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단어부터 잘못됐다

이영환 / 2023-03-27 / 조회: 3,320       시장경제신문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인 이데올로기(ideology)가 담겨 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마다 가지게 되는 가치관·종교관 등 생각·믿음의 체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언어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므로 같은 사안이라도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소득(income)’이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이다. 개인소득·국민소득, 저소득·고소득 등 사적인 대화뿐만 아니라 뉴스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소득은 생산요소인 노동이나 자본을 투입하여 그 대가로 받는 벌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소득이란 대체로 '일한 만큼 받는 대가’라는 믿음이 깔려 있고, 이념적으로 전혀 편향되지 않은 단어이다.


흔히, 고소득자와 부자를 같은 개념으로 보곤 한다. 그러나 고소득자는 소득이 많은 사람, 부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소득이 사람에게 들어오는 현금의 흐름이라면, 부()는 오랜 기간 쌓아놓은 재산이다. 회계에서 소득이 손익계산서라면, 부는 대차대조표이다. 부자가 노년층에 많은 이유는 오랜 기간 재산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작정 부자를 미워하면, 곤란하다. 부자 가운데 손쉽게 재산을 모은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부자를 미워한다면, 그들의 땀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결과를 부정하는 것으로 '공정’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핫이슈였고, 우리에게도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단어 중 하나가 기본소득(basic income)이다. 이 단어는 '기본’과 '소득’을 합친 단어이다. 기본소득은 소득·재산의 많고 적음, 근로 여부·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은 돈을 주는 것을 말한다. 소득이란 단어에는 '근로의 의미’가 있지만, 기본소득이란 단어에는 '근로의 의미’가 전혀 없다. 따라서 '기본소득’이란 단어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다.


기본소득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돈이 들어오니까 '소득’이 확실하지만, 지급하는 국가의 관점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주는 만큼 '복지’가 된다. 유사 이래 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가려 주는 선별적이지만, 기본소득은 보편적이다. 무상교육·무상급식 등은 재정에서 지급되므로 재정교육·재정급식 등으로 불러도 무방한 것처럼, 기본소득 역시 보편성을 지닌 '기본복지’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진보진영에서는 기본소득을 환영하는 반면,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보수진영에서는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기본소득이란 단어 자체가 '소득이 아니라 복지’이고, 기존 복지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으로 이념적 대립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축소하거나 되돌리기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본소득 역시 한번 시동이 걸리면, 그 파괴력은 너무나 크다.


기본소득은 최근에 급속히 부상한 이슈이지만,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유토피아’의 작가 토머스 모어는 그의 소설에서 범죄를 근절하는 방안은 사형이 아니라 소득의 보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 위정자나 국가의 책무라고 보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특정 수준 이하인 자는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소위 '부(負)의 소득세’를 주장한 바도 있다.


기본소득이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계기는 지난 2016년 6월 스위스의 국민투표였다. 결과는 불과 23.1%만 찬성하여 부결되었다. 핀란드는 기본소득은 복지를 추가하는 게 아니라 복지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복잡하게 얽혀 통제가 어려워진 기존의 복지제도를 재정비하고, 근로 의욕을 높이는 조치라면서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시험 운영(2,000명)한 결과, 실패로 끝을 맺었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이 아니라 기본권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이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실패자로 낙인찍는 효과가 있는 기초생활자금과 달리 기본소득은 시민권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기본권 측면에서 어떠한 대가도 요구해서는 안 되고, 검열도 필요 없다고 한다. 현재의 복지시스템은 매우 복잡하여 많은 행정비용이 투입되지만, 기본소득은 투명하고 간명하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AI·로봇 등의 도입 등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적 충격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들의 구제를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기본소득이 자유와 정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에게 억압과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 빈곤을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하는 미국 등에서 이러한 시각이 강하다.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공헌해야 유지될 수 있고,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꾸려가는 것은 책임의 실천이자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소득 자체를 정부가 책임지게 되면, 근로를 통한 소득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자유의 짝은 책임이고,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은 자유도 포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사회주의 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빵을 나눠 먹으려면 먼저 빵을 구워야 한다. 아무리 커다란 빵도 나눠 먹다 보면, 언젠가는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되며, 사회시스템도 그렇게 무너질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막대한 재원의 마련 문제와 공평이라는 가치의 위반 문제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리에게도 또다시 기본소득 논의가 재감화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본소득은 사이비 대안의 성격이 강하다. 사이비 대안이란 문제해결을 위한 해결책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을 때를 지칭한다. '풍요 속의 빈곤 해결, 불평등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됐을 때, 자칫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본소득은 공평의 가치에도 어긋난다. 공평과 관련하여 유명한 그림이 있다. 단신인 어린이, 중간인 청소년, 장신인 어른이 담장 너머로 야구경기를 보는 그림이 있다. 의자가 없을 때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야구경기를 볼 수 없고, 장신인 어른만이 볼 수 있다. 이때 의자를 준다면 어떤 높이로 주어야 할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신장에 상관없이 같은 높이로 의자를 주는 방식이다. 단신인 어린이는 여전히 담장 너머로 야구를 볼 수 없고, 장신인 어른은 필요도 없는 의자를 갖게 된다. 의자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중간인 청소년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신인 어린이에게는 높은 의자를, 중간인 청소년에게는 보통 의자를 주고, 장신인 어른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3명 모두 같은 높이가 되어 야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사람마다 각자에게 적합한 맞춤형 의자를 주니, 3명의 만족도가 모두 높아지는 셈이다.


공평(equity)은 '공정한 평등’을 의미하고, 복지에서는 선별복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금을 부과할 때 고소득자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낮은 세율이나 면세를 적용하는 누진세율이 정착된 것도 바로 공평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이다. 선별복지나 누진세는 이미 현대 사회에서 정착된 제도로 기본소득은 여기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영환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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