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과 금산법 전면 재검토해야

김영용 / 2006-07-28 / 조회: 5,948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조항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제24조의 금융계열사의 다른 계열사 주식 취득 제한 조항은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없는 상태에서 ‘효율’의 결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제어해야 할 논리적 타당성이 없으며, 현재와 같은 개방경제에서 ‘국내’만을 기준으로 경제력 집중을 평가하는 것도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두 조항은 모두 폐지해야 한다.

아래에서는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 조항과 주식 취득 제한 조항의 개정 연혁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본다.

1. 두 법률의 개정 연혁과 상호 관계

1986년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서는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았으나, 1992년 개정 법률에서는 예외 조항을 추가하여 이러한 규정을 완화하였다. 또한 2002년 개정 시에는 특정한 경우에 금융계열사가 보유하는 비금융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30%로 제한함으로써 금융계열사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였다. 특히 인수ㆍ합병의 경우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제11조 각호 3의 다에 규정하였다. 그러나 2004년 말에 개정된 법률에서는 2008년 3월까지 단계적으로 매년 5%씩 감축하여 15%로 제한함으로써 다시 축소하였다. 여기에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k%로 제한한다 함은, 금융계열사가 보유하는 계열회사의 주식 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의 수는 그 특수 관계인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를 제외한 자가 행사할 수 있는 주식 수를 합하여 그 계열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k를 초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금산법은 금융기관의 효과적인 합병과 전환을 목적으로 1991년에 제정되었다. 이후 1997년 1차 개정 시, 부실 금융기관의 정비, 금융기관의 청산 및 파산, 금융기관을 이용한 기업결합의 제한이 추가되었으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제24조는 제5장에 포함되었다. 제24조는 다른 회사의 주식소유 한도를 규정한 것으로서, 금융기관 및 그 금융기관과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20 이상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 이상을 소유하고 동일계열 금융기관 또는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속하는 기업집단이 당해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미리 재정경제원장관(현재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였다. 또한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를 승인할 때는 당해 주식 소유가 관련 시장에서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미리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2000년 개정시, 제27조와 제28조에 법률 위반시 금융기관의 임원, 관리인, 청산인 및 금융기관에 대한 벌칙 및 과태료 조항을 추가하였다.

이와 같이 공정거래법이 금융계열사가 보유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는 반면에, 금산법은 보유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산법이 금융계열사의 활동 범위를 더욱 제한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금산법 개정안은 5%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서는 강제 매각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어 금융계열사의 활동 영역을 더욱 제한하게 된다.

2. 문제점

(1) 경제력 집중 억제 문제

공정거래법과 금산법이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목적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계열기업 설립을 통해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억제 또는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집단에 의한 독과점화로 경쟁이 제한되면 소비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경쟁 조건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진입장벽 유무다. 정부의 진입장벽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소수의 기업이 남는다 하더라도, 이는 효율성의 결과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업의 수와 경쟁의 정도 간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더구나 요즈음 같은 개방화 시대에는 직·간접 대체재를 생산하는 외국기업이나 기업집단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으므로 국내 시장만 고려한 독과점 판단은 설득력이 없으며 국제적으로 보편적 타당성을 지닌 사항도 아니다. 그러므로 공정거래법이나 금산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력 집중 억제 개념을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금산법 개정안은 5%를 초과하는 지분은 강제 매각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경쟁의 저해 여부에 대한 검토마저도 아예 없애버리는 다분히 자의적인 것이다.

(2)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공정거래법과 금산법이 명시적으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금산분리)한다는 조항은 담고 있지 않지만, 금융계열사의 비금융계열사 지분 소유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금융자본의 일반산업 지배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02년 4월 27일 개정된 은행법에 의하면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은행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4(지방금융기관의 경우에는 100분의 15)를 초과하여 보유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1)

