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권 중심의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다

김광동 / 2006-04-17 / 조회: 5,822

I. 문제제기

현재 우리는 광역자치단체로 16개 시ㆍ도와 기초자치단체로 234개 시ㆍ군ㆍ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행정구역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8도 체제와 일본 식민지시대의 근대 행정조직편제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도-시ㆍ군-면-리(동)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간 우리 사회에는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라는 산업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진행되어왔고 극심한 인구이동과 재편을 겪어 왔다. 근대화에 따라 생활권이 확대되었고 거리 개념을 뒤바꾼 교통혁명과 정보혁명을 겪어왔음에도 농업중심적 행정구역 체계에는 이와 같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고, 최소 행정단위로서의 면(面)과 기초자치단체로서의 군(郡)의 역할과 비중이 급격히 축소되었지만 행정구역 체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야 하는 기본적 추세에 맞지 않게 지방행정 규모가 이상 과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행정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에 설정된 행정구역 체계에 주민들이 자신의 삶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생활권과 상위(相違)된 행정구역과 행정규모의 과도화는 결과적으로 행정 불편과 낭비를 초래함은 물론이거니와 지역간 이기주의를 발생시키고 행정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II.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

(1) 도(道) 및 면(面) 기능의 축소

근대 이전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서울과 5개 광역시를 제외한 도(道)는 각 지방 광역권의 행정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도청 소재지인 청주나 춘천이 충청북도와 강원도 전체를 각기 관할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굳이 도청을 중심으로 해서 도를 관할해야할 이유가 거의 소멸되었다. 교통체계와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충청북도의 제천이나 충주의 행정이 청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없어졌고, 강원도의 원주나 강릉에서 필요로 하는 행정업무가 춘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할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농업사회와 교통혁명이 있기 전에 설정된 도와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한 행정체계는 오히려 광역 행정의 불편을 야기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경우를 보더라도 의정부, 양주, 포천 등의 경기 북부지역민들은 단지 같은 도에 속해 있고 도청이 수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원까지 찾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전남의 광양과 여수시민이 전남에 속해있고 도청이 목포주변에 있기에 목표를 찾아가야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충북 충주나 제천은 행정적 사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을 청주가 아닌 주변의 큰 도시인 원주나 수도권에서 해결하고 있고, 강원도의 원주나 강릉 역시 춘천을 찾아가기 보다는 수도권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는 충주, 제천과 도청 소재지인 청주가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갖지 못하고, 원주, 강릉도 춘천과 상호 보완적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도와 도청이라는 행정적 사항 때문에 도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경남의 도청이 창원에 소재함으로써 불편을 겪었던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전남, 경북, 충남 등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도청 유치를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을 야기해 지역간 반목을 증폭시키고 있다. 울산과 유사한 규모의 다른 대도시인 부천, 성남, 수원 등이 독자적인 직할시를 요구하는 것도 도행정체계의 근본적 불합리에서 오는 것이다. 경상북도에서 구미, 포항, 안동 등이 대립하고, 전남도청이 목포 근처로 이전함에 따라 광양, 여수 등의 지역민들이 또 다른 불편을 겪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에서 지속적으로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결국 경기도청의 경기북부 분청을 의정부에 두게 된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의 결과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도와 도청소재지가 생활권과 상관없이 전적으로 행정적 필요만을 고려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적 의미의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현재의 광역 도(道)를 폐지하고 세분화해 생활권에 맞게 재분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도 차원에서 해야 할 일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일들도 대부분은 관련된 기초자치단체간의 협의체나 중앙 행정의 협조와 조정기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한강이나 낙동강을 둘러싼 행정 협의체나 남해안 혹은 서해안 등의 수질관리에 필요한 남해지역 자치단체의 협의체 혹은 서해지역 자치단체 협의체 등이 그것이다.

