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10년 사이 체결 건수에 있어 세계 최고의 FTA 추진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9년 11월 결정된 칠레와의 FTA 협상 타결 및 이행에 5년이나 소요되었을 정도로 국내 FTA 추진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세계 최초로 미국, EU, 아세안, 인도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체결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는 시간이 흐르면서 질적으로 발전했다. 칠레, 아세안, 인도 등과의 FTA를 추진했던 1998-2005년에는 개방에 대한 국내 여건 및 상대국의 소극적인 입장으로 시장개방 범위가 다소 좁고 자유화 속도가 느린 편이었으나, 이후 미국, EU 등과의 FTA에서는 다른 나라가 체결한 FTA보다 우수한 시장개방 내용을 협정에 도입하였다.
한·미 FTA는 다른 나라의 FTA 모델이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자유화와 선진화된 통상규범을 포함하고 있다. 한·미 FTA가 논의되던 2005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FTA 협상을 타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경쟁국들은 판단하였지만, 그동안 축적된 FTA 협상 노하우와 통상전문인력의 활용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 있었다.
협정문 번역 오류로 한때 FTA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국익에 크게 부합하는 협정을 미국과 타결함으로써 EU가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을 요청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보게 되었다.
2. 기업들의 FTA 활용 부진
미국·EU와의 FTA 체결, 피해대책 보완대책 수립 등 FTA 정책을 잘 처리한 점도 있으나, ‘실리’보다는 ‘실적’위주로 추진한 점이 없지 않고, ‘동시다발 추진’ 전략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책 수립에 인적 ․ 시간적 제약과 취약산업 구조조정 지연으로 개방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한 지나치게 복잡한 관세양허와 국내 협상 소홀로 국내 이해관계 조정이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
가. 한·미 FTA, 한·EU FTA 이행 지연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는 FTA는 한·미 FTA, 한·EU FTA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비수준이 위축되었으나 미국과 EU는 세계 최대 수출시장이고, 현재의 재정위기 및 더블딥 상황에서 수출시장 확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들 선진거대경제권과의 FTA를 조기에 이행해야 한다.
다행히 EU와의 FTA는 2011년 7월부로 이행되었으나, 한·미 FTA 비준에 대한 논란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자간 무역자유화 협상으로 향후 전반적인 관세수준은 인하될 것이므로 FTA를 조기에 이행하여 경제효과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미국 및 EU와의 FTA 활용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부진한 시장개방
미국, EU와의 FTA 이행 지연 탓도 크겠지만, FTA 정책추진 초기에 우리나라가 타결했던 FTA 시장개방 내용이 부실하여 기업들의 FTA 활용도가 선진국의 FTA에 비해 극히 낮은 편이다. 미국, EU의 경우 FTA 활용도가 협정에 따라 60-80%에 달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한·칠레 FTA를 제외하고는 평균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아세안 FTA의 경우, 협정 이행 초기 눈에 띄는 관세인하 내용이 많지 않고,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품목에 대한 관세는 협정이행 5년 이후에나 낮아지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보다 늦게 칠레와 FTA를 체결한 중국과 일본이 한·칠레 FTA보다 우수한 시장개방을 도입함에 따라 최근 들어 우리 기업들의 칠레 시장점유율이 크게 낮아지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다. FTA 활용기반 부족
일반적인 FTA 홍보에 비해 FTA 활용방안 홍보와 모색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협정만 이행되면 자동적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FTA 활용방안 모색 및 관련 준비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되었다. 또한 협정에 따라 관세청, 상공회의소 등을 방문하여 증빙자료를 제출하고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업 및 발급기관의 준비가 부족했다. 한·EU FTA에서는 6천유로 이상 수출하는 수출자는 인증 수출자 자격을 받아야만 FTA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활용에 애로가 컸다.
