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지난 해 11월 11일 두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제조세조정법과 조세법처벌법이 그것이다. 두 법안은 국내 해외 재산 은닉과 탈세를 막기 위해 해외 금융계좌 신고를 의무화하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국세청은 2010년 1월 15일 역외탈세 분석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제거래세원 통합 분석 시스템(ICAS)"을 구축하여 가동한다고 발표 하였다. 이어서 백영호 국세청장은 1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를 다음 국회에 통과시키겠다는 다짐을 피력하였다.
이혜훈 의원의 법안 발의와 국세청의 ICAS 구축 및 국세청장의 기자회견을 종합하여 볼 때, 이들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의 정책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는 민주화된 시장을 위한 세법질서를 확립한다. 국세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학자적 양심을 내걸면서 그의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민주화된 시장을 만들고 그 전제로서 최소한의 사회질서인 세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시장에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경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나오기 마련이며, 이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평 과세를 위한 세법질서는 그래서 민주 시장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질서라고 하였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 도입은 공평 과세를 위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세청장의 의지이다.
둘째, 경제위기로 인한 세입 기반 약화와 확장적인 재정 정책 지속의 필요성으로 인해 재정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는 이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 특히 선진 일류 국가 건설을 위한 재정 지원 및 고령화 사회를 위한 세수증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숨은 세원의 양성화가 긴요하다. 이를 위해 부작용이 적으면서 가장 적합한 세수 확보 방안이 역외 탈루 소득 세원 관리 강화다.
셋째,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는 해외 금융자산에 대한 세원 관리 시스템 구축을 법적으로 뒷받침한다. 부동산, 직접 투자증권 등 일부 국외자산에 대해서는 불완전 하지만 세원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어 활용 중에 있다. 그러나 외환 유출입에 관한 신고 제도는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서 이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역외 소득의 탈루를 적발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보 수집 차원에서 수행되는 비정기적인 기획 세무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넷째, 역외 탈루 소득 파악의 노력은 국제적인 추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국세청 본청에 대재산가 역외 탈루 소득 문제 전담 조직을 창설하였으며, 선진 각국은 과세 정보 교환 네트워크를 확대하여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2010년 세출예산의 10% 긴축기조에도 불구하고 국세청(IRS) 예산을 5.2% 증액하였다.
정책내용: 해외 금융계좌 미신고 및 허위신고 자 형사처분 가능
해외 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및 내국법인은 자신의 해외 금융계좌의 총 잔액이 해당 연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날이 있는 경우, 해당 연도의 해외 금융계좌를 다음 연도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해외 금융계좌란 해외 금융기관과 예금, 증권, 파생상품, 그 밖의 금융거래를 하기 위하여 직·간접적으로 개설한 계좌를 말한다. 신고 대상에는 비영리 내국법인,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그리고 대통령이 정하는 자는 제외된다.
해외 금융계좌를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이를 신고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신고할 경우에는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현재의 법률에 의하면 과태료는 3천만 원 이하이다. 미신고와 허위 신고 자들 중, 모든 계좌의 최고 잔액의 합계액이 5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최고 잔액의 20%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 표 1 > 해외 금융계좌의 신고 및 신고 위반에 관한 처벌 내용
해외 금융계좌 정의 | 계좌 명칭을 불문하고 해외 금융기관과 예금, 증권, 파생상품, 그 밖의 금융거래를 하기 위하여 직․간접적으로 개설한 계좌 | |
신고 | 의무자 | 해외 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및 내국법인으로 자신의 모든 해외 금융계좌의 잔액 합계액이 해당 연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날이 있는 경우 |
면제자 | 비영리 내국법인,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 |
제재 | 과태료 부과 | 신고 의무자가 미신고 및 거짓 신고한 경우 1억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
형사처분 | 미신고와 허위신고 자들 중, 모든 계좌의 최고 잔액 합계액이 5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최고 잔액의 20%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 부과 |
자료: 법안 내용 요약, 참조: www.hhlee.com
정책평가: 명분은 정당하나 실효성과 그 동기에 의구심
국세청장의 공평과세에 대한 의지는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이에크는 법의 지배에 관한 자유주의의 원칙으로서 3 가지 측면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평과세와 예외 없는 규정은 동일한 의미가 아니지만 국세청장이 말한 공평과세는 아마도 예외 없는 규정을 의미하는 듯하다. 국세청장의 지론인 ‘민주화된 시장’ 개념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금융실명제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거래에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는 정당한 명분을 갖는다.
