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농업지원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업관련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파악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논의돼야한다. 이에 더해 정부의 정책도 그 지원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관한 사회적인식이 뒤따라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기에서는 다음의 주제에 관해 논의하려 한다.
1. 농업, 농민, 농촌의 세 가지 주제가 뒤섞여 있는 농업관련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2. 농업관련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3. 농업에 관한 사회적 인식에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II. 농업관련 문제
“농업관련문제”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리는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를 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순위와는 관계없이 편의상 번호를 붙여 보았다.
1. 농가의 소득이 낮다.
2. 쌀값을 비롯하여 농산물 값이 국제시세보다 몇 배씩이나 비쌈에도 생산비에 비해 싸다.
3. WTO 체제 하의 FTA를 포함한 무역자유화 추세는 우리 농업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4. 식량안보가 위태롭다.
5.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6. 농촌의 문화, 교육, 의료 등의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7. 농업은 공익기능이 많고, 농자천하지대본이므로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외에도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위에 열거한 문제점들이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농업관련 문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중첩되고 혼재된 복잡한 문제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만을 해결하려 하면 다른 문제에는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 농업문제도 제한된 자원이라는 제약조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농업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이루고자 목표하는 바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수지맞는 농업, 살기 좋은 농촌, 행복한 농민, 값싼 식품, 식량안보, 높은 농산물가, 높은 농가소득, 농외소득의 증가, 농업생산성 향상, 농업경영기술개발 보급, 농산물 증산, 국가 경제발전, 낮은 생계비, 환경보전 및 개선, 경제의 국제경쟁력증진, 농업경영규모 확대 등.
그런데 이들 목표들이 서로 상승효과가 있는 것도 있고, 인과관계가 있는 것도 있는 반면, 어떤 경우는 상충관계에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자면 높은 농산물가격은 농가경제에는 도움이 되지만 낮은 생활비나 경제의 국제경쟁력 또는 값싼 식품과는 상충관계에 있다. 따라서 이들 목표들의 관계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은 목표들의 위계구조(hierarchical structure)를 정리한 것이다. 이 구조도를 보면 위계체계의 정점에는 이중사각형 안에 “행복한 농민”과 “식량안보” 두 개의 목표가 있는데, 여기서 농민이 행복해 지는 것과 식량안보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궁극적인 목표인 살기 좋은 농촌에서 높은 소득을 누리며 살아야 할 행복한 농민을 위해 어떠한 선행목표가 달성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살기 좋은 농촌은 그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고, 높은 농가 소득은 농업자체가 수지맞고 농외소득도 늘어나도록 해 주어야 성취가능 하다. 그리고 농외소득의 증가나 농업이 수지맞기 위해서도 국가 경제가 발전해야하며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식품 값이 싸져야 한다. 값싼 식품은 농산물 증산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나, 우리나라의 제한된 경지면적과 높은 생산비 때문에 국내 증산을 통한 값싼 식품 목표 달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한계가 있음에도 주어진 여건아래 농업생산성 증대를 통한 농산물의 증산은 시도돼야한다. 생산성의 증대는 생산비를 절감하고 농가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농업생산 또는 경영기술이 개발되고 보급돼야하며 농업경영규모가 확대돼야한다.
