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Income Contingent Loan: ICL)는 대학생이 재학 중 학자금을 대출받고 졸업 후 취업 등으로 일정한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대출금을 상환하는 ‘소득 연계형’ 학자금 대출제도를 의미한다. 일종의 ‘등록금 후불제’의 성격을 갖는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취지는 “돈이 없어 대학을 못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취지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ICL은 ‘기존의’ 학자금 대여제도에 비해 혁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선 기존 대출제도는 대출한도 설정으로 등록금과 숙식비, 교재구입비 및 교통비 등 학자금 ‘실소요액’을 대출받지 못했으나, ICL은 학자금 실소요액 전액을 대출해준다. ICL은 기존 대출제도와 달리 재학 중에 원금은 물론 이자부담도 유예해 줌으로써 명실상부한 ‘후불제’로 운영된다. 그리고 기존 대출제도 하에서는 상환기간이 도래하면 소득유무에 관련 없이 대출금 상환부담을 지게 돼있어 취업이 되지 않은 경우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하지만, ICL는 원리금 상환 시작을 ‘일정소득 발생시점’에 연계시킴으로써 금융채무 불이행자로의 전락을 막아준다. 학자금에 대한 원리금은 최장 25년에 걸쳐 상환한다.
ICL의 뿌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반 값 등록금’ 공약이다. ‘반 값 등록금’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기에, ICL은 ‘반 값 등록금’의 ‘제도적 대체재’(代替財)로 마련된 측면이 강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ICL에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위험요소가 내재돼 있다. ICL은 “필요에 따라 대출받고 능력에 따라 상환하는” 구조로 짜여진 ‘신(神)의 선물’에 비견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친(親)서민, 중도강화’ 차원에서 ICL 국회통과에 많은 공을 들였다. 민주당 등 야당도 ‘친(親)서민’ 행보의 주도권(initiative)을 더 이상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법률안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여야는 ‘원 포인트’ 임시국회를 열어 2010. 1. 18일에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동법은 2010. 1. 22일에 법률 제9935호로 제정되었으며, 2010. 2. 2일에 대통령령 제22005호로 ‘동 시행령’이 마련되었다. 이 같은 법률에 근거, ‘취업후학자금상환제도’는 ‘든든 장학금’의 애칭으로 2010년 1학기에 시행되었다.
정책내용
‘취업후학자금상환제’(ICL)는 출범에 앞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이용자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후학자금상환제도 이용 건수는 10만9천여건(4,240억원)으로 전체 대학생 학자금 대출(39만5천여건, 1조4,756억원)의 28%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예측한 70만 4천여건의 15.5%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같은 저조한 이용실적을 놓고, 일각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친(親)서민 정책인 ICL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취업후학자금상환제도’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전에, 동 제도의 운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1학기 현재 시행되고 있는 ICL는 <표-1>의 ‘제도의 조건’에서 ‘현행’에 요약돼 있다. 대출금리는 5.7%이며, 대출적격 학점 기준은 B학점 이상이다. ‘상환기준소득’은 최저생계비의 100%에 맞춰져 있다. 즉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도달하면 상환의무가 부과된다. ‘초과소득’은 대출자의 연봉에서 연(年) 최저생계비(또는 상환기준소득)를 뺀 금액을 의미한다. ‘초과소득 상환률’은 20%로 설정되어 있다. 매년 연 최저생계비를 초과한 연 소득의 20% 만큼씩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회수율은 대출자가 대출 약정조건을 충실히 지켜 원리금을 갚는 비율을 의미한다. 현행 ICL의 회수율은 90%로 설정돼 있다. 대출적격 소득분위는 상위 7분위 이하로 제한돼 있다. 즉 상위 30%의 소득계층에 속한 대학생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군복무기간’ 중 이자는 면제되지 않는다.
< 표 1 > ICL 자격기준 및 상환조건
주요 정책변수 | 제도의 조건 | |
현행(2010. 3월 현재) | 조건 완화 | |
1) 대출금리 | 5.7% | 5.22% |
2) 대출적격 학점기준 | B학점 | C학점 |
3) 상환기준소득 | 최저생계비 100% | 최저생계비 150% |
4) 초과소득 상환률 | 20% | 10% |
5) 회수율 | 90% | 85% |
6) 군복무기간 이자면제 | 없음 | 있음 |
7) 대출적격 소득분위 | 상위 7분위 이하 | 상위 7분위 이하 |
대학생들이 ICL을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금리 부담’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생 3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ICL의 문제점으로 ‘높은 금리’(56%), ‘저소득층에 대한 이자지원 미비’(13%), ‘거치기간 이후 복리(複利) 부과’(12%), ‘신청학점 제한’(6%) 등이 지적되고 있다
정책평가
■ ICL 쟁점에 대한 평가
ICL에 대한 저조한 이용실적을 근거로 ICL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더 나아가 ICL제도가 정착하려면 ‘자격과 기준’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자금 대출은 일종의 ‘가치재’이기 때문에, ICL에 “저소득층에 대한 이자감면 혜택”이 배제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주장은 합당한 근거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이용실적 저조는 ‘ICL의 실패’를 의미하는 가?
