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여입학제 논란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의는 마치 손을 대서는 안 될 사안인 듯 취급한다. 마치 양극화되는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에게 또 다른 특혜를 주는 제도인 양 호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거론되는 논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헌법 차원에서 보장된 기본권 문제이다. 한쪽에서는 기여입학제가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기회균등 보장(제31조 제1항)에 어긋난다는 것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제31조 제6항)에 비추어 기여입학을 허용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정의 측면에서 균등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기여를 강조하는가 하는 쟁점이다. 기여를 한 사람에게 이에 응당한 보상 차원에서 기여입학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반면 이렇게 되면 기회균등의 원리가 손상된다는 것이 반대 측의 논거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립학교의 문제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기여입학 여부는 대학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고 따라서 허용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사립대학도 공교육의 한 축이기 때문에 국공립대학과 똑같은 잣대로 재단하여 기여입학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요즈음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된 대학등록금 문제와 연계하여 기여입학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 대학의 연간 등록금 규모는 약 15조 원이다. 이른바 ‘반값등록금’을 추진하면 약 7조 5천억 원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도 정부의 대학지원금이 연간 약 6조 원을 상회한다. 만약 반값등록금이 관철되면 정부부담금은 약 13조 원을 상회하게 된다. 오히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려면 역설적으로 기여입학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논거도 성립한다.
2.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한 찬반논리
1) 도입을 반대하는 논거
첫째, 헌법 제31조 제1항에 제시한 기회균등 조항을 들고 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오히려 저소득층 학생에게 기회를 확대하여 기회균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혹자는 헌법 제11조 특수계급 불인정 조항을 내세우지만, 이는 기여입학제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교육기회 균등을 사립학교에도 적용해야 하므로 사립대학의 기여입학제 허용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논거이다. 그러나 사립대학이 공교육의 한 축으로서 공교육의 굴레 속에 국·공립대학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제4절에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셋째, 기여입학 허용은 대학입학을 물질적인 요인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논거이다. 그러나 이 논거는 마치 기여입학제가 황금만능주의의 화신인 것처럼 치부하고, 기여입학의 수혜를 받는 이들의 ‘기여’는 간과하고 있다. 이 역시 다음 절에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한다.
넷째, 기여입학제는 부정부패의 소지 등 운영상 문제점을 드러낸다는 논거이다. 쉽게 말하자면, 부정입학의 소지와 회계부정의 소지가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처럼 기여입학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한 것이다. 입시부정이나 회계부정은 투명한 집행과 엄격한 감사를 통하여 해소될 수 있다. 오히려 회계부정은 언론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보조금 수령 과정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입시부정 역시 국가독점 상태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기여입학제가 원인을 제공한다는 논거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섯째, 기여입학제가 학내 구성원 간에 이질감과 혐오감을 조성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관에 배치된다는 논거이다. 학내혐오감 조성은 학생별 전형방식 여부를 비밀로 하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현행 농어촌특별전형, 국가유공자특별전형 등 각종 특별전형은 모두 입학 후 비밀사항이다. 기여입학생도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모든 계층이 다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 반대논거처럼 ‘있는 자를 배척하는’ 공동체는 바로 공산주의 논리이다.
여섯째, 기여입학제가 대학 간의 불균형 발전을 조장한다는 논거이다. 대학재정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이 논거는 경쟁의 순기능조차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히려 경쟁을 통하여 부실대학을 자생적으로 퇴출시키고 도태시키는 순기능은 장려해야 한다. 부실대학에 대한 기부행위는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대학 간의 경쟁이 촉발된다는 점을 이 논거는 간과하고 있다.
2) 도입해야 하는 논거
첫째,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대학의 자율성은 그 적용 범위가 대학 운영 전반에 미치는 것이므로 기여입학은 허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여입학 여부는 대학이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이다.
둘째, 기여입학제는 학생선발권의 일부이다. 대학이 자율권을 갖는다는 것은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든지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자율권 행사에는 다른 대학이나 다른 교육 주체에 해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점만이 예외적으로 작용한다. 사회 통념이니 하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사회통념을 내세워 전반적으로 제한하는 것과 같다.
셋째, 대학의 재정확충과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필요하다. 질적 수월성 확보를 위하여 많은 재원이 필요하므로, 기여입학제는 이에 ‘기여’한다.
