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정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이하 ‘개정 하도급법’이라 함)에서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하여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제35조 제2항 본문). 그리고 입증책임에 대한 특례규정을 두어 수급사업자가 아닌 원사업자가 기술자료 탈취·유용에 대한 고의·과실이 없었음을 입증하도록 하여 입증책임전환규정도 신설한 바 있다(제35조 제2항 단서).
또한 소송절차에 있어 법원의 공정위 자료요구(공정거래법 제56조의2) 및 손해액 인정(공정거래법 제57조)을 명시한 공정거래법 규정을 준용하도록 특례를 인정함으로써 일반 사법상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는 달리 일방, 즉 수급사업자보호형 징벌배상제가 도입되었다(제3항).
이처럼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민사손해배상제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징벌배상제를 하도급법에 도입하게 된 취지는 무엇보다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에 의한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에도 창업리스크 완화,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등이 이 제도의 도입취지로 언급된 바 있기는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부는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를 차단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이번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행법상 이러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원사업자에 의한 수급사업자의 기술탈취행위에 대한 민·형사상의 제재수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징벌배상제를 도입한 이유가 앞에서 언급된 내용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도의 문제점을 검토한 후 이에 대한 법개정 작업을 단행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2. 법개정의 필요성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에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에 대한 재검토와 법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첫째로, 현행 민사책임법제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소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는 사법(私法)의 공법화(公法化)를 의미하며, 동시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이번 하도급거래상의 징벌배상제 도입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어 그 입법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민사책임법제의 혼란
우리나라의 민사책임은 과실책임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타인에게 가한 손해이더라도 이에 대해 면책이 된다. 따라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아울러 이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배상을 받고자 하는 자가 손해를 가한 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하도급법에 도입된 원사업자의 수급사업자에 대한 3배 징벌배상책임은 실손해배상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입은 실손해배상액보다 3배나 많은 배상을 함으로써 다시는 이러한 가해행위를 할 수 없도록 원사업자에게 위하적 기능을 하는 배상책임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사책임체제에 형벌적 요소를 가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형사벌책임원칙은 고의책임주의이다. 즉, 과실은 처벌하지 않고 고의만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사책임체제에 형벌적 요소를 가미한다는 것은 형사법이 민사법 영역까지 확대되는 것으로서 과실이 있어도 형사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륙법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형사벌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징벌배상제를 두고 있지 않으며, 엄격히 민사책임법제와 형사책임법제를 엄격히 구분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규정의 신설은 향후 민사책임에 관한 전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징벌배상책임 인정을 위한 명확한 요건과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소송남발 우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의 내용을 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유용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고(제35조 제2항 본문), 기술자료 탈취·유용에 대한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은 원사업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5조 제2항 단서).
따라서 수급사업자 입장에서는 원사업자가 유사한 기술을 이용하여 이익을 보기만 하면 비록 자기의 기술 자료를 탈취하거나 유용하지 않은 경우라도 3배의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시 말하면, 기술자료 유용의 개념이 정확치 않으며, 원사업자가 스스로 기술 자료를 탈취하여 유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이 전환되었고, 실손해보다 3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급사업자 입장에서는 소송을 제기할 유인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2007년 이전에는 징벌배상소송이 남발된 바 있으며, 피고기업들 상당수는 파산하는 결과를 초래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2002년 미국 다우코닝사가 유방확대수술에 사용되는 실리콘 부작용에 따른 집단 및 징벌배상소송인데, 당해 다우코잉사는 2년 후 24억 달러 배상판결을 받아 파산한 바 있다.
따라서 집단소송 남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많았으며 1995년에는 사적증권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Act of 1995)과 1998년에는 증권소송통일표준법(Securities Litigation Uniform Standard Act of 1998)을 제정하는 등 남소를 제한하는 입법적 노력도 기울였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듯이 2007년에는 10여건의 징벌배상소송에서 연방대법원 및 주법원들이 기업들 편을 들어 주는 사건들이 발생한 바 있다. 즉, 2007년 2월 필립 모리스 소송의 경우 폐암으로 숨진 흡연자의 미망인에게 약 8천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오리건주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2007년 5월에는 포드자동차의 익스플로러 전복 사고에 대해 피해자 유족에 5천 5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캘리포니아 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이 판결 모두를 파기 환송했다. 또한 2007년 6월에는 개인 신용도를 조사하면서 해당 고객에게 통지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손해와 관련, 수백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소송에 대해서도 원고가 패소했다.