ICL의 이용실적 저조가 ‘ICL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용실적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요자로부터 외면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저조한 이용실적’을 뒤집어 보면, “수요가 사전적(事前的)으로 지나치게 과장되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에 비춰볼 때, 후자의 개연성이 높다. ICL에 많은 도덕적 해이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저조한 이용실적은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5%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이는 그동안 ‘ICL’이라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도 ‘나름의 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또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 왔음을 시사한다. ICL가 “돈 없어 대학 못가는 사람”을 없애는 데 기여할 여지는 처음부터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ICL는 과잉기대 하에서 출범한 ‘정치상품’의 성격을 짙게 갖고 있다.
ICL은 ‘장학금’이 아닌 상환의무가 부과된 ‘대출상품’이다. 대출자는 ICL과 기존 대출제도를 비교한다. 기존 학자금 일반대출은 ‘고정금리’로 운영되는 단기 금융대출이고 ICL은 장기 금융대출이기 때문에, 취업 후 상환과정에서 부과되는 ‘복리’(複利)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ICL은 기존의 대출제도와 달리 ‘저소득층에게 이자감면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점에서 ICL은 기존의 일반학자금 대출보다 불리하다. 불리한 조건을 제시한 ICL에 사람이 적게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대학생은 졸업 후 취업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ICL의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졸업 후 취업전망이 어둡다면 그만큼 ICL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ICL에 대한 저조한 신청은 오히려 대학생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이는 시장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연봉이 낮을수록 원리금 상환 금액이 많아지는 것은 문제 아닌가?
CL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연봉이 낮을수록 원리금 상환금액이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평성 제고에 역행(逆行)한다는 것이다. 연봉이 낮을수록 상환금액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상환조건의 특성에 기인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행 ICL는 연봉에서 연(年)최저생계비를 뺀 ‘초과소득금액’(또는 상환가능금액)을 산정하고, 매년 동 금액의 20%씩 상환하는 구조로 돼 있다. 400만원씩 8학기 동안 총 3,200만원 융자를 받은 뒤 연봉 1,900만원인 회사에 취직했다고 가정해 보자. 대출자가 25년에 걸쳐 ‘초과소득금액’의 20%씩 상환하면 총 원리금 상환액은 9,705만원이 된다. 연봉이 2,500만원이면 상환액은 6,884만원으로, 연봉이 4,000만원이면 상환액은 5,168만원으로 줄어든다. 결국 ICL은 형평성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ICL ‘고유의 문제’가 아니다. 연봉이 적어서 상환금액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매년 갚는 상환액이 적어’ 상환원리금이 커진 것이다. 예컨대 승용차를 36개월 할부로 사면 12개월 할부보다 당연히 원리금의 총계가 늘어난다. 같은 연봉이라도 ‘상환률’을 20%보다 높이거나 연봉이 올라가면 상환원리금 총계를 줄일 수 있다.
성적 제한으로서의 B학점과 소득상한 설정은 타당한 가?
ICL의 이용이 저조한 이유 중으로 하나로 학점기준을 ‘C에서 B로’ 상향조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학자금 대출이 ‘보편적 복지’차원에서 시행되는 사회부조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성적기준으로 대출자산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온당하다. 정부가 보증한다 하더라도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점을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하다.
현행 ICL은 상위 30%의 소득계층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ICL을 설계하면서 ‘한정된 재원’을 저소득층에 배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ICL에 소득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려면 다음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등록금은 부모가 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빌려 자신이 후일 갚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학자금 상환이 부모의 부담이 아닌 본인의 부담이라면, 부모의 재력을 근거로 대출자격을 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모가 잘 사는 것이지 자식이 잘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입 초기에 ICL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수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득제한 규제는 ICL 제도가 정착되면 후일 저절로 제거되게 돼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소득제한을 풀어달라는 주장은 설득적이지 않다.
군입대 기간 중의 이자가 붙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 가?
