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수요자에게 봉사하도록 변모시켜야

김이석 / 2021-09-03 / 조회: 10,941

공기업은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업’으로 정의되지만, 수요자들에게 봉사하기보다는 거기에 소속된 이들의 안정적 지위와 소득 확보에 노력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외면당한 결과 적자가 쌓이면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반 기업들은 곧바로 퇴출 압력에 직면한다. 그러나 공기업의 적자는 정부의 재정에서 보전되기 때문에 공기업은 그런 압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공기업은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잘 봉사해서 이들의 선택을 받으려는 유인이 없다. 이런 이유로 ‘철밥통’이란 비판을 받지만, 적자를 별로 신경쓰지 않고 더 많은 예산을 자본투자보다는 인력에 쓰려는 공기업의 경향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공기업을 소비자들에게 봉사하는 기업으로 만들 가장 유력한 방안은 공기업에서 ‘공’을 떼고 ‘기업’으로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하는 공기업 민영화다. 이런 민영화가 각국에서 추진되었다. 이런 민영화가 가능한 것은, ‘경찰’과 같은 정부 조직은 시장에서 서비스를 돈을 받고 팔 수 없지만 ‘철도’를 비롯한 공기업은 시장에서 돈을 받고 서비스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기업은 ‘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찰의 치안 서비스는 특정인에게서 돈을 받고 그에게 제공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이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 이런 무임승차자 배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공공재로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철도 서비스는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을 태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부가 공공재로 공급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영국항공의 사례처럼 민영화를 통해 적자누적이 사라지고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민영화’가 쉽게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직업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노동자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은 파업을 비롯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를 막으려고 한다. 그 공기업의 적자를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낸 세금으로 메워주던 국민들조차도 민영화를 하게 된 이후 비싼 요금을 물게 될 것을 우려해서 민영화에 반대할 수도 있다. 이처럼 민영화에 이해가 걸린 다양한 집단들이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가 특별히 중요하다.


다행히 이런 문제에 대해 ‘공공선택론’적인 관점에서 정치시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찬성과 반대를 충분히 감안함으로써 민영화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다양한 방안들에 대해 영국의 경험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미시정치》와 같은 지침서가 나와 있다. 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공기업을 개혁하기 위해 민영화를 하겠다면 무엇보다 이런 지침서가 주는 교훈을 잘 따라야 할 것이다.


공기업 개혁 팀을 구성, 성공한 하나의 사례부터 만들어내자


앞의 논의에서 보듯이 민영화라는 말이 나오면 공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로서는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조는 이런 두려움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대운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예상하지 못한 채 추진되는 공기업 개혁은 실패하기 쉽고 실제로 그랬다. 따라서 공기업을 개혁하겠다면 무엇보다 이런 모든 과정을 미리 예상하면서 지속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공기업 개혁을 가능하게 만들 법적,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전념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꾸준히 내놓을 추진체가 필요하다. 기존의 유명무실했던 기구가 이런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확실한 추진체를 구성하고 예산과 조직을 지원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라면, 차라리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칫 불필요하게 공기업 종사자들에게 불안감만 안기고 평지풍파만 일으킨 채 실제로는 공기업 개혁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기업 민영화도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며, 적절한 케이스를 잘 선별해서 ‘성공한 하나의 사례’부터 잘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의 민주화와 적극적인 홍보 등 환경 조성


공기업의 경우에도 노조 지도자들은 노조원들에 비해 투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노조원들이 동의할만한 ‘공기업 개혁’ 혹은 ‘민영화’방안을 제시하더라도 노조 지도자들은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의 민주적인 운영을 확보하고, 반민주적 운영에 의한 파업이나 자금 사용 등은 무효화하거나 처벌하는 법률 등을 갖추는 것도 민영화 등 공기업 개혁을 위한 하나의 환경 조성이 될 것이다. 


공기업 개혁을 위한 환경의 조성 가운데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국민과 소비자들의 동의이다. 비록 노조가 민영화로 인해 해당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가고 이 서비스에 수반된 위험을 더 크게 만든다고 주장하더라도, 국민과 소비자들이 그런 주장보다는 민영화에 따른 경쟁압력의 확보로 인한 혜택이 더 크다고 믿는다면, 민영화에 대한 든든한 응원군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의 주장에 맞서서 실제 문제가 무엇이고 소비자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자세히 알릴 홍보조직과 예산이 필요하다.


개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민영화’방안 구상


민영화는 공기업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의 가격에 누구에게 파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사실 민영화를 한답시고 공기업을 ‘헐값에’ 유력 정치인과 깊은 관계인 특정인에게 매각한다면 당장 ‘특혜’ 논란에 휩싸이고 더 나아가 부패 스캔들로 비화할 것이다. 이런 논란이 발생하고 국민이 이를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민영화가 성공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시키면서 동시에 이런 특혜논란을 피해나갈 ‘공기업 매각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민영화는 매각방식, 매입대상, 매입주체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개별적 경우에 맞게 다르게 디자인될 수 있다. 다른 기업에 매각될 수도 있고, 공기업의 노동자-경영자 컨소시엄에 넘길 수도 있다. 그 공기업 소속 노동자들에게 주식매입 기회를 줄 수도 있고 정부가 황금주를 가지기도 한다. 전량매각 부분매각 후 분할매각 등 매각방식도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자-경영자 컨소시엄에 영국항공을 매각했을 때 내부사정에 정통한 경영자-노동자들이 스스로 과잉인력을 명예퇴직 등의 방법으로 정리함으로써 나중에 증시에 상장되었을 때 그 기업의 가치가 크게 상승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유연한 ‘미시-점증주의’적 접근: 민영화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공기업 개혁은 민영화를 통해 아예 시장에서 경쟁하는 ‘주인이 존재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자 근본적 처방일 것이다. 사실 한국전력과 같은 경우,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확실한 주인이 없다보니 실제로 정부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여러 문제가 많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주인을 만들어주는 민영화가 최선이겠지만, 우리는 이런 근본적 민영화를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강제 건강보험의 경우, 한국의 건강보험이 세계최고라는 인식과 함께 이런 보험이 필요하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매우 강고하다. 이런 인식의 진실과는 별개로 상황이 이렇다면 건강보험의 민영화를 시도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런 경우 의료보험 서비스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더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접근방식이 될 것이다. 이런‘미시-점증주의’(Micro-incrementalism)도 공기업 혹은 공공부문 개혁의 방법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도 지나치게 강경일변도의 노조가 영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의 개혁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확실한 준비와 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채 그냥 밀어붙였다가 평지풍파만 일으켰을 뿐 성공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비해 실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확실한 전략을 마련하고 현실적인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정치적 반발과 같은 주어진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을 취한 결과 ‘공기업의 민영화’라는 반발이 거센 과제조차도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다음 정부가 공기업의 근본적 문제점을 인식하고서 이를 개혁하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무엇보다 확실한 전략과 현실적인 방법들을 동원해서 하나의 사례부터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한국경제가 발전하고 그 속에서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더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매슨 피리, 『미시정치, 성공하는 정책 만들기』, 북앤피플, 2012.12.

김이석, 『번영은 자유주의로부터』, 나남신서 1691, 나남출판사, 2013. 6.

조성봉, “이명박 정부 공기업 선진화 정책의 평가와 향후 과제,”『규제연구』 제20권 제2호 2011년 12월.

최승노, 『작은 정부가 답이다』, 프리이코노미 스쿨, 2014. 10.


김이석 /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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