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31조 ④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는 특히 ‘대학’을 적시하여 ‘자율성’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법률이 정하는 바’라는 단서는 붙어있지만 자율성은 대학에 부여된 ‘헌법적 기본권’임이 분명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학에서는 이러한 헌법적 권리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학은 신입생 선발, 입학정원, 학사일정, 커리큘럼, 학과 신설 및 폐지 등 많은 부분에서 정부 및 교육당국에 의해서 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대학의 신입생 선발전형에 대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조차 간섭하고 있다. 연초 서울대의 통합논술고사에 대해 대통령까지 나서 ‘나쁜 뉴스’라고 논평한데 이어 정치권이 “서울대를 조져야 한다,” “서울대를 초동 진압해야 한다”는 등 온갖 막말로 대학을 비난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교육부는 소위 ‘입시위주 교육 탈피’ 또는 ‘중등교육 정상화(?)’의 명분하에 매년 ‘대학입시기본계획’을 통해 대입전형을 규제·감독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간섭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 계획을 통해서 입시전형 시 준수해야할 수능 및 학생부 반영 비중의 하한선, 논술 비중의 상한선 등을 제시하고 있다. 논술과 관련해서는 ‘이러이러한 형태의 논술은 된다’ ‘안 된다’ 등 사실상 논술 가이드라인도 제시되고 있다. 대학이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거부할 수는 없다. 각종 행·재정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으로서는 싫든 좋든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대학의 입학전형은 획일화되고 있다.
교과서, 교과과정, 심지어 교사(校舍) 등 학교시설까지 표준화·획일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입시전형까지 획일화됨에 따라 교육에 대한 국가독점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명분으로 입학전형 통제와 그에 따른 획일화는 원래의 명분인 중등교육 정상화를 더욱 멀어지게 하고 고교교육의 입시학원화를 가속시키는 ‘원치 않은 결과의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대학을 더욱 서열화시키고 서열화의 고착은 다시 고등학교의 입시위주 교육을 강화한다. 대학에 대한 입학전형 규제는 그 목적과는 전혀 상반된 원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
미국 대학의 신입생 선발전형
미국 대학의 경우에는 설립에서 운영까지 자율이 원칙이다. 대학의 설립조차 사실상 신고제에 가까운 준칙주의에 의한다. 미국에서 대학의 자율성은 곧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입생 전형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대학협의회(The College Board)가 발간한 「입학 의사결정 모형(Admissions Decision-Making Models)」보고서에 따르면 미 대학의 입학전형 방법은 모든 대학이 각자 독특한 모형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미 대학의 입학전형 방법은 미 대학의 수만큼 다양하다.
미 대학들은 일반화된 원칙이나 표준적인 기준을 가지고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대학의 설립이념이나 교육목적에 따라 나름대로의 사정기준을 만든다. 통상 입학사정은 원서, 내신자료, 표준화된 시험(SAT/ACT)을 포함한 자료를 요청하고, 이러한 자료에서 계량적 요소와 질적 요소를 병행하며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간과되는 사실 중 중요한 것은 미 대학의 입학 사정이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즉 학생 수의 증감에 따라 입학 사정의 정책과 기준도 매년 바뀐다.
대부분의 미 명문대학들은 ‘입학사정관’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입학사정관은 대학에서의 신입생 전형 기준을 매년 업데이트하고 지원자들의 서류를 검토하여 해당 학생이 그 대학사회에 어울릴 수 있는 학생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일례로 미 하버드 대학교은 30여명에 달하는 입학사정관을 두고 있다. 입학사정관은 이상적인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한 다양한 평가자료와 기준을 정한다. 평가 과정에서 사정관들은 객관적이고 계측가능한 자료뿐만 아니라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출신학교 그리고 스포츠 예능 등을 포함한 과외활동 그리고 심지어는 학생의 개인적 경험까지 고려한다.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의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안젤라 엄 (Angela Suh Um)이 쓴 「하버드大, MIT大 前 입학 사정관이 쓴 미국 명문대 진학 가이드」에 따르면 고등학교 수석졸업생보다 오히려 학교 운동부원 또는 운동부 주장이 양 대학 입학에 훨씬 유리하다는 내용이 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대학에 대해 “부정입학이다.” “입학사정의 기준을 밝혀라.” ··· 등 학생·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학생·학부모들은 대학의 입학 전형에 대해 절대적으로 권위를 인정한다. 전형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없고 또한 요구한다고 하여도 대학이 이를 공개할 법적 책임도 없다.