현행 ICL에는 복무기간 중 이자 산정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군 복무기간에도 이자는 계속 붙는다. 반대 논리는 군복무는 헌법에서 규정한 ‘국가의무’이기 때문에, 군 복무기간에 학자금에 대해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적 의무’ 수행을 간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타당하려면, ICL 역시 국가의 ‘헌법적 의무’여야 한다. 대학교육은 주지하디시피 ‘선택교육’이다. ‘선택교육’에 대한 학자금 대여가 국가의 ‘헌법적 의무’일 수는 없다. 군 입대 기간 중에 이자가 붙는다면, 군복무를 마치고 ICL을 신청하면 된다.
■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을 부른다
ICL은 태생적으로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ICL에 대한 이용실적이 저조한 것은, ICL이 잘못 설계되었다기보다는 일반 대중의 ICL에 대해 가진 과잉기대에 연유한다. ICL의 자격과 기준을 대폭 낮추고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음은,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을 부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포퓰리즘에 기초한 정책은 “보다 강화된 대중의 포률리즘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ICL 시행에 따른 향후 30년간 재정소요 전망’ 보고서(2010. 2. 18)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ICL의 지원자격 및 상환조건을 <표-1>에서 ‘현행’에서 ‘조건 완화’로 바꾸는 경우 추가로 소요되는 재정부담을 시산해 놓은 것이 <표-2>이다. <표-2>에 의하면 정부의 연간 재정소요액은 오는 2020년에 4조90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행기준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예상한 재정부담 3조3000억원에 비해 1조6000억원 불어난 수준이다. 재정부담이 절정에 달하는 2025년에는 연간 5조6000억원이 소요돼 당초 추정치보다 두 배 가량 커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ICL의 조건을 대폭 완화하는 경우,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도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3>에서와 같이 2020년에는 채권발행 누계는 83조3000억원으로 초기 채권발행 누계액보다 25조원 증가하고, 2025년에는 94조7000억원으로 44조원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 표 2 > ICL 현행 및 기준완화에 따른 재정소요액 (단위: 억원)
123 | 2011 | 2015 | 2020 | 2025 |
정부추계 재정소요액(A) | 12,391 | 24,330 | 32,949 | 29,358 |
6개 변수(*) 완화시 추가소요액(B) | 1,314 | 6,462 | 15,606 | 26,878 |
조건완화에 따른 총 재정소요액(A+B) | 14,245 | 30,792 | 48,555 | 56,235 |
주: *는 <표-1>의 주요정책변수 1)에서6)을 의미. 이하 같음
< 표 3 > ICL 현행 및 기준완화에 따른 채권발행액 (단위: 억원)
123 | 2011 | 2015 | 2020 | 2025 |
정부추계 채권발행 누계 (A) | 165,461 | 438,112 | 582,782 | 508,065 |
6개 변수(*) 완화시 추가 채권발행액 (B) | 23,971 | 95,855 | 250,456 | 438,975 |
조건완화에 따른 총채권발행 누계 (A+B) | 189,432 | 533,967 | 833,238 | 947,040 |
문제는 이러한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이다. 물론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정부의 재정부담은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 국민이다. 굳이 따진다면 세금을 낼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층’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고소득층’의 부담으로 학자금을 융자해줘 ‘저소득층’의 교육기회가 제고된다면 문제될 것 없다는 판단을 하기 쉽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 전개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어 있다. 재정부담의 혜택을 누가 누리는 가이다. 재정부담으로부터 누리는 혜택도 ‘기회비용’을 가진다. 대학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닌 ‘선택교육’이다. 사회적 배려가 최우선돼야 할 계층에게 귀속될 희소한 자원을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가로채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로 보이는 것은 ‘숨은 비용’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1>에서 회수율을 90%에서 85%로 낮춘다는 것은 대출자의 15%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것을 각오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학자금 대출이 아닌 일반 대출에서 대출자산의 미회수율이 15%라면, 대출자산의 ‘건전성’ 개념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자금 대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ILC는 국가와 개인을 빚더미에 올려놓을 공산이 크다.
ICL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제도이다. 도입초기이니 만큼 손질할 곳도 많다. 재원조달 방식을 바꾸어 이자율을 낮추고, 저소득층에 대한 이자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ICL에 대한 과잉기대는 금물이다. 대학 진학률 85%에서 ICL이 가지는 의미는 원초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고용률’ 지표를 보면, ICL 정착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70% 이하의 고용률을 가진 경제에서 90%의 회수율을 설정한 것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이다. 초기 시행으로 이용자가 저조한 이유를 들어, ICL의 자격과 기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는 것도 좋은 조짐은 아니다.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을 부른다”는 진리가 던지는 그림자가 ICL을 감싸고 있다.
조 동 근 /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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