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사 해체, 유엔사 보강으로 대처해야

박용옥 / 2007-03-22 / 조회: 56,672
I. 서언: ‘대응·맞대응’ 식 정책추진 안 된다

수년전부터 용산 미군기지 주변에는 우리 전투경찰이 상주하고 있다. 그 곳은 한반도 유사시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두 동맹국의 합의에 의해 설치된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가 위치하는 곳이다. 그 연합사령부의 안전이 우리 전투경찰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한국인의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현실이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한 단면을 말해준다.


이런 기이한 현실 속에서, 작년 2월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으로 부임한 버웰 벨 장군은 취임사를 통해 “한미동맹이 굳건히 단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한미동맹은 공고하며 전쟁수행능력을 보장하겠다”라면서 그의 한미동맹에 대한 확신과 함께 한미연합사의 전쟁수행능력 보장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벨 사령관의 이러한 확신과 의지는 노무현정부의 끈질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주장 등 한미연합방위체제 해체 노력으로 인해 그 의미를 잃게 됐고, 작년 하반기부터 미 부시정부는 한국정부의 주장과 요구에 맞대응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 9월 14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이 부시대통령에게 전작권 이양문제를 제기하자 부시대통령은 이에 주저 없이 동의했다. 즉, 한미연합사 해체 원칙에 미국도 동의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측이 전작권 이양시기를 2012년으로 제의하자 미국 측은 오히려 2009년으로 3년을 앞당기자는 입장을 취했고, 노대통령은 한 술 더 떠서 “지금이라도 한국군 단독으로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벨 사령관도 취임 일성으로 표명한 연합사의 ‘전쟁수행능력’을 보장하겠다던 말을 거둬들이고 그 대신 연합사의 ‘조기해체’를 주장하는 입장이 됐다


결국 작년 10월 20일 워싱턴에서 있은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윤광웅 장관과 도날드 럼스펠드 장관은 2009년과 2012년 사이 상호 합의하는 시점에서 CFC를 해체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한· 미 양측 입장을 적당히 애매하게 얼버무린 합의였다. 이 합의는 금년 2월 23일(현지시각) 양국의 신임 국방장관들인 김장수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장관이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국방장관회의에서 2012년 4월 17일로 결정됐다.


최근 한·미 양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한미군사동맹체제의 뿌리를 흔들어대는 중대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런 ‘대응과 맞대응’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작년 11월 하노이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만 폐기한다면 북한과 함께 6. 25전쟁 종전을 공동으로 선언하겠다”고 할 정도로 노무현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앞지르는가 하면, 노 대통령은 지난 달 15일(현지시각) 이태리 방문 중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 달라는 대로 다 줘도 남는 장사”라고 할 정도로 한반도 기류가 급변하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금 연합사 해체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II. 연합사해체, 이제는 관리의 문제다.


연합사해체 날짜가 한·미 정부 간 공식합의에 의해 확정된 이상,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전작권 이양으로 인한 연합사해체 과정에서나 해체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우리 국방태세 상의 문제점이나 위기사태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경각심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대미협상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한미군사동맹관계가 전작권의 이양 합의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마치 감정이 개입된 ‘대응과 맞대응’의 양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한미 양국은 동맹국으로서 공동이익의 증진과 공동목표의 달성을 위한 합리적인 정책판단과 주고받는 식의 상호협력으로 동맹관계를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벨 사령관이 이달 7일(현지시각) 미 의회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피력한 한반도정세와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 대한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III. ‘국방개혁 2020’ 관련 벨 사령관의 인식과 정책적 함의


벨 사령관은 우선 북핵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북한은 2009년 말까지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북한군의 대남군사태세에 하등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는 한국군의 ‘국방개혁 2020’, 특히 대폭적인 ‘병력감축’ 및 ‘복무기간’ 단축계획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은 벨 사령관의 이 ‘경고성의 우려’를 단순히 ‘우려성의 관심’ 정도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첫째, 북한의 핵무장 가능성과 관련하여 벨 사령관은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계획'(PSI) 참여와 미국 시스템과 상호운용될 수 있는 한국군 자체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작년 10월 SCM에서 한국이 강조한 미국의 ‘확장된 억제’(extended deterrence) 제공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다. 북핵위협에 대해 한국이 자기 몫을 다 하지 못할 때, 미국의 핵우산 제공에도 한계가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둘째, ‘국방개혁 2020’과 관련하여 벨 사령관이 우려를 표명한 ‘병력감축’과 ‘복무기간단축’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의 전작권 단독행사로 인한 한미 ‘공동방위’ 체제에서는 기존의 ‘연합방위’ 체제에 비해 한국 지상군의 능력과 역할을 보다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2007-2011 국방중기계획’ 상의 전력 확보를 전제로 2014년까지 대규모 병력감축과 군복무기간 단축을 추진한다면, 이는 117만 북한군의 위협에 대처하는 계획이라 할 수 없고, 또 주한미지상군의 지속 주둔을 요구할 명분도 잃게 될 것이다.


