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목표제다. 3년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 기간을 정해 놓고 목표 물가(3.0±1%)를 관리한다. 이 물가안정 목표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대상으로 하며 그 목표치를 전제로 기준금리를 조절한다.
인플레이션 목표제의 목적은 붐과 버스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의 선호가 바뀜에 따라 가계 지출이 감소하여 총수요가 감소하면 실제 산출량은 잠재 산출량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여 물가가 물가안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 이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율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여 확대 통화정책을 쓰고 수요가 증가하여 산출량을 잠재 산출량까지 증가시킨다. 즉 불황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경기회복을 꾀하고 인플레이션율 하락을 막는다. 반대로 기준금리를 올려 긴축통화정책을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킨다. 이렇게 하여 붐-버스트의 사이클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 인플레이션 목표제의 목적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붐-버스트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야기할 수 있다. 총수요가 감소했다는 것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을 조정하라는 신호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여 화폐공급을 늘려 주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생산이 조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투자가 일어나 인위적인 붐이 발생한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은 가계의 저축으로부터 나오는 실질 자본량의 축적에 있다. 실질 자본량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공급을 늘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본량이 많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켜 투자를 늘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실제 축적해 놓은 자본량이 부족함을 알게 되고, 결국 투자했던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것은 곧 경제가 불황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금리를 조정함으로써 인위적인 붐이 생겼다가 그것이 터지면서 불황이 찾아오는 붐과 버스트 사이클이 나타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붐과 버스트를 일으키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도시 소비자 가구가 구입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의 변동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도시가계조사를 토대로 총소비지출에 있어 중요도와 가격변동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516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화폐량 변동에 따른 재화의 가격 변동은 CPI에 포함되어 있는 재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만약 통화량 변동에 따라 CPI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재화의 가격을 심각하게 변동시켜 사람들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면 CPI를 대상으로 한 물가안정 정책은 잘못일 수 있다.
2. 소비자물가지수 대상 물가안정목표 실효성 없어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Fed가 통화정책의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Fed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사용한다. 미국의 Fed는 불황이 오자 2001년 1월 6.5%였던 연방기금금리를 2003년 7월 1%까지 인하하였다. 저금리 정책은 유동성 과잉을 낳았고, 그것이 주택가격이 거품을 일으켰다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미국 Fed가 저금리 정책을 오랫동안 고수했던 것은 소비자물가지수를 물가안정 대상으로 삼았던 데에 있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은 Fed의 판단 오류를 일으켰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많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어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CPI를 대상으로 한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할지라도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이 폭등하였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물가안정목표를 성취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가 상당히 안정적이었지만 2002-2003년과 2005-2006년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따라서 CPI와 같은 특정 물가지수에 국한되어 목표를 정하는 것은 통화정책 전달과정에 비추어 볼 때 위험성이 있다. CPI 형의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중앙은행의 부주의를 악화시킬 수 있다.
3. 화폐공급 준칙주의에 입각해야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모순이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인플레이션 목표제로 할 것이 아니라 화폐수요에 맞춰 통화를 공급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화폐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밀튼 프리드만이 제안한 ‘k% 공급 증가율’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이 준칙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제보다는 붐과 버스트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한편 통화정책 방향을 당장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면 인플레이션 목표제에서 물가안정 대상의 지수를 바꿔야 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소비자물가 지수는 중앙은행의 부주의를 유발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재화나 자산을 포함시키는 지수를 개발하여 보다 넓은 물가지수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자산 가격을 포함시키는 목표제, 명목지출 목표제 등을 고려하는 것이다.
4. 한국은행 독립성 보장이 우선
통화정책의 중요성은 준칙의 실행에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일종의 준칙적 통화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통화정책은 재량적으로 이뤄졌다. 예를 들면 2001년 경제성장률이 3.8%에 불과하자 김대중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써서 화폐공급량을 늘렸다. 과도한 유동성으로 인해 과다한 신용대출이 발생했고, 그 결과 신용불량자가 속출했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 명목으로 계속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였다. 그 결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11년 들어와 목표 범위를 넘어섰다.
이러한 준칙적 통화정책이 실제로 잘 실행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은행이 정치적인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것이 만들어진다 해도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통화정책이 준칙이 아닌 재량적으로 실행된다면 의미가 없다. 준칙적 통화정책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정치적인 압력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의 독립성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참고문헌>
안재욱, 『시장경제와 화페금융제도』, 나남출판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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