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돈 풀어 생긴 불황에서 벗어나려면

김영용 / 2022-09-29 / 조회: 4,223       미래한국

추경호팀에 바란다 Ⅰ


주요 각국은 지금 짧은 기간에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미국의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월 9.1%, 7월 8.5%, 8월 8.3%로 추세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이나 여전히 아주 높은 수준이다. 한국도 6월 5.7%, 7월 6.3%, 8월 5.7%로 상승세가 다소 꺾이는 모습이나 역시 아주 높은 편이다.


작금의 스태그플레이션은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풀린 돈과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막대하게 풀린 돈 때문에 경제 구조가 크게 망가져 생긴 현상이다.


미국은 자가(自家) 소유 비율을 높이기 위해 2000년부터 돈을 풀어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양적완화로 또다시 막대한 양의 돈을 풀었다. 세계 경제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주요 각국도 그랬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작금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돈을 풀어 만든 불황 국면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빚은 공급 애로가 한 몫 더한 것은 사실이나,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 돈 풀기를 중단하고 거둬들이는 것은 적절한 수순이다. 다만 우스꽝스러운 것은 중앙은행이 금융기관들과 함께 스스로 초래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빅스텝 또는 자이언트스텝 운운하며 다시 해결 주체로 나선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앞으로도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가며 급격히 틀어대는 샤워실의 바보처럼 돈 풀기와 조이기를 반복할 것이다. 중앙은행이 주로 의존하는 주류 경제학에 이자율 이론과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생산구조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풀려 경제가 망가지는 과정을 금융위기와 코로나19의 경우로 나눠 살펴보자. 금융위기의 경우처럼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가들에게 대출되면, 그들은 사람들이 오늘의 소비를 줄이고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을 늘린 것으로 착각하고, 미래의 소비 증가에 대비해 자본재 산업에 투자를 늘린다.


이자율이 낮아져 이전에 하지 못했던 투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투자는, 소비하고 남은 생산물로 뒷받침된 저축이 아니라, 풀린 돈으로 이뤄진 잘못된 투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축으로 확보된 철강 등의 자재와 장비로는 20층 건물밖에 지을 수 없는데, 풀린 돈을 손에 쥔 기업가들은 마치 50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재와 장비가 확보된 것으로 착각하여 공사에 착수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20층 건물을 원하여 그 만큼의 자재와 장비를 저축했을 뿐이므로 50층 건물은 완성될 수 없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잘못된 투자라는 것이다.


늘어난 잘못된 투자로 자본재 산업은 당장 활기를 띠고, 투자된 돈이 노동자의 임금과 토지 소유자의 임대료 형태로 소비자들의 소득으로 돌아옴에 따라 소비도 증가하여 경제는 붐(boom) 국면에 이른다.


양적 완화 정책이 경제에 폐해


이와 같이 붐 기간에는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증가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풀린 돈으로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이후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중앙은행이 돈 풀기를 중단하고 금리를 올리면 잘못된 투자로 드러난 50층 건물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소득도 감소하면서 붐 기간에 생긴 거품이 터진다(bust).

요약하면,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소비구조(20층 건물)와 생산자들의 생산구조(50층 건물)가 어긋나 경제가 녹아내리는(melt down) 현상이 곧 금융위기다.


1929년 대공황과 1991년 일본과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그런 것들이다. 한편 코로나19 경우처럼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소비자들에게 들어가면 생산요소들이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하고 자본재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 층층이 분업화된 생산구조가 단순화됨으로써 생산이 줄어든다.


즉 자본재 산업이 망가져 일정한 시간에 생산되는 소비재 양이 줄어든다. 자본재에는 단시간에 많은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따라서 이 경우에는 소비자 신용 증가로 늘어난 소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끔 생산구조가 망가지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20층 건물을 짓는 데 이전보다 한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지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지금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에 의해 막대하게 풀린 돈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비재를 원하는 시기에 생산할 수 있는 생산구조를 망가뜨려 초래한 불황 현상이다. 그래서 불황은 망가진 자본재 산업에서 시작된다.


돈은 풀리고 생산구조가 망가졌으니 생산은 줄고 물가는 오른다. 물론 돈 풀기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의 정도는 기술진보 등의 다른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단지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그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흔히 불황을 극복해야 할 악(惡)으로 여기지만 불황은 이로운 기능을 한다. 불황은 현재의 망가진 상태로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니 시장 조정을 통해 고치라는 신호이며, 소비구조와 생산구조가 톱니바퀴처럼 다시 맞물리도록 경제가 회복되는 기간이다.


잘못된 투자가 청산되고, 돈이 풀려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써버린 자본이 복구되는 기간이다. 그 동안의 소득 감소와 실업 증가 등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저금리 정책으로 경제에 쌓인 돈 쓰레기(?)를 치우는 일의 시작은 금리를 올려 돈 풀기를 멈추고 거둬들이는 것이다. 그 효과를 제대로 얻으려면 불황 기간에 이뤄지는 시장의 조정 과정을 통해 생산구조가 정비되어 경제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것을 여타 정부 정책으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


돈을 더 푸는 정책, 자생 능력이 없는 기업에 대출을 늘리는 정책, 떨어지는 임금과 물가를 떠받치는 정책, 똑똑한 소비 운운하며 소비 증가와 저축 감소를 조장하는 정책, 세금을 올리고 재정 투입을 늘리는 정책, 각종 보조금 지급 정책 등은 모두 시장 조정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강조할 사항은, 정부가 경제 성장이나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통화량을 크게 늘리는 정책은 반드시 불황을 초래한다는 것과, 불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기간에 이뤄지는 시장 조정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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