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민간과 정부의 역할정립은 중요하다. 정부가 필요이상으로 개입하면, 민간시장은 위축되어 경제성장에 해를 끼친다. 반면 민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문제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으로 사회갈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정부의 민간개입에 대한 최적수준에 대한 개념이 필요하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생산되는 무상복지상품은 정부개입이 지나치다. 대체로 복지는 빈곤계층을 위한 정책인데, 부자에게도 정부가 특정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모든 지출은 국민 세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부자계층에까지 세금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생산되는 포퓰리즘 정책은 수혜자인 국민입장에서는 아편과 같다.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망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여야당 할 것 없이 포퓰리즘 상품개발에 열중이다. 수혜자인 국민들도 단기효과에 더 관심이 있지, 장기효과에는 관심이 덜하다.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분명 나쁜 정책이지만, 정치권에서 여야할 것 없이 포퓰리즘 정책을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정치풍토를 어떻게 막을 것 인가?
포퓰리즘 정책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 사회를 강자와 약자로 구분해서 약자를 돕는다는 정책과 비용은 교묘하게 감추고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기업정책의 경우에는 대기업에겐 규제를, 중소기업에겐 보조를 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지역정책으로는 수도권은 규제하고, 지방은 국책사업이나 재원이전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재정정책도 강자인 대기업에게는 법인세를 높이고, 약자에겐 복지혜택을 높인다는 것이다. 반면 요사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 ‘무상복지’라는 포퓰리즘은 비용문제를 은폐하고서, 정부에서 무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항상 표심을 잡기위한 정책상품이 개발되어 왔다. 그들은 주로 ‘개발’이나 ‘민주’라는 포장을 통해서 국민들의 표심을 자극하였다. 이러한 정책상품들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짧은 시간 내에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순기능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치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개발과 민주가 중심이 된 정치상품은 한국을 선진국 문턱으로 이끌었지만, 포퓰리즘 상품은 한국을 후진국으로 빠지게 할 수 있는 분명 잘못된 길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를 막아야 한다.
2.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은 합리적 행동이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결정되는 정책안을 보면, 링컨의 이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 정부가 아닌 ‘정치꾼’의 정부가 되었고,‘국민에 의한’ 정부가 아닌 ‘관료들에 의한’ 정부가 되었고,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닌 ‘이해집단을 위한’ 정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결코 정치인과 관료들의 개인적 도덕적 문제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이는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제 민주주의라는 정치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정책상품은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이는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이란 메카니즘이 항상 잘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재, 외부성 등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발생하듯이, 정치시장에서도 민주주의의 위대한 이상을 바탕으로 한 정치과정이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생산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게 된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지만, 정치시장에서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공급되는 정치상품이다. 따라서 정치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결코 정치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포퓰리즘을 정치인들의 도덕 및 양심문제가 아닌, 정치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지, 그 해결책도 현실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개인차원의 도덕적 문제로 보면, 정치인들의 도덕과 양심에 호소하는 해결안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는 효과가 없다. 반면 정치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면, 효과적인 정책안을 제시할 수 있다.
3. 포퓰리즘 정책생산을 법으로 막아야
포퓰리즘 정책을 정치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한 다음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정치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 공급자들이 포퓰리즘 정책을 생산하는 행위를 차단해야 한다. 많은 포퓰리즘 정책들은 정부재원을 필요로 한다. 정치 공급자는 포퓰리즘 정책제안에 따른 비용 상승에 대해 아무런 제약이 없다. 결국 재원조달의 문제이므로, 정책제안과 연계한 재원확보안을 제시하게 해야 한다. 크게 보면, 전체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규모 하에서 세출규모를 제약하면 된다. 세입증가율 이내에서 세출증가율을 법으로 강제하도록 한다.
또한 새로운 포퓰리즘 정책을 제안할 경우에는 반드시 재원조달방안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도록 하되, 반드시 전체 국민의 부담수준은 증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반드시 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에서는 ‘재정준칙(fiscal rule)‘이란 법적 기반을 가지고 지출행위를 억제하고 있다. 독일은 세입과 세출을 비교하는 재정수지 준칙, 스위스는 세출측면을 규제하는 지출준칙을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재정준칙’을 법으로 만들어 포퓰리즘 정책제안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4. 재정준칙을 법률로 만들자
행정부에서 2010년에 도입하여 2011년 예산안 편성 때부터 적용한 재정준칙이 있다. 그러나 예산안은 행정부가 아닌 국회에서 확정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러한 재정준칙을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인을 제약할 수 있는 방법은 양심에 호소가 아닌, 법제화 뿐이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포퓰리즘 정책을 도입하려고 할 경우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재원조달대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은 법률에 따라 지출의무가 발생하고, 법령에 따라 지출규모가 결정되는 ‘의무지출’이므로, 장기적으로 지출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위험이 있다. 도입되는 그 해에는 지출규모가 크지 않으므로, 쉽게 도입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장기재정추계를 바탕으로 도입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무지출에 해당하는 정책안은 반드시 신뢰성있는 기관의 장기재정추계를 바탕으로 전체 예산총액 내에서 제안되어야 한다.
재정준칙의 법제화는 포퓰리즘 정책의 당사자인 국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절대 자발적인 법제화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정치인들이 국민 압력에 의해 수동적으로나마 법제화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정치권에 압박할 수 있는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현진권 /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참고문헌>
고영선 외, “2011-2015 국가재정운용계획: 총괄 및 총량분야”, 공개토론회 발표자료, 2011.
현진권, “복지논쟁: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 자유기업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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