(2) 군(郡)과 면(面)의 인구변화

근대적 산업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인구변화가 야기되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농촌인구의 급감과 도시인구의 폭증이다. 따라서 지난 50여 년간 군과 면의 인구는 급격히 축소되어왔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군과 면이 여전히 동일한 행정단위로 기능하고 있기에 문제가 있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도 산하의 군(郡)은 약 10만 명 내지 15만 명 전후의 행정단위였다. 예를 들어 40년 전인 1966년을 기준으로 경북 예천은 16만 명, 경남 합천은 19만 명, 그리고 전남 장흥은 14만 명이었다. 그러나 약 35년이 흐른 2000년 기준으로 보더라도 예천, 합천, 장흥 등은 5만 명 수준으로 지속적 감소추세에 있다. 그 외의 다른 지역 군들도 대개 4만 명 전후이고 경북 영양군, 전북 장수군 등 많은 군들은 현재 2만 명 전후이거나 3만 명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과거 군 행정구역에 비해 그 인구수가 1/3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초 행정단위인 면(面)의 인구도 과거와는 너무도 달라져 있다. 1만내지 2만 명 전후의 인구를 가지고 있던 면이 현재는 불과 3천 내지 4천 명이 보통이고, 2천 명 전후의 인구를 가진 면도 무수하다. 예를 들어 영월군 하동면이 1만2천명에서 1천7백 명으로, 안흥면이 1만9천명에서 2천6백 명 수준이 된 것에서 보듯이 현재의 면 인구수는 과거의 약 1/5 수준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예를 보아도 현재 군(郡)의 인구 규모는 40년 전의 면(面)의 인구와 커다란 차이가 없을 만큼 현저히 감소했음을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군의 운영은 이러한 인구 규모의 변화에 관계없이 과거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대도시의 동(洞) 인구는 행정 편제상 군 지역의 면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인구수에 있어서는 면과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중계본동은 2만 9천명, 부산 광안1동은 2만 5천명, 그리고 대구 지산2동은 2만 8천명 등이다. 대도시 동의 인구는 보통 2만에서 3만 명에 달하고 있다. 대도시의 동은 같은 행정편제 단위인 도 행정구역인 면의 인구에 비해 10배에 달하고 동보다 오히려 한 단계 위의 행정단위인 군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곳이 무수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군의 행정체계는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확대일로에 있다. 인구 5만 전후의 군에 소속된 군청 공무원은 700여명 수준이다. 예를 들어 경북 의성의 인구는 6만 수준이나 공무원은 784명이다. 대도시 2개동의 동사무소 직원이 700명이 넘는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군(郡)이라는 행정규모 때문에 그런 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군과 면이라는 행정단위가 유지된다는 것은 군청과 면사무소의 유지뿐만 아니라 동급 행정체계에 필요한 경찰서, 우체국, 교육청에서부터 농협과 학교 등의 필요 시설이 구비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행정체계가 있기에 행정담당 기관과 공무원이 있고 공무중심의 인구를 통해 인구가 유지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정체계의 불균형과 낭비를 초래하고 행정구역상 군과 면이 있어서 군과 면의 행정체제를 유지해야하는 불합리와 비효율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교통체계의 변화와 생활권 변화

특히 교통체계의 변화는 도와 군의 생활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교통혁명은 과거의 생활권을 급속도로 확대시켜 면 중심 혹은 군 중심적 생활권을 보다 광역화시켰다. 이제는 면과 군이 중심생활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과 주변 중소도시가 연계된 형태의 생활권이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교통시설 및 교통체계상 군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고 일일 생활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로 30분이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도시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 자기 지역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은 군과 시를 포함하여 주변 도시나 대도시나 혹은 수도권으로 진출하여 해결하는 형편이다.

