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위원회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황수연 / 2006-08-29 / 조회: 5,015

1. 정부 위원회 현황

정부 위원회는 흔히 자문위원회, 행정위원회, 그리고 독립규제위원회로 분류된다. 자문위원회는 위원회에의 회부가 기관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도 하지만 법령으로 반드시 심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있다. 행정위원회는 합의제의 성격을 띤 행정기관으로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독립규제위원회는 산업의 발달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독립성과 합의성을 지닌다. 이것은 행정위원회 안에 포함되어 분류되기도 한다.

행자부 자료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위원회의 총수는 2005년 말 현재 381개인데, 이 중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25개이며,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는 47개이다. 중앙 정부의 위원회들 중, 규제위원회를 포함한 행정위원회는 중앙인사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39개, 자문위원회는 동북아시대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342개이다. 자문위원회가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2005년 말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들은 500여명, 예산은 743억원이었다. 중앙 정부 전체로는 위원은 3,100명, 예산은 1,646억원이었다.

지방 정부도 많은 위원회들을 가지고 있다. 동아일보의 자료(2006. 4. 8.)에 따르면 전국 16개 광역시, 도에는 위원회가 1,391개 있고 총 위원 숫자는 중복 위촉을 포함하여 2만 3,293명이다. 이들 위원회를 운영하는 예산은 부산시의 경우 3억 8,000만원 등이었다. 234개의 기초 자치단체가 따로 50-100개씩 위원회를 운영한다고 보면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의 위원회 숫자는 전부 합쳐 대략 2만개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위원회 중에는 만들어 놓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위원회도 많다. 예를 들어,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381개 정부 위원회 중 32개는 2002년과 2003년 연속 단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또 전체 위원회 중 20% 가량은 지난 해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상기 동아일보의 자료에 의하면, 광역 자치단체의 1,391개 위원회 중 2005년 1년간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위원회가 217개로서, 평균적으로 6개 중 1개는 간판만 걸어 놓고 개점 휴업한 셈이다. 어떤 광역 자치단체의 경우는 전체 위원회들 가운데 40%가 쉬고 있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운영하지 않은 위원회도 있었다.

위원회 위원들은 교수, 시민 단체 간부, 퇴직 공무원 등인데, 중앙 정부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거나 코드가 같다는 지식인들이, 지방 정부의 경우에는 대체로 단체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중심이다. 특히 지방 정부의 위원회의 경우 한 사람이 중복해서 여러 위원회의 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시민 단체 간부는 5개의 위원회의 자문위원이고, 어느 대학 교수는 10개의 위원회의 자문위원이라는 식이다.

특히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중심으로 위원회의 월권이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행담도 개발 사업에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행담도개발회사의 해외 채권 발행을 위해 정부 지원 의향서를 위원장 명의로 발행했고, 사업 협력 양해 각서(MOU)도 체결했다. 위원회의 정책 산물의 질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위헌 결정을 받은 수도 이전 정책, 국민의 반발을 받은 부동산 대책도 대통령 자문위원회에서 작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사정위원회와 16개에 이르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예에서라든가 코드 인사라는 말에서 보듯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안을 가진 위원회들도 많다.

2. 정부 위원회 제도의 문제점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여,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에 비해 위원회 수와 예산이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고 변호하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위원회 공화국이 맞다."고 하였다. 확실히 노무현 정부는 수많은 위원회를 가지고 있고 위원회에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물론 위원회는 과거 정부에도 있었지만, 그 증가와 활용의 정도가 현 정부 들어 뚜렷해졌다. 역시 위원회를 많이 이용한 김대중 정부와 비교해 보더라도,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말에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18개였으나 노무현 정부의 2005년 말에는 7개가 더 늘어났고,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도 34개에서 13개 더 늘어났다. 또한, 기존 부처의 권한을 침해하여 옥상옥, 무소불위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국정 운영에 위원회를 크게 활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이 정부가 기본적으로 "큰 정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큰 정부"의 이념적 토대 위에서 정부가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가리지 않고 손대다 보니 기존 행정 조직 체계가 불편하고 그래서 많은 위원회들을 만들어 이용하게 되었다. 소수파 정부로서는 위원회는 또한 정부를 지지한 혹은 지지할 세력들을 국정에 광범위하게 참여시킴으로써 지지를 확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정부의 결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인상을 지니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위원회를 널리 활용하는 태도는 지방 정부에도 영향을 미쳐 지방 정부도 실질적 운영은 여하튼간에 많은 위원회들을 가지게 되었다.

단독제는 결정을 신속하게 하고, 방침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책임을 분명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위원회 제도는 경험과 전문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행정에 긴요한 안정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며, 신중한 심의와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위원회는 또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사람들을 참여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만족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이와 같은 장점을 지닌 위원회는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사기업, 교회, 학교, 노조 등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이용을 잘못하면 폐단이 크며, 위원회 제도 자체도 단점들을 지니고 있다.

먼저, 구성 과정의 비민주성과 비효율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위원들이 위원회 본래의 취지에 맞춰 대표성이나 전문성에 따라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연고나 지명도, 그리고 특정 이념에 따라 편파적으로 임명되면 이념 프로, 행정 아마추어 현상이 발생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의 운동권과 시민운동가, 좌파 지식인 중심으로 위원회 활동이 이루어져 왔는데, 이것은 대표성과 전문성보다 대통령과 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들 중심으로 위원들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말로는 참여정부라고 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의 시민 참여는 허울뿐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되고 그 결과 정책 산물은 부실하게 된다.