FTA 관세양허 내용이 복잡하여 일반인이 FTA 혜택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FTA 활용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FTA를 체결했을 뿐 상대국이 협정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협정 이행 이후에도 아세안 일부 국가의 세관은 한-아세안 FTA 협정 적용을 하지 않아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FTA 혜택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3. 향후 FTA의 정책 방향
가. 중국 및 일본과의 FTA
한중일은 지역적으로 인접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정치안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중국 및 일본과의 FTA도 이러한 구도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 FTA는 수출입 교역에 대한 영향을 넘어 ‘국가간 짝짓기’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고, 동북아 지역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일 FTA는 2003-4년 협상을 하다가 시장개방에 대한 입장 차이로 중단된 이후 일본 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와의 FTA 협상 재개를 요청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도 우리나라와의 FTA 검토를 요청했고, 지난 5년 동안 정부가 참여하는 한·중 FTA 공동연구를 완료한 상태이다.
한·미 FTA 국회비준 후 한·중 FTA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나, 한중일 관계를 고려할 때 일본과의 FTA를 배제한 채 중국과의 FTA 협상을 하는 것은 동북아 관계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한·중 FTA 협상 개시는 한·일 FTA 추진과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나. 범지역 차원의 FTA 검토
한중일 FTA 산관학 공동연구가 내년 초에 종결되고 그 결과를 내년 중순 한중일 정상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한편, 중국은 아세안+3(한중일) FTA를 주도해 나가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일본은 아세안+3+3(호주, 뉴질랜드, 인도) FTA를 추진 중이다. 또한, 미국은 환태평양포괄적협정(TPP)을 추진 중인데, 미국 등 TPP 협상 참가국들은 우리나라를 TPP 협상에 초청한 상태이다.
글로벌 FTA 네트워크 구축의 상당부분을 구축한 우리나라는 범지역 차원의 FTA 추진을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양자간 FTA보다는 범지역 FTA를 체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지역경제통합은 지금 논의하더라도 협상 타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통합체가 우리나라 국익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논의 초기부터 적극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입장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다. FTA 경제실익의 강화
‘포괄적이고 수준 높은’ FTA 추진을 강조해 왔지만, 현재까지 체결된 FTA에서 비상품분야 중 기업들이 실제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기업들의 FTA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FTA 내용을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상대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또한 FTA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FTA 국내대책은 기업의 FTA 활용지원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FTA 대상국 선정도 기업 수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포괄적․높은 수준의 FTA’는 선진경제권과 FTA를 추진할 때 가능하나, 개도국들은 수용하기 어렵다. 이들 국가와의 FTA 추진시에는 우리나라의 대개도국 지원과 FTA 협상을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수출시장의 안정적 확보 못지않게 원자재 확보, 역내 생산 네트워크의 효율성 제고와 비관세장벽 해소라는 시각에서 개도국과의 FTA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
4. 실천과제
최근 10여년 사이 FTA는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FTA 경제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먼저 한·미 FTA 국회비준 및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 추가협상으로 당초에 비해 경제효과가 일부 줄어들었지만, 한·미 FTA 경제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삼기 보다는 국익적 관점에서 국회는 비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FTA 활용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대국민 FTA 홍보 관련 인력 및 예산을 FTA 기업 활용 지원으로 대폭 조정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FTA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 및 일본과의 FTA 추진은 불가피하다. 시장개방 등에 대한 사전협의를 바탕으로 이들 국가와의 양자간 FTA 협상 개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FTA 및 경제통합체 논의에도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FTA 추진여건을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단기간 내 많은 수의 FTA를 추진한 점도 작용하고 있겠지만, 기업들이 FTA 실익을 보지 못함에 따라 ‘FTA 피로현상’이 발생한 탓도 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FTA 대상국 및 협정 내용을 향후 협상에서 적극 모색함으로써 기업들의 FTA 관심을 유도해 냄으로써 FTA 정책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 인하대 인하팰로우 교수
<참고문헌>
조정란․정인교, “한국 중소기업의 FTA 활용도 분석”, 국제통상학회 발표자료. 2010.
정인교, “FTA 통상론” 율곡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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