국민대학교 디자인학부의 입학전형 혁신
국민대학교 디자인학부는 독특한 입학전형의 성공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대는 미술 분야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대를 디자인 분야로 특성화하기 위해 국민대는 입학 전형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그전까지 미대 입시의 일반적인 관행은 ‘데생’이 중심이었다. 간혹 채색화를 입시도구로 사용하는 학교도 대부분 정물 수채화를 채택했다. 그러나 다른 대학의 미대들이 기존의 관행적인 입시 방법을 고수하고 있을 때 국민대는 과감히 ‘발상과 표현’이라는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즉 상당히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시제(試題)를 주고 이를 마음껏 창의적으로 표현해보라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은 주어진 사진자료 또는 정물자료를 참고해 ‘책으로 만든 집.’ ‘깨진 어항에서 물고기를 살리는 방법.’ ‘1+1=∞’ 등과 같은 난해한 주제를 묘사해야한다. 자유로운 생각을 마음껏 펼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표현 도구의 제한도 과감히 없앴다. 연필이나 물감은 물론이고, 파스텔, 색연필 어떤 것을 사용해도 좋도록 했다. 개성과 창의가 필수인 21세기 디자인 산업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입시전형의 변화에 따라 구속받기 싫어하고 독특한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국민대 미대에 대거 응시했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대 미대는 적어도 디자인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국민대학교 디자인학부의 전형방식은 그 전형방식 자체가 수험생에 대한 ‘질적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추상적인 시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해당학생들은 자신의 생각, 창의성, 개성을 드러내게 된다. 데생이나 채색 등 표현능력이 수능·내신에 비유할 수 있는 ‘양적 평가’라면 발상은 분명히 질적 평가인 것이다. 이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능력, 순발력 등 계량화할 수 없는 학생의 특성을 평가하는 방식인 것이다.
비합리적 ‘한줄 세우기’ 대입전형
예체능계를 제외한 현행 대입전형은 기본적으로 내신·수능·논술 및 면접 3가지 평가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선발의 객관성이 너무나 강조됨에 따라 내신·수능 등 계량화될 수 있는 요소들 외에 질적인 요소의 반영은 극히 미미하다. 앞서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미국의 대학처럼 다양한 주관적 평가요소를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적평가를 반영할 수 없다면 1등부터 몇 등까지는 서울대 의대, 그 다음 몇 등까지는 서울의 다른 의대, 지방의대, ··· 다음의 몇 등까지는 서울공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 식의 서열화는 결코 깨질 수 없다. 서울대 법대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은 서울대의 다른 인문·사회계열 학과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대학의 인문·사회계열의 학과에 당연히 입학가능하다. 예컨대 서울대 법대에 입학 가능한 학생은 서울대 경제학과, 인천대 경제학과에도 ‘당연히(?)’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획일적인 신입생 선발 전형제도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응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대 졸업생의 사회적 기능과 기여가 경제학과 졸업생의 그것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입생 선발 전형의 기준은 동일하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다. 더욱이 법학과 경제학은 학문의 본질적인 내용도, 추구하는 바도 극히 다르지 않은가?
이러한 불합리에 비해 오히려 미술대학·음악대학의 선발 전형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인다. 서울대 미대 합격자가 홍대·국민대 등 다른 대학교의 미대입시에서는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홍대 미대 졸업생의 평판은 서울대 미대 졸업생의 평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민대 디자인학부 졸업생의 평판은 서울대나 홍대 졸업생에 오히려 앞 설 정도다. 예체능계 대학 입시와 관련하여 물론 평가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간혹 부정·비리 문제도 제기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대·음대의 선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없었다.