1. 실효성의 강한 의문
이러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 도입에 선뜻 찬성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며, 도입 동기에 대한 순수함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가 국내에 정착된 지 꽤 오래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IT 강국이기 때문에 국내의 모든 거래가 전산망에 촘촘히 잡힐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허명이나 차명의 금융거래를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차명계좌가 가능함이 몇몇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다.
강력한 행정조직과 전산망 구축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거래에 대한 실명제도 허점이 있는데, 국가 간의 정보 교환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금융계좌 실명제가 신고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세청은 5,700만 개에 이르는 해외기업의 재무자료와 2만 개에 이르는 국내기업의 재무자료 일체를 토대로 ICAS를 구축하였고 이를 통해 해외 금융거래의 일체를 입체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재산을 해외에 은닉하고 소득세를 탈루하겠다는 지능적인 기업이라면, 누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이러한 통상적인 자료에 이를 바보스럽게 담겠는가? 금융거래에 관한 국가 간의 정보 교환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것은 불가능하다.
소득을 정직하게 신고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의 경우만 아니다. 누구라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소득을 신고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신고하려 한다. 독일은 통일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이자 소득세를 신고에 의해 부과하던 것을 원천 징수하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 소득을 정직하게 신고한 자는 대상자의 20% 정도에 불과하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30년 넘게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를 실시하였으나, 통상적으로 전체 계좌의 20% 정도만 신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심약하거나 제도를 교묘히 피해나갈 능력이 안 되는 또는 세금 납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소규모 거래자만 성실히 세금을 납부할 것이다. 공평과세라는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지며, 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우리의 조세제도가 형평성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2. 정책 도입의 동기에 대한 의구심
그래서 우리는 이 제도 도입의 동기에 의구심을 보내는 것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해외금융거래의 미신고자나 허위신고자는 형사처분을 받는다. 형사처분은 개인에게는 인격적으로 기업에게는 도덕적으로 타격을 주어, 기업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국제화 추세에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것의 실효성은 그다지 없기 때문에, 특정 기업의 해외 금융계좌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정권의 기획 조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정권의 눈에 벗어나는 기업에게만 형사처분이라는 위협으로 이 제도의 칼날을 겨냥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정권은 기업을 요리할 수 있는 또 다른 조세 수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제도 도입에 의혹의 시선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3. 외국인 국내투자의 위축 가능성
국세청 자료와 이혜훈 의원의 법안 발의 배경에는 선진 국가들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실시 여부는 불확실하다. 미국도 지난 해부터 사면령을 앞세워 자진 신고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였을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막대한 재원 조달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미 국세청의 예산을 5.2% 증액한 것도 재원 조달을 위한 세원 발굴과 이의 양성화를 위한 조세 행정 조직의 강화차원에서다. 거의 대부분 국가들이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이제도를 강력히 밀어붙이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국내에 투자하여 국내 상법에 의해 등기를 마친 외국 기업은 내국 법인이 돼 동일한 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4. 해외 금융거래 신고제 도입 심사숙고해서 결정
명분이 없는 제도는 없다.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에 큰 의문이 들고 오히려 불공평 과세를 조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정권의 도구로 전략할 수 있는 데다 해외 기업의 국내투자를 주저하게 할 것이 예상된다면, 그 제도는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 도입은 그래서 심사숙고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배진영 / 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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