셋째, ‘2007-2011 국방중기계획’도 미국이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는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국방중기계획’에 151조원을 투입하여 정보감시정찰체계, 지휘통제통신체계, 정밀타격체계 등 첨단무기체계를 확보하면 미국의 핵우산 보장과 함께 대북억제에 별 문제가 없고 추가적인 국방비 부담도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이것은 일방적인 기대에 불과하다. 미국의 ‘확장된 억제전력’에 의한 핵우산 보장이나 ‘보완전력’도 무조건 제공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원은 한국이 ‘한국 몫’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지원이지, 무조건 일방적인 지원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벨 사령관이 지난 7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군의 성공적인 ‘국방개혁 2020’을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법률적, 재정적 지원 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국 간 협의과정을 통한 긴밀한 협조가 필요다다”고 한 것은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 없이는 한국군의 국방중기계획도, 전작권의 단독행사도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월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현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강화 및 전시조직의 구성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한미연합사 해체 이후 한미공동방위체제 하에서의 유사시 대비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매우 의미있는 정책구상으로 생각된다. 기능이 강화된 유엔사는 연합사 해체 이후 평상시 정전업무의 정상적 수행과 한반도 유사시 미군, 다국적군 또는 유엔군의 투입 등 효과적 지원통로가 될 수도 있고, 또 필요시에는 한국군, 미군, 다른 외부 증원군 사이의 효과적인 통합작전을 위해 지휘체계의 단일화도 신속하게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보유로 핵무기지대화한 한반도에서 앞으로 군사위기사태 발생 시, 한국군은 전작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핵우산, 증원전력 전개 등 미국의 보호와 지원에 더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각각 독립적인 작전사령부를 갖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효과적인 한국방어를 위해서는 결국 두 작전사령부를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제도적 장치로서 현 유엔사의 기능강화 및 전시조직 구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III. 결언 및 정책제언


지금 대한민국은 반세기 전 6.25전쟁 이래 가장 위험한 안보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군사상황은 현저하게 악화 된 반면,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사 해체에 합의하는 등 대북억제태세를 그 뿌리부터 흔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고, 미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점점 유화(宥和) 자세로 선회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지금 ‘한미연합사 해체’, ‘북한 핵무장’, ‘6. 25전쟁 종결선언’ 등 한반도 안보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군사·안보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안보위기의 극복을 위한 최대의 관건은 확고한 한미동맹관계의 회복이며, 이를 위해서는 한미 간의 상호신뢰와 동맹의지의 재확인이 필요하다. 연합사 해체과정에서, 또는 해체 후 야기될 수 있는 군사대비태세 상의 문제점과 그 보완대책도 모두 두 동맹 간의 상호신뢰와 동맹의지의 발현으로 평가되고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의 현 정부간에는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2008년 또는 2009년 이후 들어서게 될 한미 양국의 새 정부들은 연합사해체에 따른 문제점 해소, 유엔사 기능 강화 등 모든 관련 문제들을 포함하여 한미동맹관계 전반에 걸친 미래지향의 동맹발전 방안을 적극 강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 정부와 군당국은 우선 연합사해체에 따른 문제점 해소·보완을 위해 벨 사령관이 주장하는 유엔사의 기능강화 및 전시조직 구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 문제에 관해 미국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협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시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용의 표명과 관련하여, 북핵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유엔사 폐기보다는 그 기능을 강화·유지하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래지향의 성숙된 한미동맹 발전을 위해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안보공동선언’이 필요하다. 이 신안보공동선언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의 혈맹관계와 그 의미를 재확인하고, 앞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및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한 동반자로서의 협력의지를 다짐함으로써, 지난 수 년 간에 걸쳐 현저하게 손상된 상호신뢰관계와 동맹의지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내년에 들어설 한국의 차기정부가 이런 상황인식을 갖는다면, 무엇보다 앞으로 미국과의 공동방위 파트너로서의 한국이 해야 할 몫은 다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연합방위체제’에서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부담하던 것도 앞으로 ‘공동방위체제’ 하에서는 한국이 부담하거나 또는 양국이 공동으로 분담하는 관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이 공동방위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면서, 한국에서는 반미감정을, 그리고 미국에서는 반한감정을 해소하는 첩경이기도 할 것이다.


박용옥 / 한림국제대학원 대학교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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