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잉입법의 문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양적인 문제와 질적인 문제가 그것이다. 양적인 문제란 발의되는 법안의 숫자가 폭증함으로써 미처 그것들의 내용을 제대로 심사하고 평가할 시간조차 없이 입법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문제를 말한다.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회를 빗대어 ‘법을 찍어내는 법 공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 제출된 법안은 30여 년 전인 제12대 국회(1985년~1988년)에서는 370여 건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지난 19대 국회(2012년~2016년)에서 이 숫자가 17,800여 건으로 약 40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계속 이어져서 지난 20대 국회(2016년~2020년)에서는 19대 국회에서보다 6,000여 건 이상 증가한 24,100여 건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2020년에 개원한 21대 국회는 개원 1년 만에 이미 11,500건을 넘겼고, 이러한 추세라면 20대 국회에 제출되었던 법안의 두 배에 가까운 45,000여 건의 법안이 발의 제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입법 감시단체 중 하나인 법률연맹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24개 법안심사소위에서 법안 한 건당 심사하는 데 걸린 시간이 평균 2분26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면, 법안의 심사는 고사하고 제출된 법안을 한 번 읽어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법안심사소위의 형편이 이 정도라면, 본회의에서 표결에 임하는 의원들이 해당 법안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 것인지는 물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더구나 21대 국회에서 발의될 법안이 20대 국회의 두 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에, 그렇게 된다면 법안 한 건당 심사 시간은 20대 국회 심사 시간의 절반인 1분 남짓으로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 부실 과잉입법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과잉입법의 또 다른 문제인 질적인 문제란, 법안 내용에 대한 파악 여부를 떠나 반법치주의적인 법안, 반시장경제적인 법안, 반자유주의적 법안들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문제이다. 그 결과 법안의 제정 및 개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규제에 규제가 더해지고, 규제의 대상과 폭은 확대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가 열심히 일할수록, 즉 국회가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시장과 기업의 활력은 사라지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받는 일이 벌어진다. 차라리 국회가 복지부동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회 과잉입법의 부정적 영향
부실 과잉입법의 문제는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의원들이 거수기 노릇을 함으로써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본회의에서 표결에 임하는 의원들의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조차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발의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의원들 몇몇이 공동 발의했던 법안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해당 법안을 공동 발의했던 의원들 가운데 한 명이 ‘사실은 법안의 내용도 모른 채 공동발의에 서명했다’고 실토한 일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부실 과잉입법의 문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사정을 보면 과연 법이 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라는 이름의 이 법은 무려 92.3%의 절대적인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으로 인해 모든 기관에서는 이 법의 내용에 대해 의무적으로 강의를 듣고 교육을 받았으며, 이 법을 어기면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서슬이 퍼랬던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부실입법이었다. 표결에 참여했던 의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의원들 대부분이 이 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김영란법의 무조건적인 통과는 선이고, 이 법률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마치 부패를 옹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표결에 참여했던 국회의원들 스스로 이 법은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통과시킨 명백한 부실 졸속입법이었다. 출발이 이렇다 보니 국회를 통과한 지 겨우 4개월 만에 개정이 이루어지고, 부정청탁 위법 여부의 기준이 바뀌게 된다. 이후에도 명절을 앞두고 농어업인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선물 가운데 농수산물의 경우에는 기준 금액을 두 배로 조정하기도 했다. 어제는 부정청탁이었던 것이 오늘은 정당한 선물이 되어 버리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 이 법은 공직자 임명이나 정치적으로 이용 혹은 악용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더 이상 거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법으로 전락했다.
이런 입법 사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식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이 과연 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이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법을 가지고 법정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판결을 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입법을 하는 의원들조차 내용도 잘 모른 채 졸속으로 대량 생산된 법이 국민으로부터 존중받고 잘 지켜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히 국민 사이에 법과 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나고, 정치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이 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이 법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양적인 측면에서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신중한 법안 발의와 세심하고 꼼꼼한 심사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최소한 의원들이 자신들이 어떤 내용의 법에 대해 표결하고 있는지는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질적인 측면에서 시장과 기업의 활력을 빼앗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하는 반시장경제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법안들이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안의 제정과 개정을 통해 규제와 통제가 적어도 확대되고 확장되지는 않도록, 그리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적어도 축소되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부실 과잉입법을 막기 위한 방안들
가장 먼저 막아야 할 것은 부문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법안 발의이다. 의원들이 기를 쓰고 발의안 숫자 늘리기에 열중하는 것은 정당의 공천 심사 기준이나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의원 활동평가를 할 때 발의 의안의 숫자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정량평가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하지만,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발의 과정에서부터 과잉입법을 막는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다.
첫째, 한 가지 방안은 법안 발의 시에 ‘사전입법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추진했다가 ‘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에 묻혀 무산된 ‘입법영향분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겠다는 제도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제도가 어떻게 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지도 의문이지만, 국회입법조사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정치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 ‘사전입법영향평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사전입법영향평가제도’와 더불어 특히 규제를 신설 및 강화하는 법안과 관련해서는 ‘규제사전검토서’를 제출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법안을 심사할 때 ‘규제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사전입법영향평가제도’와 ‘규제영향평가제도’는 법안을 발의할 때 철저하고 정밀한 준비와 조사 및 검토를 거쳐 보다 신중하게 법안을 발의하도록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또 하나의 방안으로는 ‘법안 실명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영란법’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간간이 해당 법안을 제안한 사람이나 의원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광범위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민식이법’처럼 해당 법안을 발의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부실 과잉입법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과잉입법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보다는 어떤 의원이 어떤 내용의 법을 제안했는지 영구적으로 따라다니도록 함으로써 좀 더 신중하게 법안을 발의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의원들이 법안의 내용도 모른 채 표결에 임하고 이로써 부실 과잉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안 낭독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안이 제안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 ‘법안 낭독회’는 모든 법안을—심지어 수백 페이지, 수천 페이지의 법안이라도—본회의 표결 전에 의원들 전원이 큰 소리로 낭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이 도입되면 최소한 한 번 읽어보지도 않은 채 법을 만드는 황당한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법률이 제·개정될 때마다 규제와 통제는 확대 및 강화되는 한편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 규제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강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규제 총량 증가 불가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 총량 증가 불가 원칙’이란 기존의 규제와 통제를 폐지 또는 축소시키는 법안이 아닌 규제와 통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규제가 해당 법안 내에서 혹은 다른 관련 법안을 통해 폐지 또는 축소되도록 하는 것을 법안 발의의 원칙으로 도입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유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인상한다면, 다른 명목의 세금을 인하함으로써 국민의 총 세금 부담이 증가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참고문헌>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영향분석을 통한 더 좋은 법률 만들기』, 연구보고서 2956, 2020.5.20.
피터 스와이저, 『정치는 어떻게 속이는가』, 글항아리, 2015.
권혁철 / CFM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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