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의 융합이란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방송과 통신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양 부문에서의 독립적인 수직구조가 점차 콘텐츠, 네트워크, 단말기 부문으로 재편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과거에는 방송과 통신 부문에서의 콘텐츠ㆍ망ㆍ단말기가 서로 명백하게 구분되었었으나 이제는 콘텐츠 융합, 망 융합, 단말기 융합 등이 전개되면서 양 부문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네트워크 분야에서 케이블 방송망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과 인터넷전화 서비스가 제공되고, 통신망을 통한 IPTV 서비스, 휴대전화 동영상서비스 등이 제공되는 것과 같다. 단말기 부문에서는 TV, 전화기, 컴퓨터를 합쳐놓은 듯한 DMB폰, HSDPA 단말기, Wibro 단말기 등이 출시되고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도 방송 또는 영상 프로그램이 중요한 인터넷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고, 기존의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쌍방향 데이터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과 통신 분야의 업무는 지금까지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등으로 분산되어 서로 다른 정책 및 규제의 틀이 양 분야에 각각 적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에 대하여 중복규제가 발생하거나 규제기관의 불분명으로 인해 신규서비스의 도입이 지연되고, 융합서비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왔다. 법과 제도가 현실을 못 따라가면서 융합서비스 분야의 신규투자가 지연되거나 사업기회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7월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를 출범시켰으며, 융추위는 이후 3개월간 약 30여 차례의 논의를 거쳐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기구개편방안을 도출하였다. 새로 출범하게 될 통합기구는 앞으로 방송과 통신 분야의 규제업무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2. 방송통신 융합의 주요 쟁점 1)
(1) 융합서비스의 성격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의 성격을 놓고 두 가지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융합서비스가 기존의 방송 및 통신서비스의 단순 결합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융합서비스의 일부 기능이나 측면을 방송법에 의한 방송서비스 또는 통신법에 의한 통신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PTV의 경우 VOD(주문형 비디오)와 인터넷서비스는 통신서비스로 분류하고, 방송프로그램 전송과 데이터 방송은 방송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시각은 융합서비스가 기존의 방송 및 통신서비스와는 다른 새로운 서비스라고 본다. 즉, 융합서비스는 선택성, 쌍방향성, 비동시성, 공간적 제한성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방송으로 볼 수 없으며, 융합서비스의 다양한 구성요소인 방송, 인터넷, VOD 등을 통합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각은 ‘방송이 다수를 대상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임’을 강조하는 입장으로서 방송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면, 두 번째 시각은 ‘방송이 일방향 전송서비스임’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통신계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2) 사업(자) 분류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인해 기존의 방송사업(자)과 통신사업(자)으로 분류되던 것을 어떻게 재분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사업(자)으로 3분류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기존의 종합유선방송 관련사업자를 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 SO(System Operator, 종합유선방송사업자), NO(Network Operator, 전송망사업자)로 구분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서 KT의 네트워크 지배력이 콘텐츠 부문으로 전이되는 것을 우려하여 방송계가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방식은 방송사업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이고, 기존의 방송사업자가 플랫폼 사업을 계속 주도하는 데 유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립되는 주장은 방송통신 관련사업을 네트워크(전송) 사업과 정보(콘텐츠) 사업으로 2분류하자는 의견이다. 이는 기존의 통신사업을 기간통신사업과 부가통신사업으로 구분하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서 통신사업자에게 익숙한 분류방식이고, 기존의 기간통신사업자가 계속해서 양 부문을 모두 주도하는 데 유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방송위원회는 기간통신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첫 번째 분류방식을 주장하고 있고, 정보통신부는 통신사업자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두 번째 분류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3) 규제의 강도
방송ㆍ통신 분야에 대한 규제의 강도와 관련해서도 두 가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규제완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즉, 현재의 방송ㆍ통신 관련법규가 매우 추상적이고 상위법의 법률적 근거가 미약한 경우가 많아 보다 세밀하게 다듬어져야 하며, 방송과 통신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청자 및 이용자 보호와 공정거래 관련규정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재의 규제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하여 경쟁이 오히려 저해되고 있으며,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촉진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방송분야에서의 진입규제와 행위규제가 대폭 완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방송계는 대체로 방송의 공공성을 강조하여 규제의 보완 내지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통신계는 경쟁촉진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여 규제완화를 주로 주장하고 있다.
