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도 보호되어야 한다

변양규 / 2011-12-29 / 조회: 3,639

1. 문제제기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7월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차별적 처우를 방지하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이라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2007년 7월 1일 이후 새로이 고용계약을 체결한 기간제 근로자는 고용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즉 정규직 근로자로 간주하고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어떠한 법도 시행 이후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면 법령을 개정하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비정규직보호법도 마찬가지로 법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목적과 상반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면 개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간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여 왔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은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노동비용이 증가하여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그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이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또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관행적인 차별이 지속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다수의 학자들이 비정규직보호법에서 금지되어 있는 “차별적 처우”를 임금이나 상여금과 같은 물질적 보상, 또는 유급휴가, 직업훈련 기회와 같은 근로여건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하면 "차별적 처우"라 함은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의 근로조건’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에게 불합리한 이유를 들어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당연히 근로조건에 있어서의 차별이다. 즉,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근로자에게 정규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차별적 처우”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 방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 현황 및 문제점


비정규직 근로자에는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기간제근로자와 근로계약기간을 정하지는 않았으나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단기기대자, 그리고 비록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갱신되면서 근로하는 반복갱신자가 있다. 보통 이들을 통틀어 한시적 근로자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동일 사업장에서 동일한 종류의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보다 짧은 시간 동안만 일하는 시간제근로자가 있으며,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특수고용형태근로자, 가정내근로자, 일일근로자를 포함하는 비전형근로자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비정규직이라 부르는 비정규직근로자 범위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근로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이처럼 고용의 지속성이나 근로시간, 근로제공방식 등에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임금수준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반복갱신자의 월평균 임금은 연령, 성, 학력 등 개인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정규직 근로자의 97%에 달했던 시기도 있었던 반면 시간제근로자는 근로시간이 짧아 월평균 임금이 정규직 근로자의 24% 수준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보호정책은 이처럼 다양한 근로자들을 통칭하여 비정규직이라 부르고 획일적 기준에 의한 규제를 통해 대증요법(對症療法)적인 처방만 양산하였다. 그 결과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비정규직보호정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심각하지만 많은 이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례가 바로 비정규직 사용기간제한에 따른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성 훼손이다.


통계청의 201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 부가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599만5천 명 중에서 47.6%에 달하는 285만 명이 자발적 사유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더 높아 55.1%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 중에서 근로조건에 만족(44.4%)하거나 일자리의 안정성(23.2%) 때문에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가 3명 중 2명에 달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좀 더 세분화된 2010년 8월 자료를 보면 한시적 근로자에 속하는 반복갱신근로자 중 무려 79.5%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한 근로자의 비중(75.3%)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처럼 일자리가 본인의 여건과 기대수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가 많다는 점은 이젠 더 이상 획일적 규제를 통해 이들의 고용안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표 1>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2004년 70개월에서 2011년 79개월로 증가했다. 특히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71개월에서 79개월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속기간은 평균 24개월에서 맴돌고 있으며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정규직과 달리 26개월에서 21개월로 크게 감소했다. 비정규직보호법에 규정된 사용기간제한의 영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파견직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용기간제한이 없는 비전형 근로자나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2007~2009년 사이 근속기간이 일정한 반면 사용기간제한의 적용대상인 기간제 근로자의 근속기간만 29개월에서 23개월로 크게 줄어든 사실은 사용기간제한의 영향을 더욱 의심케 만든다.


 