교통체계의 변화로 생활권 자체가 변화된 것이다. 예를 들면 강원도는 영동고속도로를 중심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는 경부고속도로 및 중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마찬가지로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는 점차 서해안 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교통체계에 따른 새로운 생활권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의정부, 양주 포천은 자기 생활권을 벗어나면 바로 수도권과 연결되지 수원과 연결되지 않으며, 충주, 제천도 생활권을 벗어나면 수도권이지 청주가 중심이 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강릉, 원주도 교통체계를 따라 가면 바로 수도권과 연결되지 춘천과 연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산업화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급속한 교통혁명으로 더 이상 농업사회에 맞는 생활권이 유지될 필요가 없게 되었고 교통체계의 변화로 기초생활권과 광역생활권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 그에 따른 생활권의 통합은 실제 많은 시군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통합이 그것이고, 충주와 중원군의 통합이나, 원주시와 원성군의 통합 등이 그런 예들이다. 생활권이 분리될 수 없는 곳이 행정상으로만 분리되어 운영되다가 결국 통합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권 중심적 통합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앞으로도 많이 발생할 것이다. 보다 광역화되고 보다 체계적인 행정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것은 주민의 입장에서도 현실적이고 보다 효율적이어서 좋기 때문이다.

III. 생활권 중심의 행정구역 재편의 필요성

행정구역은 결국 생활권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기초 생활권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와 군의 비중 축소 속에서 도와 군은 더 이상의 기존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재편의 방향은 도를 폐지하고 생활권을 같이 하는 시와 군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가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경기도는 고양, 의정부, 성남, 수원 등을 중심으로 4-5개의 생활권으로 재편하고 강원도는 춘천권, 원주권, 강릉권 등으로 재편되고, 경상북도는 안동권, 대구권, 포항권 등으로, 또 충청북도는 충주권, 음성권, 청주권 등으로 광역화해야 한다.

이미 정부에서도 1990년대 초부터 지방행정체계 개편에 관한 기본법을 준비해왔고 1999년도의 행정자치부 시안에 따라 2006년에도 지방행정재편을 검토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그 방향은 전국을 60여개의 통합시로 분할하여 도를 없애고 기초자치단체의 규모를 보다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는 도-군-면이라는 3단계 행정체계를 2단계로 줄여 공무원 조직의 축소와 함께 행정규모의 효율성을 도모하자는 방향이며 자치단체의 규모를 일본의 현(縣)이나 미국의 카운티(County) 규모로 확대하자는 것에 맞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 생활권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이 설정되고 이에 맞는 자치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이와 함께 행정구역개편 과정에서 서울시를 5, 6개 시로 분할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광역생활권으로서의 서울시와 기초 생활권으로서의 30만 전후의 구(區)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 지지는 않는다. 현재 설정된 광역 행정구역으로서의 서울시가 행정적 불편이나 비효율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도 아닌데 단지 양적으로 크다는 추상적 이유만으로 의도적인 분할을 하려는 것은 작위적인 것이고 오히려 광역 행정서비스 운영과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뉴욕, 동경, LA 등 세계적인 대도시들도 하나의 행정단위에 있으며 한국의 인구 밀도를 감안해 보았을 때에도 서울이나 광역시들은 단일 도시행정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어, 단지 크기 때문에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서울시와 광역시는 그대로 두고 수도권과 지방의 도-군-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자치행정체제를 생활권에 맞게 재편시키는데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그리고 행정구역 재편과정에서는 크기의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재편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100만, 200만의 매우 큰 자치단체와 20만, 30만의 소규모 자치단체가 함께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자치단체를 적정규모로 유지하고 균등하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두세 개 군씩 묶어 재편할 것이 아니라 오직 주민들이 판단하고 있는 생활권 중심으로 새롭게 설정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재편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도록 해 2-3개의 군을 통합해 생활권 중심의 광역화된 시(市)로 재편하더라도 그 행정구역 내에도 특성에 따라 별도의 자치시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기존의 읍, 면 행정기관은 자치센터로 전환해 문화, 교육, 건강 및 풀뿌리 자치단위로 활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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