대학 선발전형의 자유화와 다양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 대학의 경우,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준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그러한 기준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SAT의 경우도 그러하다. 몇 년 전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SAT 만점(2,400점)을 받은 학생이 탈락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입시제도에 젖은 사람들은 “어이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 학생이 만점을 받기 전 2,390점의 성적을 받았는데 기어이 만점을 받기 위해 SAT를 한 번 더 치러 오히려 불이익을 초래했다. 스탠포드대학교의 입학사정관은 “쓸데없는데 집착하는 이런 학생은 대학생활 중 사소하고 엉뚱한 일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불합격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정관이 학생을 보는 눈이 틀릴 가능성도 있다. 다른 사정관이었다면,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 자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탠포드의 사정관은 입학거부를 결정했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의 대학입학전형에서 SAT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최종SAT성적에 이르는 과정까지 고려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이러한 결정이 나왔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입학생의 자질을 평가하는 대학들의 기준이 다양하다면 학교교육은 오히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혼란스러울 정도로 기준이 다양하다면 특정대학의 기준에만 맞추어 준비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대학교의 입학전형 기준이 고려대의 그것과 매우 다르고, 또한 연세대의 기준이 이들 두 대학과 또 매우 다르다면 어느 한 대학만 바라보고 ‘입시도박(?)’을 걸 학생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비롯한 특정 소수 대학의 입학전형이 가지고 있는 ‘파괴력’을 감안할 때, 대학교 단위의 입학전형보다 단과대학 나아가 전공 또는 학과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신입생전형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특정대학교의 특정단과대학·특정학과를 목표로 전형을 준비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된다. 가령 고려대 법학과의 전형기준과 고려대 교육학과의 전형기준이 다른 것이다. 입학전형이 대학은 물론이거니와 전공별로 다양화된다면 특정대학교의 특정학과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필자에게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의 입학전형 방법을 제안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2박3일 정도의 심층전형을 제안하고 싶다. 전형기간 중 대학 수준의 난해하고 전혀 새로운 내용을 강의한 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테스트한다든지 팀 과제를 주고 협력하는 능력, 토론능력을 측정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수능이나 내신, 논술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질적인 요소를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내신이나 수능성적도 무시하지 않는다. 학생의 성실성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입학전형이 자율화된다면 모든 학과들이 ‘나름대로의 좋은 학생’ 선발을 위해 독특한 전형기준을 고안하고 경쟁할 것이다.
대입전형 자유화가 오히려 중등교육 정상화를 부른다
고등학교의 입시 위주 교육을 원천적으로 차단, 또는 적어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 대학의 학과별 전형 자율성을 제안한다. 이는 또한 그동안 우리 교육의 고질병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왔던 ‘한줄 세우기’를 깨뜨릴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인천대학교의 경제학과는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의 관점에서 1등을 선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관점에서 1등이 꼭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의 관점에서 1등일 수는 없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의 관점에서 1등은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의 관점에서는 50등 100등도 되지 못할 수 있다. 즉 대학들의 각과에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줄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개, 만개의 줄이 가능해진다. 누구도 이렇게 많은 줄 모두에서 1등을 할 수는 없다. 하나의 줄에서 1등이 되고자 한다면 다른 모든 줄은 포기해야 한다.
모든 대학이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한, 문제풀이 기술, 면접 기술 등 ‘기술’ 위주의 입시가 통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중등교육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학전형의 기준이 다양화된다면 이러한 기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교과과정을 충실히 가르치고 문제 해결의 ‘기술’보다는 문제 해결의 ‘능력’을 키우는 정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이 인천대학교의 경제학과의 전형에는 기준 미달로 떨어질 수 있는 입학전형의 대학별·학과별 자율화가 실현되어야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이 정상화의 방향으로 거보(巨步)를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조전혁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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