넷째, 등록금 의존도 심화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기여입학제는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고, 대학의 기여문화 확산에도 ‘기여’한다.
다섯째,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여입학제는 교육기회 균등의 실현에 ‘기여’한다. 기여입학으로 확충된 재원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 부담을 현격하게 낮추고, 보다 많은 장학금 수혜를 누리게 한다. 헌법적 가치인 기회균등의 원칙에 결코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입학할 기회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기여입학제는 오히려 정의로운 제도이다.
여섯째, 기여입학제는 글로벌 경쟁 체제에 부합된다. 기여입학을 통하여 대학재정 유입 통로를 다양화하고 대학의 국제화에 ‘기여’한다. 이를 국가가 나서서 기여입학제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대학들 보러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곱째, 조기 유학 등 일류대학으로 인재 유출되는 이른바 교육엑소더스(exodus)가 해소된다. 특히 교육엑소더스로 야기된 여러 가지 사회병리현상도 치유된다.
여덟째, 기여입학제는 이미 도입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60.9%라는 일반인들의 지지도가 이를 말해준다. 특이할 만한 점은 소득이 적을수록 기여입학제 찬성률이 높다는 것이다(머니투데이, 2011년 6월21일자).
3) 기여도의 문제
기여입학제의 수혜자는 누가되어야 하는가? 이른바 기여도의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이 ‘국가 유공자 및 그 자녀들’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이들에게는 특히 국·공립대학 입학에 상당한 정도의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 기여자에게는 ‘조건부 입학 기여금지’라는 명분을 씌워 기여입학제를 전면 금지시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희생과 귀속 등에 따른 기여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 기여이다. 전자는 국가나 특정 사회 또는 집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거나 신체가 손상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기여자는 반드시 국가가 아니더라도, 같은 계열사가 설립한 학교의 직원 자녀의 경우 해당학교가 그간의 ‘공헌’을 명분으로 기여입학시킬 수 있다. 후자는 목숨이나 신체의 희생이나 그간의 공헌에 의하지 않더라도, 생명과 신체적 희생만이 아니라 재무기여를 통한 기여입학도 정당화되어야 한다. 이는 다음의 논거와 같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는 소득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소득이 월등히 많고 건강한 사람은 부담만 지고 혜택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들은 게다가 각종 담세 부담도 크다. 이들은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의료보호, 의료보험, 각종 사회서비스에 대한 지대한 기여자, 공헌자이다. 따라서 이들이 영리의료법인을 통하여 자기 부담으로 원하는 진료서비스를 받는 것은 기회균등이나 공정성에 훼손되지 않는다.
같은 논리로 재정기여에 따른 입학도 허용되어야 한다. 재정 기여 이전에 이들은 이미 국가와 사회 여러 분야에, 그리고 많은 학교에 ‘보이지 않은’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학에 따른 또 다른 부담인 ‘재정기여’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4) 사립학교의 정체성 문제
사립학교 정체성 문제를 살펴본다.
<모형1>은 ‘공교육’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익을 위해 설립·운영하는 공립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으로 보면, 공교육에는 전형적으로 공립학교가, 반면에 사립학교는 사적인 영역에 놓이게 되는 도식이다. ‘공교육=공립학교’ 및 ‘사교육=사립학교’라는 등식으로 단순화하였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모형1>이 정상적인 모형이다.
반면, 사립학교를 설립자 유형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일’(official affair)에 관여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즉 공적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모형2>가 성립한다. 그러나 <모형2>는 사립학교가 개인의 독특한 건학이념과 자율성, 그리고 공적 기여라는 특성에 비추어 양가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양가성은 공적 기여에 기울어져 공교육을 제도교육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사립학교는 제도교육 안에 공립학교와 똑같은 지위와 역할을 부여 받아야 한다고 하여 <모형3>으로 변질된다.
<모형3>은 사립학교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기여입학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거 이면에는 <모형3>이 깔려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공적인 기여도는 외부효과 혹은 이웃효과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립학교의 공적 기여는 사립학교의 자율성보다 상위의 논거로 설정되어 기여입학제 도입의 논거로 오용된다.