이 구조도에서 특히 다른 요소로 향한 화살은 있어도 화살을 받지 않는 타원형내의 요소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맨 아래에 있는 “농업경영규모확대”, “농업기술 개발보급”, “높은 농산물 가격”과 위의 옆에 있는 “농촌환경개선”등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분야이다. 농업경영규모확대, 농업기술개발보급, 높은 농산물 가격은 분명 농산물 증산과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하기란 수입장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입장벽의 유지는 WTO시대와 FTA를 체결해 가는 터에 어려운 일일뿐더러 국가경쟁력을 위해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물론 이들을 피해가며 농가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직불제를 활용하고 있지만 그마저 개방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단기적 조치일 뿐 장기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이란 길게 보면 “농업기술 개발보급”과 “농업경영규모확대” 그리고 “농촌생활환경 개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III.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가. 농업기술 개발 보급
농업기술개발 보급이란 농업생산기술뿐 아니라 농장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련된 기술을 개발 보급하는 일이어야 한다. 농민은 농장에서 생산만 하는 농사꾼이 아니라 농산물의 수확 후 저장, 가공, 포장, 운송, 홍보에 이르는 모든 일을 경영 관리하는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농업관련 연구개발 및 교육은 과거에 전통적으로 있었던 “상록수”또는 “흙과 함께”, “농민을 위해”라는 태도에서 탈피해 소비자의 일까지 염려하는 마케팅의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를 생각하는 지원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수입되는 농산물이 있음에도 소비자로 하여금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우리농산물을 사도록 제품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도 농업인의 몫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몸이니까 이 땅에서 생산된 식품이 몸에 좋다는 식의 신토불이(身土不二)같은 주장은 그 설득력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설득력도 없다. 국산 농산물이 그 안정성, 신선도, 품질에서 수입품에 비해 더 좋다는 뜻의 신토불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저농약 농산물 생산기술, 이들의 제조, 포장, 가공, 수송, 홍보기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저농약 생산을 위해 GMO생산물에 대한 공포심조장 대신에 GMO에 관한 연구개발에도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 농업경영 규모 확대
한국농업의 경쟁력은 그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많다. 경영규모가 커지면 기계화에 유리하고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살아나 생산비가 낮아져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 여기서 말하는 경영규모는 농지 소유규모가 아니라 경영규모를 의미한다.
농촌 공동화 또는 인구의 고령화가 계속 진행되는 것을 많이 염려하고 있으나 농지 임대차의 원활화, 경자유전법칙의 탈피 등이 진행됨에 따라 농업경영의 노하우가 있는 젊은 새로운 스타일의 농민들이 농업에 등장해 일어나는 변화를 선도해 나갈 것이다. 이런 일들이 정부의 힘이 아닌 시장의 힘에 의해 일어나도록 제도적 규제를 풀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타파되어야 할 제도 중에 중요한 것이 농지제도이다. 농지는 농업생산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중요한 요소인 농지에 관련된 현 제도를 보면 우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과거의 낡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헌법 121조에 따르면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민만 소유할 수 있도록 “국가는 경자유전 원칙달성에 노력해야하며 소작제도는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농지법 (6조2항과 7조2항, 22조7항)에 예외규정을 두고는 있지만 경자유전의 원칙과 소유상한 제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규제들은 농산물 증산을 도모하고 수탈당하는 소작농의 재등장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규제가 농산물 증산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된다 하더라도 전체 경제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면 그런 규정의 수정은 바람직한 것이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옷을 큰 것으로 바꾸어 입듯이 사회제도도 경제 여건이 변함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마치 주식회사의 사장이 주식은 하나도 없어도 주주들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아 회사를 경영하듯 농업경영전문가가 농업을 경영하는 일은 결코 불법일 수 없다. 더구나 현재 순수자작농의 비율이 27%에 불과한 터에 이는 반세기 전 농지개혁전의 35%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잘 지켜지지도 않는 경자유전 원칙이 농업발전에 걸림돌이 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시장의 힘을 인정하여 임차농을 합법화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밭가는 사람이 땅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보다 “경영하는 사람이 땅을 사용한다.”는 경자용전(經者用田)의 원칙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 농촌생활환경 개선
농촌생활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도시와 농촌이라는 도농양분(都農兩分)적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도농불이(都農不二), 즉 “도시와 농촌은 하나다”라는 표어를 농협이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로 내세울 정도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매우 정적(靜的)인 사회였다. 그래서 사투리와 문화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차이도 심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교통과 매스컴이 발달된 시대에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전국이 일일생활권(一日生活圈)일 정도로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는 도농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향학열 또는 교육열이 강한 우리 문화 속에서 농촌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의 질이 어떠할까가 큰 변수이긴 하다. 