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방자치와 지방 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지만 광역 단체가 바람직한지 기초 단체가 바람직한지에 관해서는 지방자치를 옹호하는 논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기초 단체들을 통폐합해서 광역화해야한다는 주장을 정부와 민간의 많은 사람들이 펴고 있고, 마산⋅진해⋅창원을 통합해서 광역시로 만든 예처럼 실행에 옮겨진 예도 있다. 뿐만 아니라 면과 동을 없애고, 구 의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 행정 광역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생활권이 같아진 지역들끼리 통합하여 광역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지방 권역 구분은 기차와 전보 등에 의존한 과거의 구분이어서 생활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은 기초 단체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광역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겉보기와 달리 중대한 문제들을 노정한다. 기초 단체들을 통합하여 광역화하니 생활권이 전혀 다른 기초 단체들이 억지로 붙게 된다. 도시와 농촌을 억지로 묶어 놓고, 역사와 문화가 다른 두 지역을 같이 붙여 놓는다. 규모의 경제에 대해서도,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2. 이론과 경험적 증거
우리나라에서의 이러한 지방 행정 광역화의 주장과 조치는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일어났던 통합 개혁 운동의 재판(再版)이라는 느낌이 든다. 통합이 효율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주장에는 이론적 근거가 박약하고 경험적 증거가 없음에도 통합 운동은 그때 널리 유행했다. 그 접근법의 문제점과 대안은 20세기 후반 공공선택 접근법을 통해 잘 드러났지만, 실제 도시 행정에서는 여전히 통합 접근법에 의존하고 있다.
통합 접근법과 공공선택 접근법은 인간 행태, 지식, 시민 선호, 공공 서비스의 다양성과 같은 기본 가정들에서 차이가 있다. 통합 접근법은 공무원이 자비롭다고 보나 공공선택 접근법은 공무원이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고 본다. 통합 접근법은 대규모 조직이 공공 서비스 제공과 관련하여 대량의 정보를 잘 획득⋅처리⋅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나 공공선택 접근법은 대규모 조직이 이러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고 본다. 통합 접근법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주민 선호가 유사하다고 가정하나 공공선택 접근법은 상이하다고 본다. 통합 접근법은 공공 서비스들이 충분히 유사해서 한 조직이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가정하나 공공선택 접근법은 공공 서비스의 다양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본다. 어느 쪽의 가정이 타당할까?
지방 행정 광역화가 옳지 않은 근거는 경험적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영미의 많은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1인당 지출이 올라가고, 관할들의 수가 적어지면 1인당 지출이 올라간다. 규모의 경제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들도 규모의 불경제가 있음을 밝히고 있거나, 정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혁신과 생산성 증가도 통합된 큰 정부 단위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움이 드러나고 있다. 서비스 제공의 전문성도 작은 정부 단위에서 더 잘 발휘된다.
3. 기초 단체를 존치시켜야 한다
1) 소규모 정부 단위의 이용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연구로부터, 자본 집약적 서비스(상하수도, 병원, 공항 및 기타 운송 시설, 전력 생산 등)라든지 넓은 지역에 걸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대기 오염 통제 등)은 광역 단체가 맡고, 노동 집약적 공공 서비스라든가 대면 관계가 서비스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교육, 경찰, 소방, 도서관, 공공 주택, 복지, 공원과 오락, 쓰레기 수거, 거리 정비 등)은 기초 단체가 맡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것은 광역 단체도 있어야 하지만, 기초 단체도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기초 단체는 선호가 더욱 동질적이다. 만약 지방 행정을 광역화하면 광역 단체 안에 이질적인 선호를 지닌 기초 단체들이 포함되게 되어 주민들은 획일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기초 단체들이 많으면 주민들과 기업들의 발에 의한 투표가 정부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하여 정부가 효율적이고 대응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광역 단체에서는 그런 유인이 적다. 또, 기초 단체에서 혁신과 생산성 증가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러하므로 가능한 한 기초 단체가 유지되어야 한다.
심지어 그보다 더 낮은 정부 단위, 즉 읍, 면, 동, 구 등과 같은 근린 정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근린 정부는 아파트 단지와 같은 근린 조합일 수도 있다. 이러한 미니 정부는 아주 소규모의 정부이므로 선호가 더욱 동질적이어서 주민들이 서비스에 더욱 만족하게 될 것이다.
2) 외부 위탁과 정부 간 협상
서비스 제공에 현저한 규모의 경제가 존재할 때는 어떤가? 광역 단체에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그때도 무분별하게 광역화해서는 안 된다. 규모의 경제 때문에 기초 단체가 제공하기에 비효율적인 정부 서비스도 광역 단체나 민간에서 구입하거나 외부 위탁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민의 선호를 잘 반영하면서 규모의 경제의 이점도 활용할 수 있는 길이다. 만약 광역화하게 되면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르나 주민 선호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생활권이 다른 기초 단체들을 서로 붙여 놓았다고 불만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점은 근린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되고, 특히 근린 정부에 이런 서비스 계약이 중요할 것이다. 소규모 근린 정부들은 더 큰 시, 군, 사기업, 인근 공동체 등에서 공공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외부 위탁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성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 문제의 처리도 어렵지 않다. 기초 단체가 공공 서비스의 가장 효율적인 생산자이고 편익의 영향이 광역 단체에까지 미칠 때는 광역 단체로부터 기초 단체로 교부금 등의 형태로 재정 이전을 하여 외부성을 내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규모의 경제나 외부성이 발생할 때 정부 간 협상⋅협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협상은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 즉 정부 단위들의 수가 적어 거래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협상이 잘 안 된다는 선입관 때문에 단체들 간의 문제에 대해 협상을 시도도 해 보기 전에 정부 단위의 광역화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3) 구매 시각의 도입
규모의 경제나 외부성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 기초 단체를 유지하면서 정부 간 혹은 정부와 민간 간 서비스 매매를 하자는 것인데, 정부에 서비스를 팔 기회가 생기면 사기업들과 기타 정부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효율이 향상될 것이고, 자체 생산하고 있던 기초 단체의 서비스 공급자들도 경쟁의 압력으로 성과 향상에 노력할 것이다.
기초 단체와 광역 단체 등의 다중 관할들로 구성되어 있는 복잡한 정부 체제에서는 대상(代償⋅quid pro quo) 재정 관계의 수립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세보다는 사용자 요금(user charge)과 사용자 세금(use tax)을 활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편익 원칙(benefit principle)이 준수될 때 효율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대응 교부금과 같은 재정 이전도 구매 시각에서 실행해야 한다. 기초 단체가 발생시키는 외부성에 대해 광역 단체가 기초 단체에 재정 이전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광역 단체가 기초 단체로부터 필요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 단위들이 서비스의 비용과 편익을 모두 평가하게 되고, 그 결과 효율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4.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향하여
지방 행정 광역화를 추진할 때, 규모의 경제 외에도 주민 선호의 충족도 고려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와 주민 선호의 충족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은 지방 행정 광역화가 아니라 기초 단체들을 그대로 두고 기초 단체들끼리의 혹은 기초 단체와 광역 단체 사이의 협상을 통해 규모의 경제와 외부성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기초 단체들을 존치시켜서 이들 간에 서비스 제공에서 경쟁하게 하고 이들 간에 거래를 활성화시켜야 효율이 달성될 수 있다. 광역 단체가 기초 단체에 재정 이전을 하는 것도 단순한 재정 이전이 아니라 광역 단체가 기초 단체로부터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황수연 / 경성대학교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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