2007년 6월 말에는 타이어 업체 굿이어의 여성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차별에 따른 피해배상 소송에서 법적 대응 시간이 지났다며 고용주를 상대로 한 근로자의 임금차별 소송권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 이번 시행되는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도에 대한 남소 방지책 또한 입법론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법(私法)의 공법화(公法化)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 규정은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정부가 통제하는 수단인 행정규제법 내에 사적 자치를 원칙으로 하는 민사책임에 관한 특례규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법의 공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형사벌을 가하기보다는 징벌적 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 등을 통하여 과중한 민사책임으로 예방적 기능을 강화시켜 온 바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기업들에 대한 엄격한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행정벌적 과징금 등과 같이 엄격한 벌칙규정들을 두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징벌적 배상제도까지 적용되는 경우 기업들의 책임이 과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를 계기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각종 행정규제와 감독제도들이 탄생할 수 있다. 이는 민사법제의 공법화를 의미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기업의 거래활동에 개입할 여지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사조 하에서는 민사법제의 공법화가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의 경영악화
이 징벌적 배상규정이 도입되게 된 근본취지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고, 제공된 기술을 임의대로 이용하여 즉, 사용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탈취하여 원사업자의 수익사업에 활용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제12조의3의 내용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본인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제1항). 따라서 금지규정위반여부는 원사업자가 아닌 위반사실을 주장하는 수급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단서조항에서는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는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기술탈취의도가 없는 정당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에도 원사업자는 합법적으로 기술 자료를 요구하였음에도 원사업자의 매출과 수익이 증가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징벌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면책될 아무런 규정도 없다는 것이다.
즉, 원사업자가 기술 자료를 요구한 경우, 비록 당해 기술 자료를 이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사업자가 수익이 발생한 경우 징벌배상책임으로부터 면책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규정만으로 전통적인 당사자의 지위가 역전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앞으로는 하도급거래에서 과거와는 달리 원사업자가 아닌 수급사업자가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소위 하청업체와 거래하는 경우 발생할 위험성이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해 대기업들은 국내 중소기업과의 하도급거래를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해외하도급거래선을 확보하거나, 오히려 자회사를 설립 또는 계열사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중소기업들이 거래선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3. 제안내용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도입된 하도급거래상의 징벌배상제와 관련하여 입법론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법 시행 초기에 이 제도의 폐지를 논하는 입법적 노력은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이제도의 폐지를 논하기 보다는 이에 대한 보완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보완제도를 모색함에 있어서는 형평의 법리에 입각하여 수급사업자는 물론이고 원사업자의 입장에서도 부당한 입법이 되지 않도록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시급한 것은 현제도를 이용한 수급사업자의 무분별한 소송제기, 즉 남소를 방지할 수 있는 입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4. 실천과제
하도급법상의 징벌배상제도의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남소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먼저 강구해야 할 대책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보호대상이 되는 기술 자료의 범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2011년 7월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을 새로 제정하여 기술 자료의 개념 및 유형을 분류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지식재산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중소기업의 기술·경영상 정보·자료(예시: 시공프로세스 매뉴얼, 설계도면, 생산원가내역서 등) 등 창작성이 확보되지 않은 기술 자료까지 폭넓게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기술 자료가 보호법익을 갖기 위해서는 독창성과 산업성, 경제성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위에 예시된 내용들이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개별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 오히려 지침에 예시됨으로써 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도 보호법익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따라서 지적재산법적인 보호를 받는 기술 자료로 보호대상을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인 영업비밀로 한정하는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원고의 손해배상책임과 담보제공명령 제도의 도입 등을 들 수 있다. 즉, 수급사업자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소를 제기하여 패소한 경우에는 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손해배상책임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법원이 소제기한 원고에게 담보를 제공하라는 명문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삼현 /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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