3. 사립대학 중심으로 기여입학제 도입해야
기여입학제는 도입되어야 한다. 대상은 사립대학을 기본으로 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국·공립대학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사립대학에는 어떠한 단서 조항도 달아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어떤 단서를 붙여서는 안 된다. 예컨대, 조건부 입학을 전제로 한 기여입학제를 제외한 기여입학제만을 허용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히려 단서 조항 또는 조건부 조항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기여입학에 따른 대학 재정 및 관리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회계의 투명성, 집행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도록 회계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 사립대학에 또 다른 족쇄를 채우지 말고 기존의 회계에 관한 일반법을 적용하면 된다. 국·공립대학에는 국가유공자 등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로 입학을 허용함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사립대학과 마찬가지로 기여입학제를 허용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4. 영역별 실천과제
1) 법제적 과제
법제적 차원에서 입법부의 자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입법 차원에서 기여입학제 허용 여부를 규정하면 다시 헌법을 논거로 하여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재발된다. 한 마디로 입법 차원에서만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일반인들의 기여입학제 지지여론과 반대로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의 눈치 보기가 심하여 교과위 의원들이 모두 반대와 유보 입장을 표명했다(아시아투데이, 2011년 5월26일자). 입법부의 의지가 강하다면, 기여입학제 실시를 위한 특례법 제정을 고려할 만하다. 그러려면 국회의원들의 의지와 자세가 확고해야 한다. 반값등록금이나 무상급식에서 보는 것처럼 선거를 의식해서인지 포퓰리즘에 휩싸여 악법을 제정하거나 기여입학특례법 제정을 망설이는 구습을 버려야 한다.
2) 정책적 과제
현재 기여입학제 실시 여부는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학 업무를 교육당국이 직접 관장했던 시절보다 대학의 자율이 개선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대교협은 명목상으로는 회원대학간의 협의와 협조에 의해 마련한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에 따라 기여입학제를 스스로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대교협의 ‘관제 자율’에 따른 통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정책적 과제는 정책 담당자들의 의지의 문제이다.
3) 추진 의지문제
첫째, ‘하나마나 한 말’을 되풀이하는 립서비스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여입학제는 결국 사회통념과 헌법 질서 상 수용이 가능한 도덕적이고 사회정의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극히 제한적이고 공정하게 대학별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실시하되, 사회적으로 긍정적 분위기를 충분히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기여입학제의 명분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결론적으로 실시하지 말자는 혹세무민하는 군더더기 말에 불과하다.
둘째, 정치권에서 의지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선거 공약으로 “대학관치의 완전철폐”와 “3단계 대입자율화” 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이 맥락에서 대학입학 업무를 대교협으로 이관한 것인지 모르나, 각종 규제와 감사 등의 권한을 가진 교육당국이 해당총장들의 모임인 대교협에 외관상으로 이관했다고 대학관치가 없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기여입학제는 실시되어야 한다.
셋째, 법제적 차원과 마찬가지로 시행령을 만드는 정부 차원에서도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정부 내에서도 기여입학제를 시행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기여입학제의 도입 검토”(2001년 3월)라는 내부문서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개인 또는 기업이 특정 사립대학에 토지·건물·금전 등을 무상으로 기부하거나 대학의 설립 또는 발전에 비물질적으로 기여하는 등 현저한 공로가 있는 경우 직계 자손에게 대학이 정하는 적절한 기준에 의하여 입학이 가능하도록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4) 사학의 의지와 과제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사립학교의 위상 문제를 사립학교, 특히 사립대학이 스스로 정립하는 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사립학교가 공적 영역에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곧 국가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 기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투명한 학교운영에 경주해야 한다. 아울러,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사회통념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재정운영이 건전하고 자립의지가 강한 사립대학 10곳을 선정하여 1-2년 간 시범적으로 운영하도록 한다. 그 결과, 부작용은 해소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나아가서 희망하는 사립대학에 확대하도록 한다.
김정래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참고문헌>
김정래, 고혹 평준화해부, 한국경제연구원, 2009
김정래, 교육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 자유기업원 CFE Report No. 152, www.cfe.org, 2011.
김형근, 기여입학제 금지정책의 헌법적 검토, 교육법학연구 제21권 제2호, 2009.
박소영, 기여입학제 금지 법안의 헌법 적합성 분석, 한국교육 제32호, 2005.
최희경, 기여우대입학제에 대한 헌법적 고찰, 교육법연구 제8권제1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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