두 자본의 구분 여부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과 같이 두 자본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나라도 있으며, 스위스처럼 전혀 구분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1999년 개정한 금융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 이후 두 자본의 분리 원칙을 철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램(Gramm)은 금융현대화법이 통과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법은 10년 안에 다시 개정해야 할 것이고, 그 때 가장 중요한 쟁점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문제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타당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구분하는 데 대한 의문은 미국의 재무성 관료들이 먼저 제기하면서, 산업자본의 효율적 경영방식을 금융 분야에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스위스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업자본이 자신이 소유한 은행을 사금고로 이용하여 문제가 되었다는 사례는 아직 없으며, 오늘날에도 스위스 은행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한국에 바로 적용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신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두 자본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정책에 의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금융기관이 외국 자본 소유로 넘어갔으며, 그 결과 쓸데없는 국부유출은 물론 그 매각 과정에 관한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건전한 금융기관의 육성과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취지에서 제정된 금산법이 금융기관을 이용한 경제력 집중 억제 목적으로 건전한 금융기관의 활동을 도리어 억제하는 법률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3) 고객의 자금으로 계열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금융회사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높은 수익을 올려 고객에게 이익을 줄 수 있어야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금융회사든지, 어떤 우량 기업이 기업집단의 계열사든 아니면 독립 기업이든, 그러한 우량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즉,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라고 해서 그러한 기회를 박탈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어떤 금융회사의 자산 운용 현황을 알면서도 돈을 맡기는 것은 그 금융회사의 성과가 좋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장 평가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일부 은행이 부실화되었을 때 예금자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에 많은 돈을 맡긴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공정거래법 제11조의 각호 2에도 “보험자산의 효율적인 운용·관리를 위하여 보험업법 등에 의한 승인 등을 얻어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경우”에는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보험자산의 효율적 운용ㆍ관리를 권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고객의 자금으로 우량 계열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행위를 막아서는 안 된다. 효율적인 자산 운용의 결과로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을 이유가 없다. 또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통제주주가 계열기업들을 지배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도 논리적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의사결정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법이다.

(4) 재산권 침해 문제

주식의 취득을 제한하거나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식회사의 본질에 어긋난다. 주식회사의 원초적 형태는 기업가-자본가가 통제주주로서 경영을 관장하는 것이며, 경영권은 주식회사에 모아진 자산에 대한 재산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통제주주가 여타 주주의 위임을 받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해 자산을 운용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다.

(5) 이중 규제

보험업법 등, 현행 금융업법은 금융계열사가 타 계열사의 주식을 취득하는 데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험업법 제109조(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제한)는 “보험회사는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출자지분을 포함한다) 총수의 100분의 15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아래서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을 다시 제한하는 것은 이중 규제다.

(6) 적대적 인수ㆍ합병 문제

외국계 금융사나 펀드는 공정거래법과 금산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마당에, 국내 기업들의 우호 지분 취득과 취득한 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국내 기업들은 적대적 인수ㆍ합병에 더 쉽게 노출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영권 위기 시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국회 의결 사안이므로 당장 대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회 의결 시 국가신인도 하락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 자본의 국내 시장 참여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국내 자본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나, 국내 자본을 역차별함으로써 국부유출을 조장할 이유는 없다. 최근에 발생한 칼 아이칸의 KT&G 경영권 쟁탈 건은 외국 자본에 대해 국내 자본을 역차별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3. 제 안

공정거래법의 금융계열사 의결권의 예외적 허용과 제한에 관한 변천 및 금산법의 변천 과정을 보면 법률 제정 당시의 목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당면한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른 여론에 밀려 졸속으로 개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법률이 개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처음의 입법 취지나 새로운 조항의 추가로 사회 전체적인 이득을 증가시키는지 아니면 감소시키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거나, 검토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러한 법률이 시장에서 나타낼 성과에 대한 경제 분석의 부족으로 누더기 법률로 전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법 상의 의결권 제한은 완화되었다가 다시 옥죄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또한 금산법은 건전한 금융기관의 출현을 도와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 도리어 건전한 금융기관의 활동 영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이를 다시 더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조항은 상호보완적으로 금융계열사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을 촉진하여 소비자 복지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므로 ‘강한 자’를 억압하고 ‘약한 자’를 보호하는 법이어서는 안 된다. 즉, 공정거래법은 ‘경쟁’ 그 자체를 보호하여 촉진해야 하고 ‘경쟁자’를 보호하는 법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의결권 제한 조항은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명분으로 ‘강한 자’를 억압하는 법률이므로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금산법 제24조 역시 ‘강한 자’를 억압하는 법률이므로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금산법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처음의 입법 취지를 살려 금산 분리를 포함한 모든 조항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김영용(전남대 경제학부, yykim@chonnam.ac.kr)


1) 물론 은행법에서 말하는 금융기관은 한국은행을 제외하고 은행업을 하는 법인을 의미하므로 여타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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