그러나 이문제도 우리나라의 대입관련제도의 변화와 농촌에 대한 겨육투자 확대, 교사들의 농촌지역 근무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농촌환경 개선을 위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은 개인 농민이 하기 어려운 농촌의 도로망, 교육시설, 의료시설, 문화시설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투자를 확대하는 일이다. 즉 정부는 농업생산, 가공, 유통에 필요한 기계, 시설, 설비 등에 대한 직접적 지원보다는 농민 각자가 하기 힘든 기술개발, 교육 등에 투자하고, 경영규모가 확대되도록 제도적 보완을 해주고 농촌환경이 좋아지도록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 농촌의 인프라(Infrastructure)확충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외에는 농민이 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V. 필요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 외에도 정부의 이러한 지원이 성공적으로 집행되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시민들의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정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문제 즉 그것이 경제문제이건 사회문제이건 그 해결책은 정부가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강하다. 아마 그것은 우리들이 왕권사회에서 수세기를 살다가 일제식민시대를 겪고 난 후, 민주공화제도를 한다면서도 6.25전쟁 등의 수행을 위해 정부가 전부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탓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쓰는 돈은 모두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자칫하면 잘못 쓰여 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1994년 UR타결에 대비해 구조개선을 한다며 2004년 6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 농어촌특별세를 신설했다. 그리고 구조개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10년이 흐르자 다시 그 과세시한을 2014년 6월말까지 10년 더 연장했다. 정부가 하는 일은 필요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는 사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시장의 힘을 염두에 두고 정부의 지원을 논의해야 한다. 시장이 주(主)가 되고 정부가 부(副)가 돼야 한다. 즉, 정부의 지원도 한국의 농업이 시장경제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지 시장에서 죽을 산업을 영양제의 투여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지 않을 것이다.
둘째, 농자천하지대본에서 경영자천하지대본(經營者天下之大本)으로 생각이 바뀌어야한다. 과거에 농업(農業)은 오늘날처럼 여러 산업가운데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산업이다시피 했고,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은 당시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에 농업도 하나의 산업이고 농가는 하나의 경영단위(enterprise)이다. 농민은 경영가(entrepreneur)이다. 이런 태도로 임해야 농업에서도 벤처산업으로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농업은 성업(聖業)이 아니라 산업(産業)이라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농업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이 바뀌어야 농업관련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셋째, 식량안보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한다. 식량안보를 위해 식량재고를 쌓아두고 있어야 할 것인가는 재고해야 할 전략이다. 그리고 식량을 자급자족 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정책은 아니다. 북한의 식량 자급률은 높다. 북한의 일인당 식량생산은 남한의 것보다 많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가를 알면 자급률의 제고가 식량정책의 성공은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자급자족적 영농을 할 때 농가가 생업(生業)으로 농업을 영위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구차 했었던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활이 오늘날처럼 좋아진 것은 비농업분야가 벌어들인 외화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여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식량문제는 농업이 아닌 비농업이 해결했다고 볼 수도 있다.
농약의 무분별한 살포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어찌 보면 농업생산 활동을 안 하고 자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수목과 늪지가 농지를 뒤덮어 오히려 환경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반론에도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휴전직후 과거의 농경지와 농촌마을이 그대로 50년간 방치된 채로 DMZ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그에 관한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이곳이 자연그대로의 상태로 방치되어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어 그 환경이 어느 곳에 비해 깨끗하다. 농업의 환경보호라고 하는 공익적 기능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농업의 환경파괴 가능성 때문에 자칫하면 자멸적(自滅的:self defeating)주장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농업계는 식량안보론, 농업공익론 등에 의존하여 특별대우만을 기대하기보다 농업 스스로 하나의 산업으로서 홀로서기 자구책을 강구하는데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V. 맺음말
농업관련 문제해결을 위해 분명 정부의 역할은 있다. 그것은 나누어 주기 식, 보호해 주기식의 지원이 아니라, 최대한 농업에도 시장의 기능이 작동되도록 그 주변의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함을 의미한다. 그 첫째가 개개농민이 하기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이다. 둘째는, 농업경영규모가 커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정비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는, 농촌생활 환경개선을 위해 도로, 교육시설, 의료 문화 시설 등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사회전체의 농업에 관련된 인식이 변해야 한다. 그 첫째가 정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하고, 둘째가 “농자천하지대본”에서 “경영자천하지대본”으로 바뀌어야 하며, 셋째는 식량안보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매달려 정부지원에 의한 비효율적 농민, 농장이 유지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이경원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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