 바로 잡아야
수능은 한 종류의 시험뿐이고, 문제 형태가 선다형이다. 고난도 문항(킬러문항)이 변별력을 위해 출제되고 문제풀이식 공부로 고등사고력을 길러 주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여 타당한 인재 선발 도구로 거듭나야 한다. 수능Ⅰ과 수능Ⅱ의 진로선택형 수능이 최적의 방안이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응시하는 수능Ⅰ과 학생의 대학 전공에 맞춰 응시하는 수능Ⅱ로 분리한다. 수능Ⅰ(기초수학능력 검사)은 통합 교과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언어·수리 능력을 측정한다. 수능Ⅱ(교과목별 학업성취도 검사)는 대학이나 전공에서 요구하는 과목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한다. 서·논술형 문항으로 고등사고력을 측정한다. 입학경쟁이 치열한 상위권 대학만 수능Ⅱ를 요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학생 선발방식은 대학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대학입시 완전 자유화가 이뤄져야 한다. 역대 정부는 대입제도 개편의 명분으로 고교교육 정상화, 학생 학습부담 완화, 사교육비 부담경감을 제시하였으나 경쟁의 내용만 달리할 뿐 정책 성과는 미미하다.
따라서 대입제도의 주된 가치를 대입준비 과정에서 미래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워주고 대학 수학능력 적격자를 가리는 데 둬야 할 것이다. 타당하고 공정한 대입전형의 모색은 대학의 책임이다. 지성인의 집합체인 대학사회의 학생선발 능력과 양심을 불신하고 정치가·관료가 이끄는 국가권력에 의존하는 국가는 미래가 밝지 않다.
셋째, 교원 인사·보수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
교대·사대는 상위권 10% 이내 우수학생을 뽑아 예비교사로 키우고 있다. 중등 예비교사들은 1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교직에 들어오고 있다. 이처럼 유능한 인재를 교사로 확보하는 데는 성공하였다. 반면, 인사시스템은 우수인력이 교직을 기피하던 시절, 즉 연공과 형평을 중시하여 설계된 교원봉급 체계와 인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능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 체제가 약하고, 경쟁시스템 부재로 사교육에 뒤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준화 인사제도는 유능한 교사들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교원에 관한 보수, 평가, 전보 등 인사제도를 재설계하여야 한다. 교사의 급여체계를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여 교원성과급 논란을 끝내야 한다. 5년 주기로 근무학교를 바꾸는 순환전보제도 손질하고, 초·중등 연계 교사자격증을 만들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간의 칸막이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제대로 하여 우수교사는 포상하고 연속적 저(低)평가 교사는 교직에서 떠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교사 개혁을 주장하였으나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 사례를 소개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돈희 교육부 장관은 무능교사는 퇴출시켜야 한다는 발언으로 교총·전교조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곱씹어볼 내용이다. 발언의 골자는 교사들의 무사안일과 성과를 보상하지 않는 교원인사제도에 대한 반성이다.
“학교가 시중 학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학원강사들이 연구활동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반해 교사들은 도무지 연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교사들은 정년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 교사 역시 돌아가는 이득이 별로 없고 능력을 발휘할 여건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교사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능력 없는 교사는 자리를 뜨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요컨대, 교사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보수와 인사에 반영하는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 구축이 교직 사회를 살리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개혁은 교사들의 이해와 동의가 없으면 실천이 힘들고 갈등비용이 크므로 점진적이고 세심한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교육정책의 크고 작은 혁신 과제는 위에서 제시한 것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를 일거에 혁신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견해 차이로 의견수렴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하면서 국가경쟁력 제고를 통한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 기저에는 유능한 인재 양성이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당사자의 행동과 교직문화를 바꾸는 제도개혁에 치중해 인재강국의 기틀을 다져야 할 것이다.
김경회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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