(4) 통합기구의 조직과 기능 2)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는 통합기구 개편안을 3개 안으로 압축하였는데, 이는 (i) 통합위원회(안), (ii) 순수 규제위원회-독임제 부처 분리(안), (iii) 규제ㆍ정책 위원회-독임제 부처 분리(안) 등이다. 통합위원회(안)은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방송ㆍ통신 관련기능 전반을 범부처적으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통합기구의 형태는 방송의 독립성 및 공정성 보장을 위해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 구조로 하되, 산업진흥적 측면의 보완을 위해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즉, 통합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하되,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하고 부위원장은 차관급으로 하는 등 위원간 계서적(hierarchy) 성격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순수 규제위원회-독임제 부처 분리(안)은 방송ㆍ통신과 관련한 기능을 크게 규제기능과 정책ㆍ진흥기능으로 구분하여, 규제기능은 대통령 소속의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에서 수행하고, 정책 및 진흥기능은 독임제 행정부처에서 수행하는 방안이다. 순수규제위원회(안)은 독임제 부처가 미래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산업진흥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규제의 정책적 속성과 집행적 성격간의 구분이 모호하여 규제의 현실적합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세 번째로 규제ㆍ정책 위원회-독임제 부처 분리(안)은 방송ㆍ통신과 관련한 기능을 크게 규제ㆍ정책 기능과 진흥기능으로 구분하여, 규제ㆍ정책 기능은 대통령 소속의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에서 수행하고, 진흥기능은 독임제 행정부처에서 수행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규제정책을 합의제 위원회에서 담당함으로써 공정성 및 독립성 확보가 가능하고, IT산업 등 산업진흥에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점 등을 감안할 때 독임제 부처에서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융추위는 이상의 3개안 중에서 통합위원회(안)을 다수의견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각 부처의 콘텐츠 관련 기능을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논의하고, 정통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우정기능은 현 체제를 유지토록 하되 추후 검토하며, 방송통신의 내용 및 윤리 등에 대한 심의기구는 민간기구로 분리할 것을 건의하였다. 국무조정실은 융추위의 건의를 근간으로 법안을 마련하여,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통합기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3. 바람직한 기구개편 방안 및 융합서비스 규제방안
(1) 기구개편 방안
융추위의 기구개편 논의와 통합위원회(안)에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현재의 기구개편 논의가 전체적인 정부조직 개편 논의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1년 남짓 지나면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이 있을 것인데, 그때 통합기구 개편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그때까지는 융합서비스가 더 이상의 지체나 중복규제 없이 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가칭 방송통신위원회를 한시적으로 구성하여 융합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담당케 하면 될 것이다. 합의도출이 쉽지 않은 기구개편에 시간을 끌면서 융합서비스를 계속 지연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체적인 정부조직 개편문제와 분리되어 융합기구 개편을 근시안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는 통합기구의 독립성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의 방송위원회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위원회이다.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9인의 위원 중 3인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하고, 3인은 국회 문광위의 추천의뢰를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의 정치적 독립성은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추위가 건의한 대로 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든다면 동 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은 더욱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셋째는 통합위원회가 정책기능과 규제기능을 모두 수행한다는 점이다. 본래 정책결정자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마음으로 바람직한 정책을 입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조직에서 정책기능과 규제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경우 정책결정자는 가능한 한 규제담당 부서의 일과 권한이 축소되지 않도록 정책을 입안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정책이 규제를 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책이 규제에 이끌려 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통합위원회의 탄생과 함께 방송, 통신, 융합서비스 분야의 규제완화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한 통합위원회가 규제기능뿐만 아니라 산업진흥기능도 함께 담당한다는 것도 비정상적이다. 이는 마치 축구경기 심판이 축구팀 후원회장을 겸임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통합기구의 조직형태 문제다. 융추위는 전술한 바와 같이 통합기구의 형태로서 합의제 행정기구인 위원회 구조에 독임제적 요소를 가미한 혼합형 조직을 건의하고 있다.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산업적 추진력을 가진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통합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추진력이 뛰어난 독임제 부처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매우 비효율적인 조직이 될 공산이 크다.
필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독립 규제위원회’의 설립이다. 방송ㆍ통신과 관련된 규제업무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규제위원회에서 전담하고, 관련 산업정책ㆍ진흥업무와 사회문화정책은 각각 별도의 산업정책 총괄부서와 사회문화정책 총괄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통합기구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정책ㆍ진흥기능과 규제기능의 통합에 따른 폐단을 없앨 수 있다. 이러한 독립 규제위원회의 설립은 차기정부의 전면적인 조직개편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시안적인 통합기구의 설립과 설립 후의 땜질식 후속 조직개편이 가져올 파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융합서비스 규제방안
현재 방송법에 의한 방송규제가 통신규제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규 융합서비스의 방송적 측면을 모두 방송서비스로 확대 해석하여 규제하는 것은 융합서비스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신규 융합서비스를 기존의 서비스 분류기준에 맞춰 규제하기보다는 융합서비스의 발전추이를 보아가며 소비자의 서비스 인식이나 사업자의 판매방식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분류기준 및 규제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적절한 분류기준 및 규제 틀이 형성되기 전까지의 과도기에는 규제중복 또는 규제기관의 경합 등으로 서비스 도입이 지연되거나 사업기회가 상실되지 않도록 하 는 것이 중요하며, 규제기관의 통합과 법ㆍ규제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신규 서비스의 도입을 미루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업자 분류방식에 있어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2분류 주장과 3분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기구에서 복수허가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면 분류방식을 둘러싼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즉, 단기적으로는 사업자 분류를 3분류로 하되,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복수허가 또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복수허가를 허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2분류 방식을 수용할 수 있다. 이후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영국에서와 같이 네트워크(전송)사업과 정보(콘텐츠)사업으로의 분류체계 변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규제의 강도와 관련해서는 주요 선진국에서와 같이 기존 사업분야에서의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신규 서비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 또는 자율규제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내용심의에 있어서는 방송의 공공성 차원에서 또는 그의 연장선에서 규제를 지속적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최충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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