<표 1> 고용형태별 평균 근속기간

(단위: 개월)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임금근로자

53

54

54

55

57

59

59

61

*정규직

70

72

70

71

74

79

77

79

*비정규직

24

24

25

26

24

21

24

27

-한시적

26

26

28

32

29

23

27

31

기간제

23

25

25

29

28

23

26

29

-시간제

12

11

12

11

12

12

13

16

-비전형

22

22

20

20

21

21

23

24

자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 부가조사』 2004.8~2011.8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속기간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성도 크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표 2>에 의하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기간 만료 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율은 2010년 4월 14.7%였으나 그 이후 20%대 중반을 기록하며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1년 1월에는 32.6%로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수치를 두고 비정규직보호법에 의해 정규직 전환율이 증가하여 비정규직보호법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계약만료 후에도 ‘계속고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근로하는 근로자의 비중이 같은 기간 55.4%에서 19.4%로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전체 계약만료 근로자 중에서 ‘정규직전환’이나 ‘계속고용’을 통해 고용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로자의 비중은 70.1%에서 52.0%로 크게 줄어들고, 반면 계약만료 시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근로자의 비중은 23.5%에서 47.8%로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비정규직보호법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근로자들의 계약종료라는 ‘희생’을 통해 일부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달성한 ‘부작용 법안’일 뿐이다.


 

<표 2> 기간제근로자 계약만료 시 조치 현황

(단위: 명, %)

계약만료자

계약종료

정규직 전환

계속고용

기타

2010. 4

14,254 (100.0)

3,353 (23.5)

2,101 (14.7)

7,892 (55.4)

909 (6.4)

5

9,935 (100.0)

3,453 (34.8)

2,311 (23.3)

4,168 (42.0)

3 -

6

10,960 (100.0)

3,638 (33.2)

2,771 (25.3)

4,261 (38.9)

290 (2.6)

7

8,119 (100.0)

3,164 (39.0)

2,330 (28.7)

2,621 (32.3)

4 (0.1)

8

6,809 (100.0)

3,405 (50.0)

1,799 (26.4)

1,563 (23.0)

42 (0.6)

9

7,233 (100.0)

2,928 (40.5)

1,390 (19.2)

2,893 (40.0)

22 (0.3)

10

5,173 (100.0)

2,326 (45.0)

1,304 (25.2)

1,475 (28.5)

68 (1.3)

11

6,141 (100.0)

2,923 (47.6)

1,439 (23.4)

1,712 (27.9)

67 (1.1)

12

14,555 (100.0)

7,113 (48.9)

1,951 (13.4)

5,465 (37.5)

27 (0.2)

2011. 1

7,641 (100.0)

3,654 (47.8)

2,494 (32.6)

1,485 (19.4)

9 (0.1)

자료 : 고용노동부, 기간제 계약 종료 비율 관련 보도참고자료(2011. 3. 24)
주: 근속기간 1년 6개월 이상 된 기간제 근로자 중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함.


3. 실천 과제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정규직보호법은 일부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다수의 고용안정성을 훼손하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수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피해를 입고 있는 근로자 중에는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부작용의 본질은 첫째,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유인은 제공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 사용에 대해 제한만 가하는 것에 있고 둘째,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통칭하여 획일적 규제를 가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정치적 이유 등에 의해 사용기간 제한의 철폐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를 제안한다.


첫째,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5호에서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를 통해 인정하고 있는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 경우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박사학위 소지자, 국가기술자격 소지자, 국방부장관이 인정하는 군사적 전문적 지식·기술을 가지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자, 그리고 겸임교원, 명예교수, 시간강사, 초빙교원 등 일부 직종에 대해서만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택배운전사, 간호사, 항공사 승무원, 운전사, 학원 강사 등의 예외집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고용안정성 훼손이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근로자와 사용자 쌍방이 합의할 경우 사용기간 제한대상에서 제외시켜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해야 한다. 개인적 취향에 의해서, 혹은 근로여건 등에 만족하여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들까지도 사용기간 제한을 통해 고용안정성을 훼손한다면, 이는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을 근거로 하는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자발적 선택에 대해 획일적 규제를 적용하는 행위는 중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와 사용자 쌍방이 합의할 경우 사용기간 제한을 적용하지 말고 반복적 고용계약 갱신을 보장하여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변양규 /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 실장


<참고문헌>


변양규 외, “고용률 제고를 위한 노동시장 개선 매뉴얼”, 한국경제연구원 정책연구 2011-02


유경준 외, “비정규직 문제 종합 연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보고서 2009-03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및 비임금 부가조사』, 2004.8~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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