위원회 제도 자체가 지닌 본질적인 문제점으로서 위원회는 곤란한 문제에 관해 기관장이 결정을 지연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기관장은 정책의 결과가 잘못되어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위원회의 책임이라고 미룰 수 있기 때문에 정책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경우나 자신이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위원회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에 골치 아픈 사안들을 던져 놓고 결정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특히 대통령이 위원회를 많이 이용하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참여정부에 위원회가 많은 것과 참여정부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고 국민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 사이에는 무언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관장이 위원회에 책임을 미룰 수 있는가 하면, 위원회의 위원들도 상호간에 무임승차할 수 있고, 그 결과 위원회의 결정 내용이 부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서 국가에 큰 위험을 가져오는 결정이 쉽게 내려질 수도 있다. 즉 위원회 구조상 위원회는 위원들로 하여금 책임을 지지 않고 큰 위험을 감수하도록 허용한다. 비효율적인 결정에 대한 코스트가 직접 돌아오지 않으므로 비용-비효과적인 결정이 입안, 실행될 수 있으며, 어느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없어서 위험한 결정이 나올 수 있다. 대통령 자문위원회에서 나온 수도 이전 정책과 부동산 정책이 그런 예들일 것이다.

물론 위원회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들 중 좋은 아이디어를 가려내는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위원회는 빈약한 아이디어들을 과정 초기에 제거하여 그것들에 불필요한 시간을 쏟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점에서 위원회 제도는 단독제보다 낫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정부 위원회가 굳이 자체 생산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독제를 사용하건 위원회 제도를 이용하건 혁신(innovation)은 대부분 민간에서 나온다. 그리고 똑 같은 위원회라도 기업에서의 위원회는 아이디어들을 내고 거르는 훌륭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정부 위원회는 경쟁적 압력이 결여되어 있어서 이 기능이 제대로 잘 발휘되지 않는다.

흔히 위원회는 집단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겉모습과는 다르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 위원회를 만들어 봐야 큰 효과가 없고, 특히 구속력 있는 결정권을 위원회에 부여하는 것은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견해 일치가 없는 경우 구성원들의 견해를 조정하기 위해 위원회를 이용하는데, 만약 구성원들의 견해의 조정으로 끝나면 위원회는 괜찮은 기능을 수행할 것이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위원회가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위원회가 사용하는 민주주의적 방식의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민주주의는 위원회 안의 사람들이 상당한 의견 일치가 있는 경우에는 결정을 내리는 훌륭한 방식이지만, 일반적인 합의가 없을 때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향이 있다.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과 선호가 차이가 많이 나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과반수로 처리할 필요성이 증대되지만 그렇게 해서 나타나는 결과는 많은 구성원들에게 매우 불만족스럽다. 따라서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한 것을 위원회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다. 시장에서도 경제 주체들이 많은 사안들에 관해 견해가 갈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이익이 같은 곳에서만 협조한다. 시장 결정은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의 토대를 찾고 분쟁과 갈등을 줄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의 민주주의적 결정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분쟁과 갈등을 조장한다. 따라서 이해가 대립되는 문제를 개인과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다만 모든 사람들에게 편익이 돌아가는 그런 사안만 수행한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3. 정부 위원회의 축소를 위한 정책 제안

위원회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방향은 불필요한 위원회를 폐지하여 인력과 예산을 줄이는 것이다. 많은 위원회가 개점휴업 상태라는 것은 많은 위원회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열리고 있는 위원회도 필요성이 없는 것은 폐지, 축소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여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게 되면 규제위원회가 폐지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규제위원회의 일이 줄어들어, 인력과 예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교육을 규제, 간섭하는 일을 줄이게 되면 교육 관련 갖가지 위원회는 없어지거나 기능이 대폭 줄어들어 그로 인한 인력과 예산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작은 정부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둘째, 사회 집단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것은 민간과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혹 불가피하게 위원회가 다루더라도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위원회로서가 아니라, 조정을 위한 협의체로만 운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예를 들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나 노사정위원회 등은 폐지되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는 시장에 맡길 것이며, 정부가 처리해야 하는 경우에도 이익 요구에 따라 처리하려 들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서 법의 지배를 실현해야 한다. 노조의 불법과 폭력을 해결하는 길은 평화시위정착 민관 공동위원회가 추진하는 "사회협약"이 아니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확실한 적용이다. 이것이 문제도 해결하면서 국민의 아까운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셋째, 자문위원회를 대폭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혁신은 주로 민간 혹은 비정부 부문에서 이루어지므로 정부 위원회에서 아이디어를 자체 생산하기보다는 민간 혹은 국책 연구소, 대학, 기업 등에 외부 위탁(outsourcing)하여 연구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더 비용-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하면 많은 돈을 써 가며 연구보다 덜 효율적인, 시간을 소모하는 토론이 필요 없을 것이고, 위신을 차리기 위해 많은 정력을 소모하는 상호 언쟁이 없을 것이며,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의 정보에 무임승차하려는 시도도 없을 것이다. 아이디어 개발, 정리, 자문을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에 외부 위탁을 하게 되면 그만큼 정부의 위원회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위원회를 운영함으로써 드는 인력과 예산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위원회를 설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위원회 구성의 비민주성과 비효율성을 억제하기 위해 의회는 위원회의 인력과 업무, 예산에 대해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즉 행정조직 법정주의에 따라 위원회 남설이 방지돼야 하고, 위원들 혹은 공무원들의 수는 정부조직법 등에 의해 억제돼야 한다. 대통령령으로 설립되는 자문위원회의 신설도 그 인력, 업무, 예산이 의회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불필요한 자문위원회가 의회의 권고에 의해 폐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칫 국민 대표 기관이 감시와 통제를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지만, 의회는 모름지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대표들과 공무원들은 국민의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 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황수연(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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